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5월의 주말 오후, 후덥지근한 날씨가 되었다. 게으른 탓에 토요일까지 빨래를 걷지 않았는데, 문득 오늘밖에 시간이 없겠다싶어 부랴부랴 몸을 움직였다. 가장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베란다에서 옷을 걷어내다 보니 창문 밖에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창밖을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풍경(風磬)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나른한 오후의 적막함때문이었는지, 옛날의 그때와 비슷한 날씨탓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처럼 바람이 귀한 날씨에 반가운 소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한국의 어느 집에 풍경이 있겠나 싶냐만은, 예전에 나는 풍경을 하나 선물 받았었다. 모모코라는 일본 여학생이 주었던 건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선물을 받았던 중학교 3학년때, 그리고 몇년동안은 내 방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선물에는 큰 의미가 있었던건 아니다. 우리 중학교가 일본에 있는 어느 학교와 자매결연이 되어있다고, 어느 날 일본에서 학생들이 방문한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선물교환식 이런게 있었는데, 나와 짝꿍이 되어서 받게 되었다. 물론 나도 선물을 주었는데, 그때 한창 비가 인기가 있었어서 그 이유 하나만으로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 담겼던 앨범CD를 선물을 주었었다.
이 날은 생각보다 여운이 오래갔는데, 내가 그때도 말주변이 별로 없어서 그 여자애를 잘 챙겨주지 못했다. 그래서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집에 있을때면 그 애에게 받은 풍경소리를 듣곤 했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풍경소리는 맑으면서도 쓸쓸한 느낌이 든다. 보통은 절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지만 그 특유의 소리는 묘한 분위기를 낸다. 가슴 한켠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듯 잔잔한 파동을 일으켜 적당한 설렘을 가져다준달까.
지금 풍경을 바로 구하기는 힘들 것 같으니, 오늘은 오랜만에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을 다시 꺼내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