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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달글 Jan 18. 2021

[훤] 개화


세상을 인지한 태초의 순간을 기억합니다


깊숙이 뿌리내린 나의 터전 그 위로 펼쳐진


아득한 하늘. 별. 우주. 그 찬란함


찬란한 것들은 왜 아득한가요



고정된 나는 많은 것을 올려다보고 많은 것을 동경하고


이내 쓸쓸해집니다


탄생과 뿌리내림과 동경과 고독 그 어느것에도 왜


나의 이유는 없는 건가요



자유로운 당신을 바라봅니다


아득한 것들에 가까이 나는 당신에게도 아득한 것들은 찬란한가요


찬란한 것들에 가까이 나는 당신에게도 찬란한 것들은 아득한가요


당신께 매일같이 질문하고


닿지 못한 물음은 땅에 떨어져 뿌리를 마주하고


식어버린 물음은 줄기를 거쳐 봉오리에서 온도를 되찾습니다


어느새 묻기위해 살아가는 나



나의 이유가 된 당신


당신께 용기내어 언어를 전합니다



(((사랑합니다)))


침묵


((사랑합니다))


긴 침묵


(사랑합니다)


더욱 긴 침묵


찬란한 것들보다 더 가까운 당신은 왜 아득한 것들보다 더 아득한가요



사랑합니다



마지막 외침


첫 말트임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찰나의 황홀함


다시 온몸을 감싸는 고독


지금의 눈부심은 일출이 아닝 석양의 그것


왜 이제서야 당신은



당신이 사랑한 건 꽃의 유한함인가요 화려함인가요


풀리지 않은 의문을 뒤로한 채 서서히 져갑니다


이유없던 많은 것에 이유를 달며


오랜 고독을 석양의 타오름으로 위로하며


태초의 순간으로 다시


아득해집니다



이별은 그 모양에 상관없이 언제나 지난 만남들을 돌아보게끔 한다. 다양한 형태의 인연이 지나갔는데, 어떤 만남은 안온했고, 어떤 만남은 불안했으며, 또 어떤 만남은 뜨거웠다.


‘사랑’이란 단어를 입에서 귀로 섣불리 옮긴 이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나를 “사랑”했고, 내 사랑의 온도를 재단했고, 실망했으며, 이내 다양한 방식으로 떠나갔다.


나를 “사랑”한 사람들은 나의 무엇을 사랑했을까. 무엇을 사랑했기에 그렇게 빨리 “사랑”하고 식을 수 있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스스로를 알아가는 여정의 한가운데이며, 미완의 문장이다. 내가 사랑하는 건 한 편의 완성된 글이 아닌 집필과정이자 저자가 고뇌하는 순간이며, 그렇기에 나 역시 ‘채워진 나’가 아닌 ‘채우는 나’로서 사랑받고 싶다.


오랜만에 내려간 본가. 형형색색의 꽃들에 물을 주시던 엄니께서 “식물은 꽃피울 때 가장 에너지를 많이 쓰기때문에 이제 이 녀석들도 시드는 일만 남았다”고 하신다. 그 말이 얼마나 슬프던지.


꽃이 아닌 씨앗을, 새싹을, 줄기를, 봉오리를, 개화의 모든 과정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꽃의 만개가 삶이 꺾이는 변곡점이라면, 나는 오랜 과정을 사랑한 이와 찬란한 찰나의 감동을 함께 한 후, 서서히 지고싶다.


우리 모두 아무 이유없이 이 땅에 태어나 형체없는 많은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간다. ‘존재의 이유’는 일생을 아우르는 물음이며, ‘사랑하는 존재’이고자 한다면, 어린 아이의 ‘사랑’과 중년의 그것이 다르듯, 중년의 ‘사랑’과 노년의 그것이 다르듯, ‘사랑의 의미’에 대한 철학 역시 우리 앞에 주어진 기나긴 서사리라.


서로가 서로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지난 모든 과정들이 사랑이었음을, 우리가 서로의 모든 순간들을 사랑해왔음을 함께 귀납하고 싶다.


이후 그 믿음을 바탕으로, 변곡점 이후의 사랑을 함께 그리고 싶다.


그렇기에 나는 ‘꽃’의 화려함이 아닌 ‘꽃피우는 존재’의 진실됨을 사랑할 것이다.


라고 다짐하며. “사랑”을 말하고선 ‘그렇게’ 행동한 지난 인연들을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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