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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May 15. 2021

돌아갈 곳이 있다면 그것은 행운일까.

영화 '단지 세상의 끝'



  ‘가족이란 단어를 보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안락함요람헌신따스한 부모님의 품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시작된다어떻게 가족이라는 관계 하나로 이토록 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혹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조건이 아닌, ‘조건 아래라는 사실 말이다부모로서자식으로서형제로서우린 어쩌면 가족이라는 관계의 의무에 묶인 채그 의무의 대가로 사랑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영화 '단지 세상의 끝'




  영화 단지 세상의 끝은 하나 의문을 던진다과연 가족이라는 관계는 무엇인가? ‘가족이라는 이름 하의 울타리이 울타리가 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닌그들의 목적을 위해 나를 가둔 하나의 새장이지는 않을까?







“루이, 넌 ‘가족’으로서 제 의무를 다해야만 해”



©영화 '단지 세상의 끝'



  주인공 루이는 이런 울타리에 의문을 가졌다그리고 그 새장을 떠나갔다하지만 12년이 지난 후 자신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다시 돌아온다자신을 환대하는 가족들하지만 12년간의 공백이 너무나도 길었던 걸까서로 간의 존재는 낯설고 어색하다그러나 어색함은 이내 서로의 이기심으로 변질된다. 12년의 공백에서 자식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보상받으려는 엄마, ‘루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경을 보내고 이를 충족시켜 주길 원하는 여동생 쉬잔’ 그리고 자신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형 앙투안까지그들의 날 것 그대로의 감정마음속 깊은 곳의 치부욕망을 그대로 루이에게 드러낸다. ‘루이는 과연 자신의 죽음을 알리고 가족의 사랑 그리고 안정을 취할 수 있을까?



©영화 '단지 세상의 끝'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역설적으로 소통을 통해 소통의 부재를 표현한다. ‘루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가족들은 결코 서로 간의 대화를 이어가지 못한다대화의 주제는 정해져 있지 않다그렇다고 대화의 대상도 정해져 있지도 않다그들이 무엇을 그리고 누굴 향해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다말 그대로 배 위에 사공만 많은 격이다.



©영화 '단지 세상의 끝'



  그렇다면 결국 자신의 죽음을 알리고 가족의 사랑과 안정을 얻기 위한 루이의 여정은 실패한 것일까아니다오히려 12년 만에 돌아온 루이의 여정은 실패함으로써 성공한다. ‘루이는 성소수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매도하는 가족의 울타리를 떠났다작가라는 성공적인 커리어와 사랑하는 사람을 뒤로 한 채자신의 죽음을 알린다는 명목하에 다시금 가족으로 돌아가는 루이’.


  영화 초반 고향으로 돌아가는 루이의 모습에 한 음악이 깔린다. ‘Home is where it hurts’. 그리고 반대로 영화 종반 고향을 떠나는 루이의 모습에 또다시 한 음악이 깔린다. ‘Natural blues’. ‘루이에게 집고향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가족이란 관계는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그에게 상처만을 주는 존재에 불과했다.



©영화 '단지 세상의 끝'








“인생에는 누가 뭐라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들 또한 수없이 존재한다”



  애초에 루이에게 가족과의 화해가족을 통한 안정을 얻기 위한 목적은 없었다단지 가족이라는 관계의 구속성으로응당 아들이라면, ‘동생이라면, ‘오빠라면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가족들을 보며 루이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들과의 관계에서 떠나도 된다는 정당성.

드디어 새장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확신을 말이다.



  사회에서 가족이란 관계는 조금 특별하다연인사제동료 사이의 관계 사이 거스름은 어느 정도 용인이 된다하지만 가족은 그렇지 않다만약 가족 내 의무를 거스른다면 마치 부모를 배반하고 가족을 버린 천하의 불효자로 손가락질 받는 것처럼 말이다가족이라는 이름 하에엄마아빠장남 등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특정한 의무를 부여해 무조건적인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기형적 관계. ‘자비에 돌란’ 감독은 이런 기형적인 관계에서 의무라는 이름에 구속된 채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위로함과 동시에 그런 관계에서 과감히 떠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 '단지 세상의 끝'







“오늘 시작한 것처럼 끝나면 되는 거야, 의무감도, 중대감도 없어, 그저 좋게 보내면 되는 거야”


가족이라는 관계 말고도 수많은 관계들이 있다연인친구사제동료 등등… 과연 당신의 관계는 어떠한가단순히 남자친구로서아내로서제자로서선배로서 응당 그래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구속되어 자신을 옭아매고 있지는 않은가그렇다면 그것이 설령 든든한 울타리 같은 가족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사회가 당신을 천하의 패륜아라 손가락질을 할지라도,


“인생엔 누가 뭐라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글 | 이성도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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