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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달글 Jan 09. 2021

[장문장] 당사 취업을 선택한 이유와 입사 후 회사에서

최근 회사에서 채용 프로세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문득 신입교육 시절 “자소서에 정치인 이름 적고 붙은 사람은 장문장님 뿐일 거에요” 라는 인사담당자의 말이 떠올랐다. 덕분에 거진 3년만에 자기소개서를 다시 찾아서 읽어보았다. 정치인 언급이라고는 이재명 이름 석 자 들어간 문장 하나밖에 없었다. 내용도 온건하기 그지 없어서 놀랄만한 점이 없었다. 다시 쓴다고 해도 비슷한 수준의 검열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가 1년동안 참 변한 게 없구나 싶어서 달가웠다.

자기소개서란 기업에서 제시하는 틀에 나를 재정립하여 끼워넣은 결과물이다. 그 속의 나는 어떤 부분은 부풀리기도 하고, 잘라내기도 하면서 만들어낸 나-비슷한-것이다. 이 나-비슷한-것에 대한 묘사가 눈에 띄면 면접을 가게 된다. 그 다음 나에게 무관심한 세 명의 면접관 앞에서도 나-비슷한-것이 문제없이 동작하면 비로소 취준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워낙 피로감이 커서, 만약 이 짓을 몇 번 더 했다면 무수한 나-비슷한-것의 잔해 사이에서 자아분열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나는 당시 인사 직무에서 개발 직무로 전환을 생각하고 있어서, 직무전환이 있는 단 하나의 공채만 썼다. 한 달 내내 하나의 자기소개서만 봤기 때문에 지금 봐도 딱히 고칠 부분이 없다. 다만 글에서 너무 절실함이 느껴지는 부분이 조금 추잡스럽지만, 그 때는 정말로 절실했다. 여기가 아니면 1년은 공부를 해도 될지 말지 모르는 상황이니, 절실함은 당연했다.

3년이 지나 삶은 안정되고, 그에 따라 절실함은 많이 희석되었다. 2.5평 고시원에서 자소서를 쓰던 장문장은 지금 5.5평 신축 원룸에 살고, 다음달이면 11평의 낡은 근린생활시설로 이사를 간다. 원래의 삶은 워낙 굴곡져 당장 6개월 뒤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2년 뒤에는 15평쯤 되는 경기도 인근 빌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할 정도로 삶이 평탄해졌다. 주차장도 있는 곳으로 말이다. 이제 그때의 절실함이란 그저 고난-극복 서사의 재료일 뿐이다.

이 타이밍에 한 번 갈무리를 하는 겸 내 자기소개서의 리뷰를 해볼까 한다. 내 자기소개서는 인사 담당자 피셜 아주 희소한 타입의 자소서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이재명 언급 말고도 “소설 같이 쓰셨던데” 라는 감상도 들었다. 그때문에 취준하는 친구들에게 내 자소서를 보여주기가 항상 애매했다. “이런 느낌으로 쓰면 돼”, 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이런 느낌으로 쓰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글의 주제는 ‘내 자소서를 보여주기 애매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최대한 주석 형식을 빌려 어떤 것을 왜 적었는지, 그리고 적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도 이야기해보자. 무엇을 적었냐만큼 무엇을 적지 않았나도 의미가 있는데, 적지 않은 것은 아직 아무도 보지 못했다.

Essay1.
당사 취업을 선택한 이유와 입사 후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기술하십시오.

[지원동기는 제일 어렵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는 것이지만, 반드시 이 회사여야 할 이유를 적을 필요는 없다. 그런 모든 이유는 거짓말이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골에 이 회사가 어떤 도움을 줄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충분하다. 내가 신입연수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10년 뒤에 회사에 있을 것 같냐는 교육 담당자의 말이었다. 자기 커리어는 각자 책임져야하는 법이라는 말에서 시대의 변화를 빠르게 수용하고 있음을 느꼈다. ]

저는 당사가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직접 체험했고, 직무전환 과정을 통해 기술의 첨단에서 사회와 기술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전역 이후 저는 제가 속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자교 MBA의 부학과장님 아래서 ‘XYZ 보청기’의 경영케이스를 작성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얻은 깨달음은 규모가 큰 대기업의 경제활동이 사회적기업이나 자선단체보다 훨씬 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습니다.

XYZ 보청기는 고가의 보청기 가격을 34만원으로 줄인 사회적기업입니다. 그러나 유통마진을 포기한 탓에 확장성이 느렸고, 시장에 미친 영향은 기대보다 적었습니다. 그런데 당사가 보청기 시장에 진입한다는 기사가 퍼지면서 보청기 가격이 내려갔습니다. 소비자들이 당시의 제품 출시를 기다려 수요가 얼어붙은 것이었습니다.

[이 사례를 통해 나는 소셜 어쩌구 하는 모든 것들을 포기했다. 사회적 기업이란 기업도 체 되지 못한 것들이 태반이고, 기업은 다만 좋은 제품을 공정한 가격으로 시장에 공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회에 이롭다. 여담으로 1년 뒤 청각장애인의 보청기 지원금이 34만원에서 113만원으로 증가함으로써 XYZ 보청기의 저가 모델들은 거의 의미를 잃었다.]

당사는 시장에 진출한다는 소문만으로도 시장의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기업입니다. 이를 통해서 저는 당사의 일원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을 강하게 꿈꾸게 되었습니다.

[‘강하게’가 너무 절실해서 보기 싫다.]

저는 잘 만들어진 제품이 어느 무엇보다 효과적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기술의 첨단에 서서 사회와 기술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당사에서 기술과 비즈니스로 세상을 보다 이롭게 만드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역사와 전통의 홍익인간 정신을 피력했다.]

[사실 정말로 쓰고 싶었던 예시는 백종원 도시락이었다. 백종원 도시락이 들어오기 전에 편의점 도시락의 질은 정말 낮았다. 가난한 대학생인 나의 주식은 밥버거였다. 백종원 도시락이 들어오면서 편의점 도시락 전체가 상향평준화되었고, 김혜자 도시락 같은 후발주자들도 등장했다. 좋은 플레이어 하나가 시장을 바꾸는 명확한 케이스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쓰면 내 학회 스펙을 드러낼 수가 없고, 게다가 쓸 데 없이 너무 짠하지 않은가.]

Essay2
본인의 성장과정을 간략히 기술하되 현재의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 인물 등을 포함하여 기술하시기 바랍니다. (※작품속 가상인물도 가능)

[질문은 성장 과정을 간략히 기술하라고 했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사건->성장 인과 구성이며, 무게는 성장에 둔다. 어떤 성장을 어필할지 정하는 게 고생스러웠다. 보통 직무 관련성이 있는 것만 적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 성장과 직무적 성장을 모두 적어내야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뽑을 때 개인 성향과 업무 능력 두 가지를 보니까, 둘 다 이야깃거리를 제시해주어야 한다.]

23살, 25살에 저는 제 인생관을 바꾼 두 가지 큰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경험을 통해서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사람을 그 자체로 대하는 마음가짐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경험을 통해서 세상을 기술로 바꾸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23살적 저는 미군 카투사로 군복무를 수행중이었습니다. 당시 매번 카투사들의 트집을 잡는 라틴 계열의 여자 상병이 있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카투사들은 그녀를 라티노, 미군이라 부르며 상당히 미워했습니다.

한 훈련에서 그녀는 상사에게 혼이 난 후 텐트를 빠져나갔습니다. 상사의 명령으로 저는 그녀를 찾기 위해 나섰고, 창고 뒤편에서 울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생존을 위해 군인을 선택했고, 가족도 없는 타국에서 생활하며, 심지어 저보다 나이도 어렸습니다. 말하자면 그녀는 제가 감히 미워할 수는 없는 작고 여린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녀 대신 미군, 라티노를 미워했습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면 미워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 대신 추상적인 대상을 만들어 그것을 미워했던 것입니다. 사회의 혐오는 모두 이러한 원리를 통해서 만들어지고 강화됩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추상적인 집단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을 통해서 저는 혐오를 읽는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만연한 혐오에 휩쓸리지 않도록 경계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람을 그 자체로 보고 존중과 연민으로 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저는 스스로가 차이에 대한 포용력이 높고 이타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 부분이 소설적이라고 들었던 부분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쓰는 경우도, 또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는 경우도 드물다고 한다. 장황한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글로벌 경험과 포용력, 그리고 미시적인 사건에서 거시적인 통찰을 하는 과정을 담고 싶었다. 원래는 더 자극적으로 썼는데, 여러 사람의 피드백을 통해 많이 간략해졌다.]

25살에 저는 웹프로그래밍 동아리 [멋쟁이사자처럼]에 들어갔습니다. 문제의식만 갖고 있던 저는 프로그래밍을 통해서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강한 동기를 얻었고, 첫 학기를 마친 뒤 교내 마케팅 실험신청 페이지를 제작했습니다. 마케팅 실험 공고는 특정 건물 게시판에만 공지되어 접근성이 떨어졌습니다. 저는 학과장님께 제안하여 2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아 서비스를 제작했습니다. 경영학과 학생 전원이 제가 만든 사이트를 사용하게 되는 건 전에 없었던 정말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돋 받았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으-른들은 돈 받고 하는 것만 일로 인정한다.]

이후 저는 그 멋진 경험을 공유하고자 저희 학과 후배들에게 웹프로그래밍 강의를 제공했습니다. 강의는 힘들었지만 보람찼고, 21명이 본인의 사이트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번 3월 학생활동 소개 페이지 [SKKLUB]을 만들었습니다. 오프라인으로만 제공되던 동아리 정보를 온라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로, 신입생 입학식에 맞추어 오픈해 3일만에 2천명의 사용자를 획득했습니다.

[SKKLUB은 전적으로 취업을 하기 위해서 만든 스펙용 서비스였다. 3학년 2학기, 6개월동안 준비하던 플랫폼 서비스가 고꾸라졌다. 플랫폼은 3~5년은 운영해야하는데, 대학생들이 그걸 어떻게 한단 말인가? 기획부터 잘못된 프로젝트였다. 그대로 아무런 결과물 없이 동아리 활동이 끝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1년을 보낸 셈이 되기 때문에, 나는 겨울방학 내로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했다. 그것도 만들기만 하면 무조건 팔리는 서비스 말이다. 영업도 마케팅도 유지보수도 필요없고, 만들면 바로 폭발적으로 트래픽이 들어와서, 당장 3월에 자기소개서에 쓸 수 있는 서비스 말이다. 그게 바로 동아리를 소개하는 웹서비스였고, 기획은 잘 맞아떨어져서 취업의 좋은 소스가 됐다.]

제게 프로그래밍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멋진 도구입니다. 저는 앞으로 제가 해결할 문제들, 만들어갈 변화들을 생각하면 설렙니다. 단연코 여태까지 제 인생의 가장 큰 이벤트는 25살의 봄,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개발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서 적극적, 능동적, 진취적, Fast Learner 같은 당사에서 좋아할만한 모든 것을 때려넣고 싶었다. 그런데 들어와보니까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Essay3
최근 사회이슈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한가지를 선택하고 이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근 이재명 후보자가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기본소득이란 소득, 재산에 관계 없이 모든 국민에게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현금을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현대의 복지정책은 대부분 선별적 복지인데 반해 기본소득 제도는 보편적 복지입니다. 비용 부담이나 선별 없이 모든 국민이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이재명을 언급한 이유는 이것이 최근 사회 이슈라는 걸 명확하게 하고 싶어서였고, 글에 구체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정치인이라고 이야기라는 것이랑 구체적인 발언자를 이야기하는 것은 글의 몰입감을 다르게 한다.]

처음 기본소득의 개념을 접했을 때는 다소 황당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곧 기본소득이 진지하게 논의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저는 제가 속한 독서모임에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를 제시했고, 함께 팀 던럽의 [노동 없는 미래]를 읽었습니다. 독서와 토론을 통해서 저는 기본소득을 “미래에 필연적으로 등장할, 그러나 아직은 존재할 수 없는” 제도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독서모임을 스펙으로 조명하고 싶었다. 몇 년이나 사모임을 운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책임감이나 리더십, 인간관계의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소개서를 읽기 전에 스펙란에 독서모임 운영(14년~현재)라고 적혀있는 걸 봤길 바라면서.]

기술의 진보에 따라서 인류의 생산성은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습니다. 인류는 늘어난 생산성만큼 소비하며 경제를 꾸준히 성장시켰습니다. 그러나 현대, 4차 산업혁명의 등장으로 그러한 균형이 깨질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기술발전은 새로운 시작의 개척보다는 기존 시장의 효율화를 불러옵니다. 이는 기술에 의한 노동 소외를 의미하며, 대량의 실업과 구매력 부족 사태를 야기합니다. 이른바 실업의 시대입니다.

기본소득은 이러한 실업의 시대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일자리 자체가 없는 환경에서는 고용 없이 생존할 수 있는 정책이 필수적입니다. 그 순간 선별적 복지는 보편적 복지로 전환됩니다. 저는 그 전환점이 실업률 40%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을 통해서 인간은 노동에서 자유로워집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노동 소외를 겪을 것입니다.

[왜 40%라고 생각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싶었는데, 전혀 해주지 않아서 섭섭했다.]

저는 이를 통해 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높은 생산성, 혁신적인 발전이 오히려 사회를 지탱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불행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술을 알고자 합니다. 저는 첨단기술과 사회의 접점에 서서 그 상호작용을 생각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기술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이 부분 결론이 가장 어려웠다. 기술 발전에 의한 인간소외를 내가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가 전혀 안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깊게 질문이 들어올까봐 방어 준비를 많이 했다. 물론 전혀 질문하지 않았다. 내가 볼때는 아무도 3번 문항을 안 읽은 것 같다.]


마무리.

나는 초심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열정적인 사람도 믿지 않는다. 너무 열정적인 순간의 나 자신도 믿지 않는다. 3년전의 나는 그 절실한 순간에도 치열하게 차분했다. 언제나 약간 힘을 빼야 오래 가는 법이고, 뭐든지 하다보면 되는 법이다. 물론 대부분 처음 생각과는 달라지지만, 그때는 이미 처음 생각이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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