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없는 Parenting 이지만 공유하자
내가 해외생활 28년 차에 느끼는 건 한국만큼 독특한 문화를 가진 나라도 드물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의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그것이 지금의 한국을 만들어낸 원동력이자 한국인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하는 한 사람이지만 그 열정이 “교육”과 결합하는 순간 참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한국이기도 한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제 아무리 좋은 교육제도도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 똥 된다고. 우스개 소리로 똥이라고 비유를 했지만 그 속뜻을 들여다보면 아무리 좋은 교육제도도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 그 특유의 “열정”이 그 제도를 변질시키고 결국 또 다른 하나의 경쟁 도구로 변질된다는 뜻이다.
해외에서 아이 둘을 낳아 호주와 말레이시아에서 기르고 교육하며 느끼는 건 참 한국인은 다르다는 거다. 좋게 얘기하면 열정적인 부모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유별난 학부형이다.
호주의 10분의 일도 안 되는 땅덩어리에 호주의 10배 가까이 되는 인구가 사니 그 경쟁이 오죽하랴. 한국의 경쟁사회를 겪어보지 않은 이상 “한국 학부형”을 비난할 수는 없으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조금은 불편할 수 있고 많은 이들이 느끼지만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지금의 학교인 몽키아라 국제학교에 아이들이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큰아이가 1학년이었고 작은 아이는 아직 유치원을 다니고 있던 그 무렵, 학교에서는 어린 자녀를 둔 학부형을 위한 육아 클래스를 무료로 제공했는데 지금은 너무 오래되어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육아법은 나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고 그것이 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는 건 확실하다.
꽤나 긴 수업이었는데 뇌리에 박혀 기억나는 건 “ 아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실수를 할 기회를 주고 그 실수를 통해 스스로 배우도록 만들라”는 것이었다.
일례로 아이가 학교에 중요한 숙제를 가지고 가지 않았다, 오늘 숙제를 내지 않으면 숙제를 안 한 것과 마찬가지로 낙제점을 받는다.
이 경우 한국의 부모님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아는 대부분의 한국 엄마들은 숙제를 잊고 안 가져가는 일을 미연에 방지한다.
이미 최소한 일주일 전부터 한국 부모는 그 숙제를 언제까지 내야 하는지 이미 꽤고 있을 것이고 숙제를 도와주는 선생님을 알선하고 전날 숙제를 마쳤는지 아이에게 물어봤을 것이며 숙제를 포함한 가방을 싸주었을 것이다.
설사 엄마가 깜빡하고 숙제를 안 챙겨 줘서 당일 아침에 잊어버리고 안 가져갔다고 해도 아이보다 더 당황하며 학교로 숙제를 가지고 달려갔을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이것이 앞에서 끌어주는 육아법이다. 아이가 해야일, 가야 할 길, 아이의 목표, 그것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모든 과정에 관여하고 매니징 하는 육아법이다.
이런 끌어주는 육아법에서 사실 제일 큰 문제는 아이들이 실수하며 배울 기회를 빼앗아 버린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며 그런 작은 실수를 바탕으로 성장해나간다. 이 육아클래스에서는 이런 예시를 들어 이야기를 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숙제를 안 가지고 가서 아! 선생님 깜빡하고 숙제를 안 가져왔어요라고 했을 때와 성인이 회사에서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앗! 프레젠테이션을 안 가져왔어요! 하하라고 했을 때 어떤 상황이 더 최악의 상황일까?
미국 학교에서 아이들을 보내면서 다르다고 생각한 한 가지는, 아이들의 독립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미국식 국제학교는 영국식 국제학교에 비해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처럼 느껴지는데 사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들만의 엄격한 규율 같은 게 있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독립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발표가 있어도 부모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아이들이 알아서 준비해오게 만든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혼자서 챙기고 준비하는 훈련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일에 책임을 부여함으로 아이들에게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후에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를 가르친다.
즉, 하나의 독립적 인격체를 만드는데 기초를 두는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도움을 청할 때 언제든 들어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이가 이상한 길로 빠지지 않는지 혹은 길을 잃고 헤매지 않는지를 “뒤에서 살펴보고” “뒤에서 밀어주는” support 형태를 띠고 있다는 큰 차이가 있다.
어쩌면 끌어주는 것이나 밀어주는 것이나 아주 작은 차이일지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굉장히 다르다. 주체적인 역할을 하는 리더가 부모가 되느냐 아이 자신이 되느냐의 차이이니까.
학생은 배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가장 완벽한 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무슨 실수를 하든 어느 정도 수용을 해주고 누구나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사회는 어떠한가?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성인들의 자비 없는 세상이다. 우리가 실수를 하고 배워야 할 시기는 성인이 되기 전 지금 우리 아이들의 시간이다.
학생 때 실수를 통해 배우고 자신을 컨트롤하고 매니징 할 수 있는 “준비된 아이” 와 챙김만을 받아 누가 챙겨주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몸만 어른인 아이” 중 사회에 빨리 적응하고 더 나은 퍼포먼스를 내는 건 어떤 아이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자잘한 실수를 많이 하고 거기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실수가 실패가 아님을 알려주는 것. 실수를 통해 더 단단하고 한 단계 성장하는 아이가 되는 것. 자기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것. 그것이 육아의 본질임을 알려주는 육아 클래스였다.
그래서 나는 집이 학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음에도 아이가 체육복을 학교에 가지고 가지 않거나, 랩탑(노트북)을 집에 놔두고 가도 학교에 가져다주지 않는다. 선생님께 혼이 나든, 어떻게든 누구에게 빌리는 기지를 발휘하든, 그날 하루 수업을 망치든, 자기 것을 스스로 챙기지 않았을 때 겪어야 하는 창피함을 스스로 감당하도록 만든다.
몇 번 그렇게 곤란함을 겪고 나서는 내가 챙기지 않아도 스스로 잘 챙기는 아이로 자랐다. 그리고 생각보다 뭘 안 가지고 갔다고 해서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더라.
아이는 또 순간의 기지를 발휘해 안 좋은 상황에서도 최선의 길을 스스로 찾았다. 지금은 학교의 사사로운 준비물이나 본인의 책가방을 싸는 일은 내가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지금 큰 아이는 입시생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신경 쓰는 게 거의 없다. 혼자서 스케줄을 관리하고 성적도 관리한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아이는 중2학년인데 준비물 같은 건 혼자 챙겨가고 이제 아침밥도 혼자 챙겨 먹고 가는 수준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온전히 자기 앞가림은 본인이 하는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길 기대해본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떤 게 옳은 길인지 참 헷갈리고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지금도 여전히 매일이 그러하다. 나도 부모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확신하는 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고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