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장자> 외편 중 천지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百年之木(백년지목),破為犧尊(파위희준),
백 년이나 된 나무를 쪼개서 제사용 술동이[犧樽]를 만들고
青黃而文之(청황이문지),其斷在溝中(기단재구중)。
청색과 황색(온갖 화려한 색)으로 칠해서 장식하고,
깎여진 나무 찌꺼기는 더러운 도랑 속에 버려진다.
比犧尊於溝中之斷(비희준어구중지단),則美惡有間矣(즉미악유간의),
술동이(희준, 犧樽)와 도랑 속에 버려진 나무 찌꺼기를 비교한다면
아름다움과 추함(美醜)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지만
其於失性一也(기어실성일야)。
본성을 잃어버렸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매혹하는 화려함과 아름다움에도 생명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연예인이나 예술가의 경우
원래 개성 있고 재능과 실력이 뛰어나 성공하는 경우도 많지만
요즘은 (예술인) 개인의 인간적 매력과 다른
'만들어진 이미지'로 상업화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일반인들도 성형수술을 과잉으로 해서 알아보기 어렵고,
자기 몸매가 아닌 이상적 기준에 맞춰 만든다.
직업도 마찬가기다. sns에 올리는 이미지들도
개성이라기보다는 꾸며진 화려함이 많다.
<장자>에서 말하듯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지고 높은 곳에 올려지더라도,
그의 일부분은 깎여서 쓰레기로 추하게 버려지는 부분이 생기고,
'생명력을 잃었다'는 점에서는
버려지는 부분이나 높여지는 부분이나 같다.
화려하게 꾸며진 거짓 자아나
추하게 버려지는 쓰레기나
진짜 자기는 생명력을 잃고
죽은 것이라는 점에서는마찬가지다.
참다운 예술을 하는데
꾸며지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기교가 더해진 것과
생명력을 잃고 덧칠해서 꾸민 예술은 다르다.
비록 화려하게 꾸며지진 못해도
생명력을 잃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