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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Jun 02. 2021

피와 영광의 도시 | 초현실주의와 다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곳, 


한국에서 가장 높은 지명도를 가진 곳,


한국에서 가장 최신의 문명이 자리하는 핵심지, 서울.




  서울은 그 자체로 한국을 상징하는 수도로서 전 세계적 지명도를 가진 대도시이자 지역적 스폿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렇듯 서울을 포함해 국제적인 교류의 중심지가 되는 뉴욕, 파리, 도쿄, 런던, 상파울루 등의 대도시를 ‘메트로폴리스’라 일컫는다.


  즉, 메트로폴리스란 그 자체로 한 국가의 수준과 발전 양상을 보여주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심지로 큰 위상을 가진다. 


  보다 구체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메트로폴리스는 인구 백만 명 이상을 수용하며 복합적 사회 기능을 수행하는 대도시라고 명명되어 있다.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대규모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도시들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하던 약 100년 전, 당시 독일제국의 한 화가 게오르게 그로스는 이러한 메트로폴리스를 묘사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게오르게 그로스, 메트로폴리스, 마드리드, 1916 ©museothyssen



  당시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세계 각국에 식민지를 두고 화려한 발전이 이어졌던 영광의 시대 속에 있었다. 그러나 그로스가 바라본 메트로폴리스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화려한 근대 도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어둡고 시뻘건 배경과 기괴한 형상의 인간 군상들로 가득 찬 도시. 메트로폴리스라는 화려한 영광의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 이상한 그림의 제목이 왜 국가의 아름답고 번성한 도시를 뜻하는 메트로폴리스인 것이었을까.  


  그로스가 작품을 그렸을 당시, 그의 조국 독일은 군국주의를 바탕으로 세계 대전의 중심에 서 있었다. 군국주의 정권들, 특히 독일의 나치 정권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영광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향하게 만들었다. 그 참혹한 영광을 얻고자 서로 죽고 죽이는 나날들이 계속되었지만 그 피폐한 사회 속에서도 독일의 지배층들은 본인들의 기득권을 사수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다. 


  이에 환멸감을 느꼈던 그로스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들은 기존의 미술, 나아가 형식과 관습에 반발하며 ‘다다이즘’ 문화 운동의 한 축을 맡게 된다. ‘다다이즘’의 ‘다다’란 그 자체로 아무 뜻을 상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는 곧 전쟁을 만든 기존 사회 시스템을 부정하고 전쟁으로 


  일어난 파괴와 살육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을 나타낸다. 그로스는 이러한 냉소적인 시선을 통해 실제 자신이 겪었던 전쟁터에서의 기록을 참혹하게 드러내었다. 




게오르게 그로스, 자살, 1916 ©TATE


게오르게 그로스, 사회를 지탱하는 자들, 1926 ©wordpress.com




  이와 같이 그로스는 미술을 통해 핏빛 도시 속 죽어간 사람의 모습과 무능하고 이기적인 기득권을 표현해 왔다. 사회의 기둥으로 국민을 위해 헌신해야 할 정치가, 언론인, 성직자의 머리 위에는 오물이 가득하고 군인들은 이들에 대한 접근을 막는다. 그러한 탐욕의 이면에서 핏빛 도시를 배경으로 사람들은 죽어간다. 


  메트로폴리스는 물론 그가 그린 인간 군상과 도시의 모습은 늘 검붉은 핏빛으로 칠해져 있다. 메트로폴리스의 사람들의 욕망으로 세워진 거대한 호텔과 거리는 이미 인간의 형상을 잃은 것들로 가득해 어지럽고 폭력적이다. 마치 지옥과도 같게 묘사된 그로츠의 메트로폴리스는 전쟁의 참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영광스러운 역작인 것이다. 




‘민족이란 상상되어진 공동체이다.’ 역사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이렇게 정의했다. 




  인류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수없이 많은 이주와 전쟁이 존재해 왔고, 여러 목적에 따라 파벌과 민족이 갈려 왔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민족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간다면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들 간에도 각기 다른 기원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 그럼에도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주는 문화적 연대와 자부심, 경험은 분명히 존재한다. 2002년 월드컵과 같은 스포츠 행사부터 무역, 외교와 같은 정치/경제적 분야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개념으로 묶인 민족은 공통의 목표와 의식을 갖고 단결한다. 때문에 국가대표의 올림픽 금메달이 우리 민족 전체의 영광과 같이 받아들여지고 그에 따른 산업이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방향성이다. 현재의 우리가 어떠한 영광을 추구하며 살 것이냐는 것이다. 전체의 영광만을 완전한 것이라 쫓는다면 배제되는 타자와 전체를 위해 희생되는 개개인의 아픔이 무시될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민족 혹은 수많은 이름의 경계들을 긋다 보면 결국 우리가 딛고 설 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계속 그어지는 경계선 뒤로 밀려 결국 우리가 떨어질 곳은 그로스가 보여준 지옥의 참상일 것이라는 가능성을 알아야 한다. 





메트로폴리스 서울. 


  서울을 중심으로 K-POP, K-Drama를 비롯한 한국 문화가 여러 타 민족에게도 사랑받는 요즘. 앤더슨이 말한 상상 속 민족처럼 한국 문화라는 기준으로 민족은 얼마든지 새롭게 규정될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서울을 사랑하며 구성하는 수많은 문화와 민족은 이제 더 이상 하나의 것만으로 규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족주의적 영광”이 아닌 포용력을 가진 “인류애적 영광의 회복”이 가능할 때, 진정한 의미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야경 ©gsma




글 | 주소영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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