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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달글 Nov 30. 2020

[셸터] 요가를 인생에 들여버렸다.




2016년 겨울, 보건소에서 문자 한 통이 왔다. 건강검진 결과 우울증 의심 단계이니 의사 상담과 처방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예상했던 결과여서 일까, 문자를 받은 후 몇번이나 더 보건소에 방문하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그냥 무시해버렸다.
그해 겨울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함께 보냈던 친구를 일순간에 잃고 삶의 이유마저 상실한 때였다. 맥락 없이 울고 있는 내 모습이 평소와는 전혀 다르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다행히 난 우울증 “의심” 환자였다. 이런 시기는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올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고, 지금은 너무 괴로워도 삶은 아무튼 이어질 거라는 믿음이 마음 속 깊이 자그마한 씨앗으로 뭉쳐있었다.


보건소에 가는 대신 나는 요가원에 찾아갔다. 혜화동 로터리 코너에 극단 연습실을 지나, 조금은 어둡고 으슥한 계단을 올라가면 녹색 문 앞에 신발장이 놓여있었다. 신발을 벗어놓고 안으로 들어가자 따뜻한 조명과 향을 피운 냄새가 감각을 에워쌌다. 이때까지만해도 나는 요가를 심신의 안정을 주는 명상과 스트레칭 정도로 알고 있었다. 한 달 수업료가 9만원 정도였나. 자취방에서 걸어갈 거리에 이만한 가성비라면 일단 다녀보자 생각했다.


요가를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요가와 명상의 시작은 고통이라는 걸 알 것 같다. 첫 수업을 들은 다음날 나는 온몸이 아파서 움직일 때마다 곡소리를 냈다. 안쓰던 근육을 애써 쓰려고 움직여놓으면 내 몸이 내 몸같지가 않고 걸음을 뗄 때마다 중력이 발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무겁다. 그렇게 근육이 뭉쳤다 풀렸다 반복하기를 두어 달, 근육들이 조금씩 내 몸의 일부가 되어 가는 걸 느끼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든 아사나(동작)에 집중하다보면 잡생각이나 우울감은 저절로 사라졌다. 요가는 나를 살게 했고, 나는 요가를 예찬할 수밖에 없다.




명상이 뭐길래
요가를 시작하기 전 내 몸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어깨가 앞으로 말려 우르드바 나마스카라사나(팔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 합장하는 자세)에서는 팔을 쭉 펼 수조차 없었고, 코어에 힘이 없어 골반은 제멋대로 돌아갔다. 그나마 타고나기를 유연해서 남들보다 자세 잡기가 수월했는데, 혜화동 요가 선생님은 모양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제대로 동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늘 강조했다. 동작의 효과를 이해하고 힘을 정확한 곳에 쓰지 않으면 다치기 일쑤였다.
요가 수련의 기준은 항상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어야 한다. 나보다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을 의식하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어제와 오늘의 내 몸의 변화를 인지해야 한다.

동작을 이어가며 몸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과정은 명상에 가깝다. 명상의 첫 단계는 오롯이 내 몸에 집중하는 연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요가 수련 중 나무자세(한쪽 발을 들어 다른 쪽 허벅지 안쪽에 붙이고 균형을 잡는 자세)로 버티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나무자세로 오랫동안 서있으려면 집중력이 꽤나 필요하다. 처음에는 정면의 한 점을 응시하며 버티다가, 자세가 안정되면 두 눈을 감고 또 다시 어둠 속에서 한 점을 응시한다. 그리고 발바닥 안쪽으로부터 땅으로 단단하게 내리박히는 힘을 느낀다. 몇초를 버티던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요가강사 박상아씨의 저서 <아무튼 요가>를 보면 여러 종류의 요가에 대해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기했던 건 크리야인데, 크리야(Kriya)란 호흡과 명상을 통해 우리 몸에 잠재되어 있는 척추 에너지를 깨우는 수련이다. 크리야를 경험하면 척추를 중심으로 강한 떨림을 느끼게 되고, 몸이 가벼워지고 자신감과 아이디어가 샘솟는다고 한다. 얼마만큼 수련을 하면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하면서 새삼 무궁무진한 요가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크리야를 하기까지 어쩌면 1년이 걸릴 수도, 10년이 걸릴 수도 있고, 아니면 평생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려운 자세를 해내는 소위 요가 고수들에게도 죽어도 안되는 자세가 있다. 요가는 내가 나의 평화를 위해 하는 것이므로, 죽어도 안되는 건 안해도 된다.




요가는 Connection 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요가원은 캐나다 밴쿠버에 있다. 대중에게 핫요가로 잘 알려져 있는 ‘비크람 요가’를 가르치는 곳이었는데 자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그 도시만의 환경이 좋았다. 요가를 마치고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땀을 식히면 그저 그 순간이 행복하고 감사했다. 수련의 마지막에 몸을 완전히 이완하고 누워있는 사바아사나에서는 바닥에 닿아있는 몸의 뒷면으로 땅의 에너지를 느꼈다.


이상하게도 요가 강사들이 수업 중 많이 하는 말들은 영어로 했을 때 덜 느끼(?)하다.  

“Feel the earth on your back”  “Breathe love in, breathe love out” “Respect this practice and be grateful for life”
잡생각을 지워내고 요가에만 집중하다보면 이런 말들이 진심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나를 둘러싼 공기가 감사하게 느껴지고, 들이마시는 숨마다 삶이 채워지는 기분. 그런 의미에서 요가는 나를 존재하게 하는 모든 물질과의 연결이다.




편안한 요가에 도움이 되는 것들
요가를 취미로 삼기 시작하면서 여러 요가 용품들을 구입했다. 처음 사본 물건은 단연 요가팬츠였다. 다리에 쫙 달라붙어서 민망하다는 사람도 있고 날씬한 사람만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냐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요가팬츠는 기능성 의류이다. 땀의 건조를 도와줄 뿐더러 자세를 정확하게 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요가 매트는 늘 요가원에 비치된 공용 매트를 쓰다가 관절에 무리가 가는 걸 느끼고 내 매트를 마련했다. 관절에 무리가 가는 이유는 보통 매트가 너무 두껍거나 미끄러워서 손과 발이 밀리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저렴한 매트를 사서 닳을 때마다 새로 교체하는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질 좋은 매트를 사서 오래 쓰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비싸더라도 한 번 사서 관리만 잘하면 거대한 쓰레기를 버리게 될 일이 없어진다.
부수적으로 아로마 오일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5년 전 첫 요가원에서 수강 등록을 결심하게 했던 요인 중 하나가 선생님이 관자놀이에 문질러줬던 아로마 오일이었다. 개인적으로 사바아사나 중에 아로마 오일을 이용하면 심리적으로 더욱 안정되는 효과가 있다.




Yoga Goes on
요가를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다. 요가를 며칠 안 하면 곧바로 몸이 굳어지고 무거워지는 느낌이 든다. 요가가 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준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계속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렇게 요가를 인생에 들인 이상, 앞으로는 좀더 전문적으로 배워 요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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