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은 기록으로 남는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의 이름을 단 생가와 미술관을 방문하곤 한다. 동시에 그들의 얼굴이 새겨진 지폐를 사용한다. 어릴 적에는 한번쯤 교과서에 쓰인 이름들을 달달 왼 기억이 있을 것이다.
여기 캔버스에 영광을 기록한 7점의 초상화를 소개한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그려진 인물이지만,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캔버스 밖에 있던 작가의 화풍과 시선이 재미를 담당한다. 탁월한 관찰자로부터 탄생한 작품에서 흥미로운 디테일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 번 시대 순으로 따라가 보자.
1.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1434)
바로크 미술의 거장 얀 반 에이크는 어느 연인의 결혼 서약식 자리를 기록했다. 붉은 침대와 화려한 샹들리에 앞의 연인은 손을 맞잡고 복식을 차려입은 채로 서 있다. 남성의 눈빛에서는 진지함이, 여성의 얼굴에서는 옅은 미소가 묻어난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원형의 거울에는 비밀이 깃들어 있다. 얼핏 보면 지나칠 만큼 조그만 상 안에 화가 자신과 조수까지 그려넣었기 때문이다. 전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방의 도치된 모습까지 담아낸 셈이다. 이처럼 섬세한 묘사는 서약식의 현장성을 박제한 듯한 인상을 남긴다.
2. 주세페 아르침볼도, 도치된 머리와 과일 바구니 (1590)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아르침볼도는 유명한 화가의 아들이었다. 아르침볼도 또한 궁정 화가가 되는 영광을 누리지만 시간이 흐르며 착시 그림을 그린 화가로 알려진다. 위아래가 뒤집어진 그림, 과일과 식물로 이루어진 얼굴 그림을 통해서 말이다.
왕실에서는 기이한 초상화를 그린 대가로 호통칠 만도 했으나 합스부르크의 군주였던 막시밀리안 2세는 그를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당시 왕실의 지지에 힘입어 아르침볼도를 비롯해 천문학자 케플러 등 창의적인 인재들이 힘껏 날개를 펼칠 수 있었다.
3. 요하네스 베르미어,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 (1665)
푸른 스카프과 붉은 입술을 한 소녀가 매혹적인 표정으로 우리를 응시한다. 소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음영은 한층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영화와 문학의 아이콘이 되었을 만큼 소박함과 이국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런데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사실은 따로 있다. 바로 실존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캐릭터의 초상이라는 점이다. 이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장르였다. 화가의 상상력의 산물이라기엔 놀랍도록 오랜 사랑을 받아온 작품으로, 만일 살아 있었다면 어떤 사람일까 추측하게 한다.
4. 장 오귀스트 앵그르, 브롤리 공주 (1853)
화가 앵그르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았다. 브롤리 공주는 정갈하고 세련된 모습을 자랑한다. 푸른 드레스와 머리 장식이 어울리며, 백옥 같은 피부는 귀족적인 삶을 연상케 한다. 이 모습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자리하며 많은 이들의 최애 작품으로 사랑받아 왔다.
브롤리 공주의 초상이 탄생한 경위는 어떠했을까? 그림은 훗날 프랑스 수상을 지낸 남편이 주문한 것으로, 앵그르가 그릴 적에 몹시 곤혹을 겪었다고 한다. 브롤리 공주는 수줍음이 심해 그림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힘들어 했기 때문이라고. 그 어떤 연회라도 장악할 듯한 포스의 그녀에게도 내면의 고민이 있었으리라. 완벽한 인물을 묘사하는 신고전주의 화풍에서도 그런 그녀의 미묘한 그늘이 드러난다.
5. 폴 고갱,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 (1888)
생전에 인정 받지 못하고 낙담으로 매일을 살아가던 반 고흐. 그 또한 점잖고 탁월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러나 평소 존경하던 고갱이 그린 고흐의 초상은 몹시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얼굴과 튀어나온 입, 뻣뻣해 보이는 몸짓. 고흐의 대표작을 상징하는 해바라기는 다 시들기까지 했다.
고흐는 이 그림을 보고 모욕감을 느꼈다. 영광의 나날이 아닌 가장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을 담은 초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고흐와 고갱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계기 중 하나가 된다.
6. 파블로 피카소, 자화상(1896 / 1972)
피카소는 어린 여동생이 병환으로 생을 마감한 이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힌 채 살았다. 그래서인지 생애에 걸쳐 많은 자화상을 남겼다. 왼쪽은 15세 때 그린 자화상으로 우수가 깃든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이때까진 큐비즘을 떠올릴 수 없는 사실적인 화풍을 고수했다.
반면 오른쪽은 90세의 피카소가 그린 자화상이다. 머리카락도 양쪽 귀도 없는 단순한 얼굴은 점토 조각상을 떠올리게 한다. 훗날의 그는 “라파엘처럼 그리는 데 4년,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 평생이 걸렸다” 는 말을 남기며 단순함과 자유를 지향했다. 그렇게 탄생한 마지막 자화상은 피카소의 예술관을 꼭 빼닮아 있다.
7. 가버, 타니스 (1914)
내리쬐는 햇살을 등진 화가의 딸은 아름다웠다. 마치 작은 천사와도 같은 자태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중이었다. 화가는 놓치지 않고 그 순간을 화폭에 담았다. 작품은 아주 보통의 아이, 타니스의 초상이 되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실상 영광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가장 평범한 순간에 우리의 곁에 와서 깃든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소중한 일을 성취했을 때가 잠시 멈춰서야 할 순간이다. 삶을 포착하고 기억하는 자세가 우리에게 영광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글 | 이예림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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