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속에서 처음 마주한 진짜 나
“이제,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명상 선생님의 첫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불과 몇 초 만에, 나는 나 자신과 맞닥뜨렸다.
너무 시끄러운 나, 너무 불편한 나,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나.
인도에서 명상 수업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고요함’이 주는 평화 같은 걸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고요해지자마자 내 머릿속이 가장 시끄러웠다.
나는 ‘명상’을 하면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눈을 감는 순간 밀려오는 건 끝없는 생각의 파도였다.
아침에 먹은 밥, 오늘 있었던 말, 어제 놓친 이메일,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 과거의 실수까지.
‘왜 이러지? 명상이 나랑 안 맞는 걸까?’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초조해하던 그때,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 올라오는 생각도, 당신의 일부입니다.
도망치지 말고 바라보세요.”
그 말은 충격이었다.
나는 늘 생각을 ‘없애야 할 것’으로 여겨왔는데,
여기서는 오히려 생각을 그냥 바라보라고 한다.
명상 수업이 반복될수록
나는 점점 더 내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들을
‘좋다’ ‘나쁘다’로 나누지 않고 그냥 바라보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슬픔이 올라오면 그냥 슬픔을,
짜증이 올라오면 그 짜증을 그대로 둔다.
내 안에 작은 의자 하나를 놓고, 그 위에 앉아 나를 지켜보는 일.
처음엔 그게 어려웠다.
나는 늘 뭔가를 ‘해결’하려고 했고,
감정을 ‘관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명상은 해결이 아니라 동행이었다.
“지금 이 감정과 함께 있어 보세요.”
그 말에 따르자,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명상은 때로 고요하지만,
더 자주 불편하고, 답답하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불편함을 계속 앉아서 지켜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그 불편함도 내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이 감정은 외면당해서 더 커졌어요.”
“나를 자꾸 고치려 하니까, 내가 소리를 지른 거예요.”
그 소리를 듣고 나면,
나는 더 이상 내 감정의 피해자가 아니라,
그 감정의 관찰자이자 친구가 된다.
명상이라는 단어는 종종 ‘머릿속을 비우는 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인도에서 내가 배운 명상은
비움이 아니라 깨어남이었다.
나는 내 안에 이렇게 많은 생각이 있다는 걸,
그 생각이 내 감정을 이렇게 쉽게 좌우한다는 걸,
그 감정이 내 몸까지 영향을 준다는 걸,
가만히 앉아 있기 전엔 몰랐다.
눈을 감고 있지만, 오히려 세상이 더 뚜렷하게 보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내 내면의 목소리가 더 분명하게 들리는 시간.
그게 바로 명상이었다.
명상 수업 마지막 날,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명상은 자기를 고치는 도구가 아니라,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입니다.”
그 말은 내가 이곳에서 얻은 가장 조용한 울림이었다.
나는 이 수업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괜찮고,
불안해도 괜찮고,
오늘 내가 생각이 많아도, 괜찮다는 걸 배웠다.
그 순간, 나는 나를 처음으로 깊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