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와 있든 나 자신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뭐 하러 그런 거 하냐?"
라고 하는 소리가 직, 간접적으로 들린다.
앞에다 대고 직접 말은 안 해도 "왜 저렇게 사냐!"라고도 한다.
내 삶의 방식에 대해 나도 자주 의문을 품긴 한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는 삶이 고달프긴 하다.
나를 바꾸려는 사람이 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그랬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을 위해 나를 바꾸려는 의지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
보험을 들라거나 자기네 협회에 가입하고 자격증을 따라는 것처럼,
정기적으로 자신에게 돈을 내고 목돈을 가끔 낼 때마다, 계급처럼
사회에서의 존재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주는 '증서'를 주겠다는 식이다.
아니면 나에게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를 하며 살라 한다.
또는 뭘 달라는 건 아니지만 자기처럼 살지 않는다고
내가 하는 것, 사는 방식에 대해 뒷소리가 들린다.
나를 바꾸려고 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나에 대해 한심하게 생각하는 말이다.
자기 방식이 옳다는 건데 그렇다고 순수하게 자기 길을 같이 가자며
길을 내어주는 사람은 드물다. 자기도 가기에 빡빡한 길이니 이해는 한다.
자신은 옳은 길을 가지만 자기 길이 빡빡한 건 주변 사람들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그들보다 못사니 할 말은 없다.
그렇다고 나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나를 위해서 도와주려는 사람도 있고,
순수하고 좋은 마음에, 자기가 성공한 길이 좋아서 소개하는 사람도 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사람을 통해서 오는 것이니
그나마 지금처럼 살고 있는 것도 사람들 덕분이다.
앞으로 올 좋은 일들도 사람을 통해서 올 것이다.
누가 변화시키려 하지 않아도 내가 흔들릴 때가 있다.
가족, 친구, 이웃, 직장 동료... 누군가와 있을 때
학교, 집, 직장, 모임... 어떤 장소에 있을 때
혹은 특정 상황에서
방어적이거나 의기소침하거나 수다스럽거나 친절해지기도 한다.
경력을 쌓거나 투자 등을 공부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착한 사람을 만나면 착해지고, 나쁜 사람을 만나면 나도 나빠진다.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받는 것은 신선한 일이지만
지나치게 타인에게 끌려서 따라가면 곤란하다.
그동안 살아온 걸 돌이켜보면
내가 생각해도 난 참 어리석었고 후회되는 것도 많긴 하다.
식물은 타인의 기대대로 자기를 바꾸지 않는다.
식물은 연약해 보이지만 자기 속도로 성장하며 자기가 하려는 것을 바꾸지 않는다.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난다"는 속담이 있다.
콩을 심어놓고 팥이 되기를 아무리 소망해도 팥이 되지 않는다.
자기 계발서에는 상상의 힘, 시각화의 힘을 강조하지만
(종자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오랜 기간 내공이 쌓여 변종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나의 염력이 부족한 탓일까.
식물은 시각화로 종자가 바뀌지는 않는다.
하물며 옆에 아무리 웅장한 나무가 있어도 제비꽃이 소나무가 되지 않고,
화려한 목단이 옆에 있어도 소나무가 붉은 꽃은 피우지 않는다.
식물을 키우며 허튼 소망을 가끔 품다가 실망하지만
그런 꿋꿋함이 좋다. 그것이 식물의 진정성일 거다.
진정성 속에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흔들리며 피지 않는 꽃이 있으랴'라고 어느 시인이 말하듯
흔들려도 꽃은 자기 모습대로 핀다.
스파티필룸, 산세비에리아, 죽백나무, 호야, 아이비, 새무리아,
글로리오섬, 싱고늄 스트로우베리....
내 베란다 정원에 있는 식물들!
모두 자기 모습대로 켜서 다행이다.
난 이렇게 다양하고 신기한 식물을 상상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