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한 시대를 거쳐지나가는 그림창작자에게
나는 걱정이 많은편이다. 그런 나는 뉴스를 많이 본다. 불안해서 본 뉴스인데, 보고 나면 오히려 불안이 다섯 배쯤 불어난다. 뉴스는 걱정을 증폭시키는 양성소 같다.
세상은 점점 극단적으로 흘러간다. 21세기를 하나의 이야기라고 본다면, ‘발단-위기-절정-결말’ 같은 구조가 있을 텐데, 우리는 지금 절정을 향한 콘텐츠들 속에 있다. 모든 게 위기와 절정 쪽으로 쏠려 있다.
트럼프 이후로 아슬아슬하던 국제질서는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각국은 점점 우경화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세계대전의 트리거가 될 수 있다.
그 와중에 기후위기라는 전지구적 협력이 필요한 과제가 있고, AI는 직업 세계를 흔들고, 한국은 저출산이라는 구조적 위기에 봉착했다. (블라블라)
말 그대로, 참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이런 걱정들로 나는 가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약사도, 농부도 아니다. 다만 그림이라는 생존에 크게 쓸모 없어 보이는 일을 하고 있다. 만약 방주가 있다면, 나는 그 탑승 명단에 들 수 있을까? 조금만 생각해봐도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런 긴박한 시기에 눈치도 없이 그림을 선택한 내가 바보같이 느껴진다.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이불을 뒤척인다.
인정하자. 세상의 불안한 일들이 거대한 파도라면, 이미 물에 들어와 있는 우리는 아무리 열심히 헤엄쳐도 그 파도를 피할 방법은 없다는 것을.
하지만 파도가 크면, 멀리서 오는 게 보일 수는 있다.
그러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안 좋은 시나리오를 상상해보자.
그 파도를 내가 미리 보았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수영을 배우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배운다고 해도 아마 그 파도에 맞설 수 없을 것이다.
대신, 질문을 바꿔서 던져본다.
“나는 전쟁이 나도 그림을 그릴 것인가?”
대답은 ‘예’였다. 돈을 버는 방식은 바뀔지 몰라도, 그림은 계속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림을 그리는 게 맞는가’ ‘ 쓸모있는 다른것을 준비해야하는가’ 에 대한 고민은 의미 없다. 전쟁 중에도 그림을 그릴 거라면, 지금부터 제대로 그리는 게 맞다. 다만 위기에 임박한 지금, 더 단단하게 그림과 나를 묶어야 한다. 파도가 왔을 때 그림을 놓치지 않록 단단히.
공적인 채널에 나를 알려야한다. 단단해서 쓸려가지 않을. 전쟁중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무언가.
그리고 진지하게 지금 내 그림이 전쟁 전의 것이라면, 전쟁 후에도 여전히 볼 가치가 있을까? 너무 유치하지는 않을까? 그 후에도 견딜 수 있는가?
그러면 고난을 버티고 남은 예술들은 무엇인지 봐야한다. 고전은 수많은 역경을 버티고 현재의 우리에게까지 온 내구성이 좋은 예술이다.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더 간절하게 골몰해야 한다. 파도가 오기 전에 제대로 묶어두지 못 한다면 그 이후에는 나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어설픈 시도는 모든 것을 무위로 돌려놓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진정으로 세상의 불안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 두려움을 ‘그림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잃고 싶지 않다면, 손 놓고 눈감는 게 아니라 나는 지금, 움직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