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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달글 Feb 11. 2021

[Parapluie] 인요가 이야기

여섯 시까지 재택근무를 했다. 찌개용 두부 반 모를 듬성듬성 자르고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굽다 달걀 물을 두르고 두부가 너무 으깨지지 않게 달래듯 볶아 먹었다. 혓바닥이 얼얼해질 정도로 달큰하고 깊은 저녁잠을 두 시간 잤다. 여름 해가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져 저녁 여덟 시 이십 분이 되어도 하늘이 쪽빛이다. 머리를 질끈 묶고 옷을 꿰어 입고 현관을 나선다. 종일 신발을 신지 않은 발바닥이 슬리퍼 안창에 닿는 촉감이 낯설다.


칠월 한 달간 화요일 오후 여덟 시 반 요가 수업은 인요가다. 몸을 구부리고 꺾고 버티고 휘어지게 하는 동적인 요가를 양요가라고 칭한다. 인요가는 양요가와 반대로 힘을 쓰지 않고 인대와 근육을 천천히 늘려내는 정적인 움직임을 가져간다.


요가 강사의 목소리를 따라 자세를 만들고 그 자세 안에서 3분에서 5분간 힘을 풀어낸다. 요가 강사가 종을 울려 자세의 종료를 알릴 때까지 중력에 몸을 맡긴다. 무거운 골반, 위에 놓인 요추와 흉추, 그리고 경추가 받치는 머리가 내 의지가 아닌 중력에 따라 깊이 아래로 내려간다. 햇볕이 투명한 날 바지랑대 위에 널려 바르게 말려지는 수건처럼, 뼈 위에 기댄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깊게 내쉰다. 인요가는 동작의 완성에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에 어떤 자세를 완성하려는 욕심은 숨과 함께 내쉬어 흩뜨린다. 삶에서 이미 충분히 애쓰고 노력하므로 매트 위에서만큼은 그 모든 마음을 포기한다. 지금 상태를 느낀다. 나의 손가락은 어디에 있는지, 발가락에 긴장은 없는지, 쇄골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었는지, 무릎 뒤에 힘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행여 통증이 찾아온다면 멀리서 감각을 바라본다. 욕심으로 인해 무리하게 몸을 밀어붙이다 찾아온 통증이라면 힘을 풀고 좀 더 편한 자세를 찾아 근육을 이완시킨다. 뼈가 놓인 모양 자체로 인한 통증이라면, 느껴지는 통증을 바라보며 강도를 파악한다.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는 효예한 고통이라면 자세로부터 빠져나와 휴식한다. 다만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고통이라면 통증에 놀라서 경직된 근육을 찾아내 숨을 흘려보내어 이완한다.


숨의 방향을 이리저리 보내다 늑골 사이로 보낸다.


숨이 어제 슬픔이 남기고 간 흔적에 닿는다.


슬픔이 뇌와 신경전달물질의 문제라고들 하지만 나에겐 늑골 사이 오목한 공간의 문제다. 어젯밤 슬픔이 기별 하나 주지 않고 방문 틈새로 들어와 가슴에 손가락을 대고 눌러댔다.


슬픔의 얼굴은 제각각이고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도 다 다르지만, 슬픔이 지문을 남기고 떠난 공간은 항상 일정하다.


찾는 법은 어렵지 않다:


왼쪽 빗장뼈와 왼손을 수직으로 만든다. 목 중앙지점에서 빗장뼈가 시작되는 곳이 무명지에 닿도록 손바닥을 몸을 향해 댄다. 검지가 닿은 곳을 디디며 손을 시계방향으로 꺾어 팔꿈치를 6시 방향에서 7시 반 방향으로 45도 정도 돌리면 손가락이 갈비뼈와 수평이 된다. 그 상태에서 새끼손가락이 닿는 갈비뼈, 그러니까 두 번째와 세 번째 갈빗대 사이에 위치한 옴폭한 공간이 시리고 저릿한 느낌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곳으로부터 축축한 냉기가 안개처럼 철철 흘러나와 뼈 사이를 채우고 갈비뼈가 감싸는 장기까지 하얗게 얼어붙게 만드는 것이다.


이럴 땐 어쩔 도리 없이 몸을 웅크리고 두 손을 주먹 쥐어 가슴을 꾹꾹 눌러가며 슬픔이 지나갈 때까지 울어버릴 수밖에 없다.


숨을 들이마시며 배를 부풀린다. 들어온 공기의 온기로 갈빗대 사이에 남아있던 냉기를 녹여낸다. 배를 꺼뜨리며 내쉬는 숨에 습한 기운을 함께 뱉는다. 숨을 내쉴 때는 몸이 작아지면서 내가 나를 안아주는 것 같다. 이전보다 깊은 호흡을 하며 구석에 남아있는 슬픔의 찌꺼기까지 치워낸다.

슬픔이 찾아오고 떠나는 일은 내가 어찌할 수 없지만 적어도 떠난 흔적을 치우는 일은 내가 어찌할 수 있다. 언젠가 또 올 슬픔이 넘쳐흘러 몸을 가득 채우지 않게 하려면 바지런히 빈자리를 마련해두어야 한다.


멀리서 종이 울리고, 꿈에서 깨어나듯 자세에서 빠져나온다.


요가의 마지막 자세인 사바아사나(시체 자세)로 들어간다. 등을 매트 위에 대고 누워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린다. 팔을 편안하게 벌리고 손바닥은 천장을 향하게 둔다. 한 시간 동안 볕에 잘 말린 수건을 툭툭 털어 마루에 펴내듯 몸을 단단한 매트 위에 펴낸다.


이마가 무겁다. 신경 쓰던 모든 것들이 머리에서 빠져나가고 나는 감은 눈꺼풀 위에 섬광 조각이 어른거리는 모양을 바라본다. 문득 죽는 게 이런 거라면 굳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까지 슬퍼할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10분간의 휴식을 종료하는 종소리가 정적을 부드럽게 부순다. 아주 천천히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태아처럼 웅크린다. 손을 바닥에 짚고 허리뼈부터 등뼈, 목뼈를 세우고 맨 마지막에 머리를 들고 앉는다.


집으로 향하는 길 위를 걷는 몸이 습기가 빠져 가볍다. 뼈가 부드럽게 바스락거린다. 잘 건조된 갈비뼈를 한껏 부풀려 그새 쪽빛에서 남색으로 어두워진 한여름 밤공기를 몸 안에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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