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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달글 Dec 31. 2020

[Parapluie] 정이 이야기


흉몽이다.


섬광처럼 눈 뒤를 지나가는 예감과 함께 정이는 꿈에서 허우적대며 빠져나왔다. 히터를 틀었지만 오래된 집이라 12월 공기가 다소 서늘한데, 이마가 식은땀으로 축축하다. 정이는 눈을 질끈 감고 손바닥으로 눈가를 누른다.


아들이 어릴 적의 모습을 하고 있다. 까까머리에 여윈 어깨와 고집 센 눈동자의 내 아이 뒤에는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아이가 달려가기 시작한다. 아니, 쫓긴다. 어두운 것에 쫓기다 다리가 풀려 넘어진다. 피범벅이 된다. 아이를 일으켜 세우려고 정이가 자꾸 손을 뻗는데 다리가 땅 위에 나무뿌리처럼 굳어 움직이지 못한다. 어두운 것을 혼내려고 소리를 질러 보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어설픈 예감이 아니다. 아들과 아들네 가족 일은 항상 꿈으로 먼저 정이에게 다가온다. 첫 손녀만 빼고 둘째 손녀와 셋째 손녀의 태몽도 며느리가 아닌 정이가 꿨다. 둘째 아이가 나오기 전에는 세 살배기 첫 손주와 함께 감자를 캐는 꿈을 꿨고, 셋째 아이가 나오기 전에는 먼바다에서 큰 태양이 이글거리며 뜨는 꿈을 꿨다. 첫 손녀가 교통사고로 다쳐 며느리가 전화했을 때도 정이는 이미 꿈으로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 사고가 난 것도 직감하고 있었고, 다행히 아이가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흉몽은 흉몽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란 말인가. 정이는 불안감에 방을 서성인다.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을 작정이다. 큰 키에 겁이 많은 남편은 지난주에 혈관에 문제가 생겨 입원했다. 뇌로 가는 혈관이 크게 두 개가 있는데, 남편은 선천적으로 뇌로 가는 혈관이 하나밖에 없고, 지금 남은 하나의 혈관이 많이 약해져 함부로 충격을 주지 말라고 했다. 이 사람에게 함부로 혀를 놀리다 송장 하나 더 치울 일은 없어야 한다. 하나 더라…


정이의 마음이 최악의 상황을 향해 달려간다. 겨울바람이 가르릉 거리며 마당의 석류나무를 흔들고, 집 안에는 침묵이 켜켜이 쌓인다. 손바닥에서 자꾸 땀이 난다. 십 년 전부터 말썽을 부리는 오른쪽 무릎이 욱신거린다. 정이는 안방에 놓인 전화기 옆에 앉아 전화기를 노려본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오래된 전화벨이 정적을 깬다. 마음이 착 가라앉아 납작해진다. 정이는 수화기를 든다. 며느리다.

무슨 일이니. 시간의 무게에 짓눌린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어머니...


오랜만에 듣는 며느리의 목소리다. 꽤 차분하다. 전화를 걸기 전에 몇 번을 속으로 연습한 목소리다. 며느리는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아들이 쓰러졌다고 한다.


제 아비를 닮아 그렇게 겁이 많은 내 아들이, 죽은 새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쳐다보던 아들이, 저번에는 청부살인사건이더니 최근에는 한 달을 필리핀 북부 납치사건에 매달려 밤낮도 주말도 없이 일했단다. 모처럼 맞는 주말, 동료들과 골프를 치러 가던 길에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뇌출혈이었다. 즉시 마닐라 중앙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에 들어갔지만 당장은 결과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아이가 달려가기 시작한다. 깡마른 다리로 뛰는 모습이 어설프다.


정이는 눈을 질끈 감는다. 서울에서 매일같이 야근하다가 제 새끼들 데리고 필리핀에 가면 좀 편하게 근무할 줄 알았더니, 가서도 또 고생만 했구나. 작년에 막내 딸네 가족과 함께 마닐라를 갔을 때 푹 꺼진 아들의 눈에서 이미 예상했어야 한다. 냉소적으로 변한 웃음에서 알아차렸어야 한다. 알아봤던들 무슨 소용이었을까. 아들을 상상한다. 피로 얼룩진 아들의 뇌를 상상한다.


까까머리에 여윈 어깨와 고집 센 눈동자의 내 아이. 넘어진 무릎에 흥건하던 피.


교사가 되고 싶어 하던 아들이 제 형-정이의 첫 아이-을 암으로 잃은 건 겨우 열여덟 살 고등학생 때였다. 첫 아이는 참 예쁘고 다정했다. 정이는 아직도 그 아이의 탯줄을 잘라주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고운 아이를 병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데려가버렸다. 그날도 이런 느낌의 꿈을 꾸었던가.


아이의 죽음은 정이의 심장 한 켠을 썩게 했다. 썩은 심장은 주기적으로 난동을 부렸다. 아이의 기일만 되면 아무리 버티려 해도 슬픔이 정이를 에워싸는 탓에 까무러치거나 앓아누웠다. 첫 손주가 태어나기 전까지 그랬다.


며느리와 아들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을 해야 했고, 젊은 공무원 부부의 삶은 육아가 자리잡기에는 비좁았다. 며느리는 정이에게 아이의 양육을 부탁했다. 정이는 아이를 키워주겠다고 했다. 단 서울 집이 아닌, 정이가 사는 대구 집에서 키우는 조건 하에. 조건적 제시라기보다는 통보였다. 두 부부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봉천동 신혼집은 정이가 들어와 아이를 돌보며 살기에는 물리적 여유가 없었다.


솜털같이 적은 머리숱에 눈이 크고 얼굴이 동그란 손주 아이는 정이의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예민하고 고집스러웠다. 땀띠가 심해 일회용 기저귀를 쓰면 바로 발진이 생겨 천 기저귀를 하루에 열다섯 개는 빨아야 했다. 말랑하고 조그마한 몸에 숨긴 화가 어찌나 많은지 뭐가 맘에 안 들면 기어이 토를 할 때까지 울어댔다. 토끼처럼 잘 놀라서 낮에 낯선 사람을 보거나 긴장을 하면 밤에 경기를 해대고 입에 거품을 물어 아이를 업고 집 앞 한의원 문을 두드려 침뜸을 맞게 해야 했다. 한 번 재우려면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대여섯 바퀴를 돌아야 했는데, 매일같이 강제로 산책을 하다 발톱이 하나 빠진 적도 있다.


손주가 집에 오고 아들의 기일이 다가왔다. 정이가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주지 않고 아이는 울고 토하고 웃고 뒤집기를 하고 정이를 찾았다. 정이는 13년 만에 처음으로 그 날을 다른 날처럼 보냈다. 정이는 이 작고 어려운 아이에게 심장과 간과 허파라도 내줄 수 있었다. 아이는 걸음마를 떼고 할무이, 할무이 하며 정이 꼬리라도 된 마냥 정이를 따라 주방이고 마당이고 쫓아다니고 정이가 부르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죽순처럼 자라났다. 정이의 문드러진 심장이 아이와 함께 자라났다.


정이는 손주로 구원받았다. 하지만 둘째에서 외동아들이 되어버린 내 아이는 무엇으로 구원받았을까. 형의 죽음 이후 아이는 사범대에서 경찰대로 진로를 틀었다. 경찰대를 졸업하고도 사범대학원을 힐끗거리는 모습을 정이는 애써 외면했다. 어릴 때부터 명석했던 아이니까, 잘 선택해서 해내리라. 아들은 결국 경찰청으로 들어가 동기보다 빠르게 승진했다. 정이는 그런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아이가 해가 갈수록 송곳처럼 예민해지기는 했지만,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여유를 찾으리라 믿었다.


아이 뒤에는 제 형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그 그림자는 항상 그곳에 있었을까. 꿈에서 넘어지던 아이의 모습이 정이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재생된다.


... 어머니?


정이의 침묵이 생각보다 길었나 보다.


병원 주소만 숙이에게 전해다오. 금방 갈 테니.


전화를 끊고 딸 숙이에게 전화한다. 딸아이는 정이보다 먼저 상황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사위가 부랴부랴 오늘 밤 비행기로 마닐라로 갈 예정이란다. 괘씸한 상황이지만 정이가 당장 화를 내봤자 해결될 것은 없다.


비행기 끊어놔라. 정이가 말한다. 조건적 제시가 아닌 통보다. 딸아이는 구태여 반박하지 않을 정도로 정이를 잘 안다.


돈이랑 이것저것 준비해야 해서, 오늘 밤은 좀 힘들어 엄마. 내가 내일까지는 다 챙길 수 있으니까 우리 내일 오후쯤 가자. 비행기 끊어둘게. 엄마는 여권 챙겨두고.


그래 알았다. 끊자.


수화기를 던지듯 내려놓는다. 이 일을 어쩌나. 내 아이를 어쩌나. 꿈에서 본 어두운 것을 쫓아가 갈기갈기 찢어 태워버리고 싶다. 밤이 지나려면 한참이 남았다. 모로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해 보지만 째깍거리는 초침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아까의 꿈이 변주되며 반복된다. 꿈과 생시와 그 경계에서 정이는 주문을 외듯 빈다. 그 대상이 누구든, 빈다.

내 아이 좀 살려주소. 살려주시이소.


데려가거든 차라리 날 데려가이소.


겨울 아침은 굼뜨게 온다. 겨우겨우 다섯 시까지 버텨내었으나 창이 밝아오기를 도저히 기다릴 수 없다. 정이는 일어나 집을 정리하고 여름옷과 작년 마닐라를 갈 때 발급해둔 여권을 서랍장에서 찾아 짐을 챙긴다.


평소처럼 오전 여덟 시에 남편이 있는 병원에서 남편이 병원 밥을 먹는 모습을 바라본다. 남편은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한동안은 아무것도 몰라야 한다. 정이는 마산 동생이 아프다는 핑계를 둘러댄다. 오늘 가서 나흘 밤 자고 오겠다는 말에 남편은 한 틈의 의심도 없이 잘 다녀오라고 한다. 무심함은 축복이다. 무지는 행복이다. 좋겠소 당신은, 속 편해서,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을 겨우겨우 삼키고 집으로 돌아온다.


딸아이는 저녁 여섯 시 비행기를 끊었다. 두 시에 딸아이와 김해공항행 셔틀버스에 탄다. 두 사람 모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괜찮을 거야, 따위의 섣부른 위로는 안 하느니만 못하므로, 모녀는 서로 침묵으로 일관한다.


딸과 수속 절차를 밟고 비행기에 오른다. 거대한 철제 기계에 달린 엔진이 위잉거리는 소리에 정이는 까무룩 잠이 든다.


손주와 불공을 드리러 절로 향하는 돌계단을 오른다. 백일 때부터 내 손으로 천 기저귀를 갈고 이유식과 미숫가루를 먹여 키운 손주는 표정이 맑다.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둥그런 양 어깨 위에 올렸다. 정이는 아이가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아이의 모습이 낯설다. 아이의 뒷모습과 땋은 머리 사이의 가르마를 망연히 바라본다. 할무이 뭐해? 얼른 와. 아이가 정이의 손을 쥐고 재촉한다. 정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계단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밟아 오른다. 평소라면 진작 욱신거려야 할 오른쪽 무릎이 하나도 아프지 않다.


살았구나.


정이는 눈을 뜬다. 그새 이륙한 비행기는 바다 위 하늘에 떠 있다.


머리를 풀어헤치지 않았다. 상중인 사람이 할 머리가 아니다.


살았어. 내 아이가 살았어.


힘을 얻은 정이의 마음이 비행기보다 빠르게 마닐라로 향한다. 아들이 누운 병실에 먼저 가서 동남아의 태양에 까맣게 그을린 아들 이마에 손을 얹는다. 용아, 엄마 왔다. 이제 인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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