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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달글 Jan 16. 2021

[미스트]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글배우 작가의 책

원래 이번 달에 올리려던 주제가 있지만, 이 글을 먼저 올리기로 했다. 쓰고 싶은 게 있을 때 글을 쓰는 건 글의 완성도를 떠나 그냥 즐거운 것 같다.


주말에 서점을 갔다. 딱히 읽고 싶은 주제의 책이 없어서 이런 걸 읽어볼까 저런 걸 읽어볼까 하던 중에 평소에 잘 가지 않던 코너 쪽으로 갔다. 마음을 달래주는 에세이류 책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어쩐 지 그쪽에선 이런 표지 이쁘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지 읽고 싶다는 맘은 들지 않았다. 여러 책을 봐도 비슷비슷한 얘기일 것 같다는 생각이 컸다. 그냥저냥 의미 없이 책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이 책을 몇 줄 읽었다.


그런 날이 있다. 고유진동수에 맞춰 불어오는 바람에 무너진 타코마 다리처럼 익숙한 몇 문장들에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은 날이 있다. 잠깐 몇 문장 읽다 ‘어..’하는 생각에 책에서 눈을 뗐는데 멈칫하는 나를 인지하는 순간 갑자기 눈가가 촉촉해져 급하게 책장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 상태로 몇 페이지 더 읽었고 다시 일어났을 땐 현기증과 다리저림에 잠깐 눈앞에 캄캄했다. 마스크를 끼고 다녀 다행이라고 생각한 몇 안 되는 날이었다.


이런 반응에 나 자신도 흠칫 놀랐다. 크게 좋은 일도 없지만 크게 기분 나쁜 일도 없고 잔잔한 날들이구나 생각했다. 오히려 주위를 환기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요즘이었다. 그런데 ‘흠.. 뭔가 이런 글 많이 봤던 거 같은데..’ 생각이 들 법한 문장들을 읽고 서점에서 울컥하다니 이렇게나 감성적인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에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몇 번이나 이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모습을 봤던 거로 미루어 보아 최소 몇 주 몇 달간은 사람들이 많이 읽은 책일 것이다.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인 거 보면 그냥 듣고 싶은 말이 듣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요새 젊은이들은 자기만 알고 너무 개인주의적이라는 데 괜찮다 괜찮다고 얘기하는 책들이 계속 나오고 계속 베스트셀러에 올라오는 것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짠해진다.


내 마음의 상태는 나의 오감에 곧바로 반영된다. 그날 저녁이 늦었지만 크게 배고프지 않고, 날씨가 조금 더웠지만 짜증은 나지 않았다.


그날 집에 오는 길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투명 플라스틱 봉투에 꽃바구니를 담아 가는 사람을 보았다. 근처에 꽃시장이 있어 화분을 검정 봉지에 담아가거나 꽃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 가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꽃이 흐트러지지 않게 왼손에 힘을 꽉 주고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옷도 깔끔하게 입고 꽃을 준비하는 것도 모자라 뛰는 와중에도 손은 흔들리지 않게 유지하는 모습이 보기 이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말하듯 내게 상처 준 사람들처럼 나까지 나에게 상처 주지 않기를. 내 말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부디 나를 용서해주기를. 스쳐 가는 인연들에 너무 큰 기대와 오랜 실망을 하지 않기를 하고 바라본다.


영어 표현 중에 ‘You made my day’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고맙다는 표현보다 훨씬 고마움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겐 흔한 그런 부류의 책일지 모르겠지만 그날 오후 내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해 준 책을 만나 반갑고 고맙다고 이 표현을 전하고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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