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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달글 Jan 08. 2021

[문곰] 일상과 사건

지속가능한 삶이란 무엇일까. 오늘, 내일 반복되는 루틴이 있고, 일주일 아니 한달, 일년이 지나도 어떤 루틴은 계속해서 다시 재생된다. 그 안에는 작은 사건들로 인해 조금씩의 변주가 있기는 하지만, 왠만한 큰 사건이 아닌 이상 루틴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Y의 예를 들어보자. Y는 반복되는 삶에서 만족을 느낀다. 조금은 지루하긴 해도, 딱히 나쁘지는 않고 무엇보다 앞으로도 이럴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매일 지하철을 타지만 작은 에어팟 두 개로 나를 다른 사람들로 부터 지킬 수 있고, 지금은 사원증을 태그하고 건물에 들어가지만, 해가질때까지 버티면 광복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주말이 다시 오고, 월요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시 한 주를 시작한다. 우리가 매일 똑같은 하루만 반복한다면, 그 누구라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소소한 사건들이 밥상에 나오는 반찬들처럼, 인생에 맛을 느끼게 한다. 어떤 날은 친구와의 약속,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종종 야근같은 쓰레기 반찬도 있지만, 그것도 그 나름대로 어제와는 다른 삶의 맛을 느끼게 해주기는 한다. 그래서 멀리서보면 Y는 에셔의 그림들처럼 무한궤도를 끊임없이 돌고있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고, 균형과 조화에서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러나 살다보면 루틴을 깨지 않을 수 없는 큰 사건이 오기 마련이다. 다시 일상으로 회귀할 수 없는 정도의 사건말이다. 이후에 새로운 루틴이 만족스럽다면, 혹자는 이 사건을 ‘삶의 전환점’이라고 말할 것이며, 그 반대의 경우 이 사건은 ‘삶의 오점’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지극히 결과주의적이지만, 말그대로 사건은 ‘하나의 점’이기에, 사건이 일어나는 당시에는 우리는 이걸 뭐라고 설명할 방법을 모른다. 그저 알 수 있는 것은, 이 일로 인해 내 루틴이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표면적인 사실이다. 여기에 온갖 상상이 더해지고, 결국 이렇게 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가 뒤따른다. 그러나 기대는 기대일뿐 우리가 상상했던 것도 어떤 점들에 지나지 않고, 현실은 선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계획대로 되는게 생각보다 없다. 적어도 내가 세웠던 계획은 저 앞에 몇개의 점들을 찍거나, 잘 짰다고 생각해도 점선을 그리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래서 계획대로 되었다는 말에서, 이 계획은 포토샵 파일처럼 사실 수정에 수정에 수정을 거친 청사진이지, 프로토타입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글을 쓸 계획이 없었으나 갑자기 글을 써내려간 것처럼, 나는 타임라인 위에서 이상한 곳에 점을 찍는 것을 삶의 낙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일상 속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예측하기 어려운 것일수록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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