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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무아상
Jan 25. 2024
식물을 키우며 알게 된 사랑 하면서 오해하는 것
프롤로그
식물은 자기 씨앗이 품었던 대로 자란다.
다른 식물들이 품고 있던 것을 바라보며 헤매지 않는다.
나는 어떤 씨앗이었던가
그 씨앗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을 텐데
내가 그 씨앗을 오해했기 때문에 상처받고 헤매기도 했다.
사랑을 하면서 착각을 일으킬 때가 많다.
사랑에 대한 오해가
그 사랑이 집착에 가까울 때
지나고 보면
나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사랑을 하면서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할까 가
나에게는 늘 문제였다.
*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식물을 좋아해서 많이 키웠지만, 그리 잘 키우는 편은 아니었다.
이번엔 내 생각이나 기분 내키는 대로가 아니고
식물을 좀 더 이해하고 관찰하며 키우기로 한 것이다.
죽백 나무를 데려왔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꽃말은 '소원성취'이고,
'느리게 자라는 나무'라는 별명이 있다.
나의 소원이 뭘까 생각해 보니,
최근 나는 소원도 꿈도 없었다.
예전의 나의 삶도 그랬다.
뭔지는 모르지만 뭔가를 추구하며
정신을 못 차릴 만큼 뜨거운 열정이 있었던 때도 있었지만,
제대로 살아온 것 같진 않았다.
요즘엔 그 모든 걸 내려놓고 잘 살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는데,
비워진 것에 더해 의욕마저 없어졌으면서
엉뚱한 것들에 집착하고 있는 나를 본다.
죽백 나무를 데려온 기념으로
내 마음속에 '별의 씨앗'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음속에 별을 품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언제나 느리게 자라는 나에게
삶의 포르테가 될 꿈을....
*
죽백나무 외에도 다른 식물들을 분양받아 키우며 공부도 했다.
싱고늄, 몬스테라, 베고니아, 필로덴트론...
매일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 또 보고,
뿌리가 나오는지, 촉이 나오는지, 잎사귀가 나오는지...
식물을 키우며 나의 조급함을 알게 된다.
그 무엇에도 열정이 식은 듯하던 나에게도 욕심이
남아 있었던 걸까.
그런데 징크스처럼
내가 애지중지 키우는 식물은
오히려 애를 태우며 탈도 많고 잘 자라지 않았다.
좀 무심한 듯 키워야 잘 자랐다.
*
예전엔 겨울이 참 힘겨웠다.
몸과 마음, 생각마저 얼어붙어, 환자 같은 모습으로
오래오래 견디던 어느 겨울이었다.
숨이라도 좀 쉬어보려고 베란다로 나가니
죽은 줄 알았던 화분의 마른 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울컥 식물에게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
생각해 보면, 집 밖의 지구 땅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세월에, 무한히 많은 새싹이 돋고 자라고 했을 텐데
죽었거니 신경도 안 쓰던 식물 하나가
뭐가 그리 대수란 말인가
나에겐 그렇게도 좋은 일이라곤 일어나지 않았던 것인가
내 주변의 물건들은 자기 모습으로 성장하며 변화하지 않는다.
단지 낡아지고 차츰 버려질 뿐이다.
나는 물건일까 생명인 걸까
새롭게 싹트고 그 자라는 걸 본다는 것,
품고 있었던 스스로 모습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걸 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자꾸 식물에 눈길이 가고, 지칠 때마다
식물을 바라보게 되는
이유인 것 같다.
*
예전엔 노랗게 변한 잎이 화분에 보이면,
새잎이 성장하는데 영양분을 뺏어갈까 봐
얼른 떼어냈다.
하엽이란 아래 잎이 노랗게 변하는 걸 말하는데
새로 난 잎에 자신의 영양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니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두어야 한다고 한다.
나도 하엽처럼
새잎들에 영양분을 축내고 있어 떼어내야 하거나
내 생명을 빼주며, 밑거름 역할밖에 할 수 없는
성장도 못 하고 시들어 가는 모습인 것 같아 슬프기도 하다.
하지만 죽은 자에게 만 부활이 있다.
식어버린 열정과
잊고 싶고 떼어내고 싶던
과거의 나의 보기 싫은 모습들은
새로운 나의 모습에 밑거름으로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오롯이 사랑하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
이젠 춥고 괴로웠던 겨울도 사랑하게 되었다.
춥고 황량함 속에 내면의 열기로
씨앗을 품고 있었던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마음의 겨울이 깊으면 봄이 찾아온다.
종수곽탁타전(種樹郭槖駝傳)- 중에서
유종원(柳宗元)
곽탁타는
원래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곱삿병을 앓아
등이 우뚝하여 구부리고 다니기에
낙타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은 그를 타라고 불렀다
타는 그것을 듣고 “참 좋구나
나를 이름 지음이 정말 꼭 맞아”라고 했다
그리하여 원래의 이름을 버리고
또한 자신도 탁타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마을은 풍악향이라 하는데
장안 서쪽에 있다.
타는 나무 심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모든 장안의 세도가와 부자들
및 정원을 관상하며 노는 사람들과
과실을 파는 사람들이
모두 다투어 그를 맞이하여 나무를
키우고 돌보게 하려 했다
타가 심은 나무를 보면
간혹 옮겨 심어도
살지 않는 것이 없었고
무성히 잘 자라서
빨리 열매가 많이 열렸다
다른 나무 심는 자들이
비록 몰래 엿보고 모방하여도
같게 할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나 탁타가 나무를 오래 살게 하고
잘 자라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의 천성을 잘 따르고
그 본성을 다하게 하기 때문이죠
무릇 나무의 본성은
그 뿌리는 뻗어나가기를 바라고
그 북돋움은 고르기를 바라며
그 흙은 본래의 것이기를 바라고
그 다짐에는 빈틈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미 그렇게 하고 나면
건드려도 안 되며 걱정해서도 안 되고
떠나가서 다시 돌아보지 않아야 합니다
처음에 심을 때는 자식을 돌보듯 하고
심고 나서는 내버린 듯이 하면
그 천성이 온전해지고 그 본성이
얻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무의 자람을 방해하지 않을
따름이지
나무를 크고 무성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의 열매 맺음을 억제하고
감소시키지 않을 따름이지 일찍 열매를
많이 열리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나무 심는 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뿌리는 구부러지고 흙은 다른 것으로 바꾸며
그것을 북돋음에는 지나치지 않으면
모자랍니다
또한 이와 반대로 할 수 있는 자도 있으니
또 그것을 사랑함에 지나치게 은혜롭고
그것을 걱정함에 지나치게 부지런합니다
아침에 보고 저녁에 어루만지며
이미 떠난 후에 다시 와서 돌보지요
심한 자는
그 껍질을 긁어서
그것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시험해 보고
그 근간을 흔들어서
심어진 상태가 성긴지 빽빽한지를 봅니다
그래서 나무의 본성이
날로 멀어지는 것이지요
비록 그것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것을 해치는 것이요
비록 그것을 걱정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나무와 원수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나와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그밖에 또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식물을 키우며
사랑하며 착각하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혹시나
봄이 오지 않을까. 여름이 오지 않을까 가을이 오지나 않을까
의심하고 조바심 내다 지쳤다.
믿음 없이 걱정만 하고
지치면 씨앗을 유기하고 방치하기도 하고,
다들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하나 하고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이래야 하는데, 저래야 하는데...
내 기분이나 생각대로 헤매곤 했다.
기대도 걱정도 의심도 욕심도 조바심도 허무함도 변명도
식물 기르기엔 소용없는 일이다.
그저 식물의 특성에 대해 잘 이해하고
그것에 맞게 해 주고, 씨앗을 믿으며
충분히 행복하고 사랑하면 될 일이다.
사랑이 성숙하게 만들지만,
성숙하지 않으면 사랑도 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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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상
책, 영화 보기, 식물을 기르는 것을 좋아하며 마음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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