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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May 29. 2021

자살한 그가 나더러 죽지 말라고 한다




두 개의 사각형이
내 마음을 울리는
위로가 될 때 -






heads up ;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모든 분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

"이마저도 지나가리니"


화가나 작품에 대한 정보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이 짧은 글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내 마음을 돌보길 바랍니다.


얻기보다

내려놓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들을 위해.









스티브 잡스 (2005년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 당시)





곧 죽게 된다는 생각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의 기대,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무언가 잃을 게 있다는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당신은 잃을 게 없으니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다.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로 생을 시작해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뒤집어놓은 혁신가로

생을 마감한 잡스.


그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해.

비슷한 철학을 가진 화가를 처음 알게 되는데,




마크 로스코



바로 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

마크 로스코.


색면화가 라고 불리는 그는

잡스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위로를 전한 화가로,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모두 배제하고

오로지 색으로 본질을 표현해낸

추상표현주의의 대가이다.




Mark Rothko,  (1951)



특별한 것은 없다.

그저 커다란 캔버스에

여러 가지 색의 사각형을 얹는다.


이름도 중요하지 않다.

작품의 제목은 대부분

숫자와 색채,

혹은 무제인 경우가 많다.




Mark Rothko,  (1951)




그는 아주 큰 캔버스를 사용함으로써
관람객들이 새로운 공간으로 걸어들어가는 경험을 하길 바랐으며

동시에 안기는 듯한 느낌을 받길 바랐다.




Rothko,  (1958)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단순한 색의 덩어리로 상징화하고

관객에게 위안을 전하고자 한 그.







작품을 전시할 때면

정확한 조도 아래 작품을 두도록 지시하며

관람객들이 정확히 18인치의 간격을 두고

자신의 작품을 봐주길 바랐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죽기 전 몇 년 간
로스코 채플을 공들여 건축해
지친 영혼들을 위한 안식처를 제공한
로스코.


잡스와 똑같이 완벽주의였으며

단순함이 곧 미덕이라고 여긴 로스코.








그런데 그는 자살했다.

자신의 뉴욕 작업실에서.


뇌리에 강렬히 남는

빨간색 범벅의

유작을 남기고.


유명세를 누리던 화가의 삶을

스스로 포기했다.


타인을 위로하기 위해 채플을 만들어놓고

완성이 채 되기도 전에

정작 본인은 자살했다.







어떤 이들은 로스코의 삶이
모순적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기만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희망을 줘야 하는 사람이
오히려 스스로 스러졌다니.







그러나,
로스코가 원했던 대로
작품 앞에 서서
그림의 결결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어떤 북받침이 진하게 밀려 올라온다.

로스코는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나.

그는 이 그림으로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나.

이 그림을 들여다보며
내면을 정리하는 이 순간에
내 마음 속에는
어떤 감정이 일렁이는가.







로스코는 그렇게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그리고 위로를 받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

위로를 전한다.


로스코 자신이 힘들고 슬프기 때문에,

그래서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슬픔에 공감하며


비록 본인은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여도

그들만큼은 삶 속의 작은 희망을 찾길 바라던 마음이

그의 진심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림이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는 명제 자체를

쉽게 못 믿었던 것일지 모른다.


당신이 위로 받는 그림은 무엇인가?


혹은


사람을 위로하는 그림의 "자격"은 무엇인가?


그런 것은 없다.


그저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과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만나는

그 지점이

그림이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오늘 당장 울지 않아도 좋고

이 그림이 크게 와닿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쉬어가고 싶고

마음이 서글퍼질 때,


약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 숫한 시간들 탓에

정작 울고 싶은데도

눈물이 나지 않을 때,


50년 전 슬픔을 가진 한 화가가

슬픈데도 슬퍼하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

진심을 담아 그림을 그린 사실을 기억하기를.


그림을 괜한 핑계 삼아

울어도 좋으니

천천히


반 세기라는 시간의 장벽을 넘어

로스코가 당신에게 전해온

잔잔한 위로와 마주하기를.









이 글이

글이 아닌

체험이 되었기를 소망하며,


마크 로스코의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 You've got sadness in you, I've got sadness in me - and my works of art

are places where the two sadnesses can meet, and therefore both of us

need to feel less sad. "


- Mark Rothko







글,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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