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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May 19. 2021

파멸적인 사랑을 하던 그들의 결말



©영화 '500일의 썸머'





“우리 다투기만 하잖아. (중략)
우리는 몇 달 동안 시드와 낸시처럼 지내고 있었어.”

“썸머, 시드는 낸시를 부엌칼로 7번인가 찔렀어.
우리 몇 번의 다툼이 있긴 했지만… 내가 시드 비셔스라는 생각은 안 드는걸?”

“아니, 내가 시드야.”





  영화 〈500일의 썸머〉 중 위의 대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갈등만 빚는 영화 속 커플은 자신들을 시드와 낸시라고 비유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사랑을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할 경우 딸려오는 갈등과 가슴 앓이를 당연시 여긴다. 그리고 여기서 상태가 조금 더 안 좋아지면 그때는 애증과 고통을 필수로 수반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하긴, 때때로 사랑 자체가 낭만을 양분 삼아 우리의 이성을 흐리게 하지 않나. 그러니 강렬한 사랑에 기반한 연인 관계가 이따금 서로를 타락시키고 파괴하는 것 역시 무리는 아니겠다. 그렇지만 이것이 진정으로 사랑인지에 대해서는 반문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시드와 낸시, 이들을 보면서 생각해 보자.











©RollingStone




  애증의 상징이자 파멸적인 연인 관계의 전형을 보여준 시드와 낸시. 시대를 풍미한 펑크 록 밴드 ‘섹스피스톨즈’의 베이스 연주자이자 락스타 그 자체였던 시드 비셔스. 펑크 록은 주류의 권위와 타성에 음악으로 반항하고자 한 음악 장르이다. 이 집단은 기존의 백인 위주의 음악 시장을 완전히 뒤엎고자 했고, 섹스 피스톨즈는 사회와 자본주의에 대한 욕설을 달고 살며 이를 충실하게 실현했다. 자유롭고 본능에 충실한 시드 비셔스는 이런 펑크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킨 연인이자 뮤즈, 낸시 스펑겐.




©Richard Mann




  둘은 함께 마약을 즐기며 서로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격하게 싸웠다. 낸시의 언급에 따르면 시드가 자신의 코를 부러뜨리고 귀를 잡아 뜯었다는 점에서 둘의 관계는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시드가 낸시를 18층에서 창문 밖에 매달 정도였다고 하니 말 다 했다. 그러나 이들이 서로의 내면만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마저도 전부 파괴했다. 낸시는 시드에게 밴드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그를 부추겼고, 이 때문인지 시드는 공연할 때 관객을 공격하고 모욕하는 돌발 행동을 했다. 결과적으로 섹스 피스톨즈는 사실상 해체하게 되고 말았다. 그럼 이 커플은 어떻게 끝났냐고? 낸시는 살해당하고, 곧이어 시드 역시 죽고 말았다.




©RollingStone



  

  낸시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시드의 범행인 것 같다는 가설은 꾸준히 언급된다. 이는 아마 다음과 같은 시드의 진술 때문이겠다. “내가 죽였어요. 왜냐하면 나는 더러운 개거든요.” 이처럼 서로를 지옥 끝까지 끌어내리는 사랑은 영화 〈시드와 낸시〉를 통해 재현됐다. 나아가 서로를 타락시키는 연인 관계의 상징이 되어 〈500일의 썸머〉, 〈길모어 걸스〉, 〈루머의 루머의 루머〉와 같은 대중매체 속에서 언급되면서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영화 '시드와 낸시'




  서로를 파멸로 몰고 가는 사랑의 비극. 사랑은 강렬하고 자극적이기에 사랑으로 묶인 관계는 여타 관계들과는 다른 성격을 띤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뜨거움의 극단에 있는 애정 관계에 본능적으로 끌리고, 또 낭만화하고 만다. 사실 자극을 사랑이라고 오해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본능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왜, 흔들다리 위에서 마주친 남녀는 그 심장 떨림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서로를 망가뜨리고 아프게 하는 것이 과연 사랑일 수 있을까? 우리는 어쩌면, 사랑의 탈을 쓴 파멸적인 관계의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파악하기를 거부하는 것 아닐까?





©영화 '시드와 낸시'





글 | 이의영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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