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신없이 한 달을 보냈다. 인사이동, 업무분장, 이사 등등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다.
1월에 끝무렵에 와서야, 내가 나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고
즉석해서 친구에게 카페 추천을 받아, 버스를 타고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카페는 큰 창이 나있는 작은 북카페로, 위치는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다.
외부는 하얀 색이지만, 내부는 나무 프레임과 조명들로 이루어져 있어,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북카페라는 것이 어떤 정의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쪽에는 책을 빌려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판매를 위한 새 책들이 있었다.
좌석은 다닥다닥 붙어도 10명 앉을 수 있을까 싶은데,
오랜 시간 동안 책을 읽다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좌식 테이블과 담요도 있었다.
나는 한 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시간이 나면 읽으려고, 비치된 서재에서 이석원 산문집을 하나 꺼냈는데,
사장님이 커피를 내주시면서 '그 책 재밌어요'라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시간을 내서 읽고 있는 중이었다.
카페에서는 내내 쇼팽의 야상곡 같은 잔잔한 음악들이 흘러 나왔는데,
가게 한 가운데에 위치한 CD 플레이어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CD 플레이어 아래에는 주인 아저씨가 그동안 모아는 CD앨범들과 LP앨범이 조금 있었고,
가끔 치시는 것 같은 일렉기타가 옆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고양이가 들어와서, 눈이 갈 곳을 잃었고
생각난 김에 CD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2]
지난 달에, 운이 좋게도 최백호 선생님의 유튜브를 구독하다가 댓글을 하나 남겼는데,
해당 유튜브에서 이벤트를 하고 있어서, 선생님의 싸인 CD를 받게 되었다.
뜻밖에 CD를 받게 되어서, 일단 기분좋게 CD를 수령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집에는 CD플레이어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 소중한 CD는 그대로 인테리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갑자기 CD의 위상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 뭔가 애매한 느낌이랄까.
요새는 스마트폰으로 왠만한 음악을 다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채널도 다양해서 대중음악 뿐만 아니라, 지나간 음악 혹은 인디 음악까지
언제 어디서든 접할 수가 있다.
위의 매체가 하이엔드라면, 반대로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LP에서 나는 소리를 그리워 하는 사람, 테이프가 늘어지는 느낌을 추억하는 사람,
유튜브에서도 Lo-fi 음악을 찾을 수 있지만, 그 맛이 그 맛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위해, 박물관에 있던 매체들이 현역으로 다시 뛰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CD앨범은 뭔가 애매하달까. 아날로그도 아니고, 디지털도 아닌.
엄연히 따지면 디지털이지만, 감성을 잃었는데 편의성도 밀린다.
어린 시절 박고테(박경림 고속도로 테이프) 프로젝트가 나올 무렵,
그때만 해도 '테이프&CD 동시 발매'가 호응을 얻을 정도로
CD는 신문물이었는데, 지금은 갈 곳을 잃지 않았나.
나중에는 CD 자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미 어린 아이들은 모를수도 있겠다.
한글/워드에서 '저장하기' 아이콘이 '플로피 디스켓'을 하고 있지만, 어디 요새 그런 실물을 볼 수가 있는가.
콘솔 게임들도 대부분 다운로드 스토어를 통해 게임을 구매하는지라,
용산이나 국전에서 쫄면서 CD 중고거래를 했던 것도, 그땐 그랬지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오늘 카페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는 CD플레이어를 보니, 백년 노장을 만난 기분이다.
어떻게 보면, 집안에 한 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우리 집의 테마곡을 만들어주고
10년 내내 아버지의 카렌스에서 제 역할을 해오던 CD인데, 이제는 뛸 무대가 현저히 줄었다.
사람은 아니지만, 이러한 것들이 사람과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우리가 더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디선가 나를 찾는 곳은 있을지.
그래서인지 오늘 CD플레이어에서 나오는 음악이 더 쓸쓸한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