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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May 26. 2021

나치는 왜 재즈를 싫어했을까?



©영화 '반항의 춤'




1930년 독일, 한 청년들이 재즈를 듣기 위해 오디오를 훔쳐 달아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재즈를 듣고 싶어 했던 걸까요?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독일은 나치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재즈는 나치에 의해 금지된 음악이었습니다.



©wikipedia




'재즈'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미국에서 흑인이 색소폰을 부는 모습이 떠오를 겁니다.
그러데 나치 독일에서 재즈라니?
그때 당시 독일에 재즈 음악이 있었던가 싶기도 합니다.

1930년대에는 세계적으로 스윙재즈의 시대였습니다.
나치 시대의 독일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나치 독일은 재즈를 철저하게 탄압합니다.
아래의 포스터를 봅시다.






나치의 유명한 퇴폐음악전 포스터입니다.
색소폰을 불고 있는 흑인과 재즈를 비판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치는 유태인을 탄압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태인 음악가였던 쇤베르크는 평생 독일에서 음악 활동을 할 수 없었다고 하지요.
하지만 저 포스터에서 보듯, 나치가 유태인의 음악만큼 싫어했던 것이 바로 재즈입니다.



"미국이 세계 음악에 기여한 것은 잘 알다시피, 관심조차 둘 가치가 없는 검둥이의 재즈음악이다."
- 나치 문화부 장관 괴벨스
 


  나치는 왜 재즈를 싫어했을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인종적인 이유이기도 하고, 나치 음악 정책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재즈의 '자유로움'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음악이 너무 자유로워서 금지되었다는 건 너무 낭만적인 이야기인가요? 고작 음악 장르 하나가 나치의 교묘한 선동과 그 기반이 되는 독일인들의 패전감을 무력화시킬 위험이 있던 것일까요? 하나하나 이야기해 봅시다.






l  나치의 음악 정책


  나치에게 음악을 듣는 것은 정치적 행위였습니다. 나치 지도자들은 공개석상에서 자신이 음악에 매우 감동하는 청중임을 보이며 자신의 '독일성'을 과시했습니다. 감동할 수 있는 능력은 음악성이 있다는 뜻이며, 음악성은 독일인의 선천적인 특징이라는 논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치는 특히 독일 고전음악을 사랑했습니다. 히틀러와 괴벨스는 음악에 관해 토론을 자주 했고, 히틀러의 바그너 사랑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히틀러의 정치 운동의 계기는 바그너의 작품이었고, 그는 매우 힘든 정치적 투쟁을 할 때마다 홀로 극장에 앉아 바그너의 음악극을 들으며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독일은 음악적으로 천재들이 많은 나라입니다.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바그너가 전부 독일 출신이니까요. 나치는 말과 논리로 설득시키기 힘든 것을 국민이 쉽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음악의 능력을 이용했습니다. 베토벤은 1차 대전 패전 후 독일인의 상처받은 자존감에 큰 위로가 된 음악가입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독일인의 우월성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음악가로 부각됩니다. 독일인은 음악적으로 선택된 민족이며, 이는 다른 인종을 지배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dw.com




 그래서 나치는 위대한 독일고전 음악을 들어야 하는 대중이 흑인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을 못 견뎠습니다. 음악에서 인종적 우월함을 읽는 그들의 정치 논리는 ‘어떤 음악을 듣느냐?’를 ‘어떤 인종이 위대한가?’와 연결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독일 음악이 있는데 다른 음악을 듣는다니,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이죠.

  자신의 정치를 음악으로 정당화했기 때문일까요? 이들은 음악적 공격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약점을 가지게 됩니다. 다른 음악을 듣는 것은 정치적 위기와 연관된 문제가 된 것이죠. 이것이 나치가 재즈를 싫어한 첫 번째 이유입니다.






l  재즈의 자유로움


  독일 고전음악을 들어야 하는데 재즈를 듣는다는 단순한 이유가 전부는 아닙니다. 나치 문화부 장관 괴벨스는 재즈가 질서를 해체하는 힘이 있는 위험한 음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음악이 질서를 해체할 수 있다는 걸까요?


  재즈, 특히 스윙 재즈는 기본적으로 2박을 3등분합니다. ‘따따’라고 하는 것을 ‘따읏따’ 하는 식으로 강약강으로 쪼갭니다. 재즈를 싫어했던 철학자 아도르노가 '탁월한' 지적을 했습니다. 재즈는 1 박자의 고정된 강세의 원칙에서 벗어납니다. 그것도 아주 자유분방하게 벗어납니다. 재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임프로비제이션(즉흥화)에 따라 불규칙적으로 벗어납니다.

  그리하여 나치는 재즈가 행진곡 리듬과 어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재즈를 싫어했습니다. 행진곡은 정박자 속에 개인의 움직임(발자국)을 고정합니다. 정박에 맞춰 딱딱 행진하도록 말입니다. 질서정연한 음악이죠. 다만 재즈는 이 박자를 쪼개고 밀고 당깁니다. 몸을 흠짓흠짓 움직일 수밖에 없게 해서 춤을 추게 만드는 음악입니다. 이것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수동적 국민을 만들기 위한 나치 정책에 걸림돌이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재즈는 나치가 사랑한 독일 고전음악과도 대립합니다. 독일 고전음악은 악보를 엄격하게 재현하는 음악입니다. 정격 즉 음악 작품이 작곡가의 의도대로 연주되는 것이 평가의 기준이 됩니다. 해석은 악보의 최소한 골격만을 해석해야 합니다. 독일 고전음악은 이러한 절제를 통해 신과 군주의 위엄성을 배가했습니다. 반면 재즈의 그루브감과 왜곡된 강세는 기보조차 될 수 없습니다. 재즈는 정해진 모티프를 끊임없이 변주하는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즉석에서 작곡을 해나가는 음악이죠. 독일 고전음악과 재즈, 규칙과 자유의 대립은 명백했습니다.

  이러한 재즈의 해방은 잠재되지 않고 현실화되었습니다. 나치 시대 독일에서는 관제 청소년 단체인 ‘히틀러 소년단(Hitler-Jugend)’에서 일탈했다는 의미에서 ‘스윙 소년단(Swing- Jugend)’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나치와 히틀러를 경멸하고, 유대계 청년들과 자유롭게 어울렸습니다. 재즈를 듣는 것이 실질적으로 나치에 대한 반항으로 이어졌던 겁니다.
 





l  그래서 청년들은?


  마지막으로 영화 이야기를 다시 해봅시다. 오디오를 훔치다 잡혀간 청년은 어찌 되었을까요? 그들은 강제로 히틀러 소년단에 가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은 끝까지 스윙 소년단이었습니다. 낮에는 히틀러 소년단 그리고 밤에는 스윙 소년단….. . 이 갈등 속에서 그는 결국 스윙 소년단으로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밤새 클럽에서 춤을 추다 잡혀가죠. 마지막 순간 그는 '하일 스윙!'을 외칩니다. 그는 음악적 자유에 경례했습니다.





글 | 박지원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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