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리뷰

by 무아상


다름을 통해 배우는 것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리뷰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1930년에 출간되어 거의 95년이 지난 소설이다. 예전에 우리나라에 <지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을 때 읽어보고 최근에 다시 읽었다. 영화나 책을 본 후, 재미있어도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반복해서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 이 책도 다시 읽어 보고 싶던 책이었는데, 전에 읽었을 때와는 다른 것들이 느껴졌다. 다음에 읽으면 또 다른 리뷰를 쓰게 될 것 같다. 또한 이 소설의 주인공과 나는 외부적 배경이 다르지만, 나의 이야기같이 느껴졌다.


좋은 소설일수록, 등장인물의 성격과 환경이 달라도 마치 나의 이야기 같은 매력이 있다. 헤세가 이 책을 <영혼의 자서전>이라고 했듯이, 작가의 깊이와 통찰력, 진솔성이 담겨 있어, 매번 새롭고 공감을 줄 수 있는 고전이 된 것 같다. 진실한 내용은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데, 사람이란 다르다고 해도 공통의 요소가 있고, 한 가지 특성을 보인다고 해도 잠재되어 있는 다른 성격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소설 또한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두 사람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두 사람은 기질은 다르지만, '관계'를 통해 사랑을 배우고 성숙해 간다.

이 소설이 특히 ' 나의 이야기' 같이 느껴지는 건 '원형*'을 다루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두 경향을 이야기할 때 흔히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적인 것으로 분류 하는데, 이 소설의 두 주인공도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원형으로 비유될 수 있다. 아폴론적인 것은 이성, 꿈, 밝음, 태양, 개별성 등을, 디오니소스적이란 대지, 감각, 예술, 통합적, 도취, 죽음을 통한 부활 등을 의미한다.

나르치스는 아폴론에 비유될 수 있다. 시대적으로 말하면 중세 시대가 떠오른다. 잘 생긴 외모에 젊은 나이지만 수도원의 수습교사로 있을 만큼 학문에 뛰어나다. 자기 절제와 통제를 잘하고 좀 도도해 보인다. 밝은 세계, 언어적이고 이성적이다. 어느 날 두 살 어린 금발의 미소년 골드문트가 아버지(규율, 통제, 하늘, 아폴론적)의 손에 이끌려 수도원에 학생으로 입학한다. 스승과 제자 사이지만 두 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그들은 서로의 매력에 이끌린다. 어느 날 골드문트는 친구들에게 이끌려 규율을 어기고 밤에 여자들과 어울린 후 혼란스러워서 병을 앓게 되고, 나르치스가 간호하며 둘은 친해진다. 골드문트는 디오니소스에 비유될 수 있다. 서로가 조금씩 차이를 느끼지만 골드문트는 나르치스를 닮고 싶어 한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자기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을 꿰뚫어 보고 그의 길을 제시한다.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의 말에 처음엔 섭섭해하지만, 잊었던 어머니(대지, 디오니소스적)를 기억하게 되고, 수도원과 나르치스를 떠나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이야기는 거의 골드문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골드문트는 숲 속과 마을을 떠돌며 추위와 배고픔을 비롯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많은 여성과 만나 사랑을 나누고 헤어진다. 출산하는 여성을 도우며 쾌락과 고통의 표정이 유사하다는 것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에서 성모마리아 상을 본 후 감동을 받고, 조각가인 니콜라우스를 찾아간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는 니콜라우스로부터 조각을 배운다. 나르치스를 모델로 한 사도 요한 상을 제작하여 예술가로 인정받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지만, 스승과 같이 질서와 억제된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아 또다시 방황의 길로 간다. 흑사병이 돌아 많은 죽음을 목도하고 방랑을 하던 중, 하인리히 백작의 애첩 아그네스를 만나 사랑을 나누다가 백작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을 앞두게 된다. 수도원장이 된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를 발견하여 구해주고 수도원으로 데려와 조각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골드문트는 성모마리아 상을 비롯한 조각상을 제작 후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나지만 얼마 못 가 병에 걸려 나르치스에게 돌아와 죽음을 맞이한다.




골드문트가 수도원을 나와 갖은 고생을 하고 죽음의 고비를 넘겼듯이, 디오니소스 또한 죽음을 통해 부활한 신이다. 본능적이고 도취한 것을 추구하고, 관념 속 얽매임 없고 솔직한 삶의 모습이다. 하지만 골드문트의 방탕한 여성 편력이 진정한 사랑인지에는 의문이 드는 것 외에도 이상적인 예술가라기에는 실망스러운 점이 있다.

나르치스는 통제된 생활을 한다. 죄가 없는 밝음의 세계 같지만 마치 무대 조명처럼 인간 이성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꿈의 세계(가상)다. 세속적 삶을 떠나 있다. 병자의 조심성 있는 삶과 같다.

서로가 그리워하고 기대하며 사랑하는 두 사람은 자신의 모순과 상대의 다른 점에 대해 인정하고 솔직하다. 한때 이성적, 도덕적 삶을 추구하던 골드문트가 완벽해 보이는 나르치스 앞에서 어둡고, 절제되지 못한 삶을 부끄럽게 여길 수도 있고,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의 힘 있고 거침없는 삶 앞에서 자신을 제약이 많고 연약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은 소설의 주인공답게 각자 매력이 있지만 완벽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자기 모습과 상대의 모습을 모두 받아들이고 깊이 사랑한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처음 만난 때와 같은 청소년기다. 어린 시절의 순수와 미숙함을 가지고 성인의 주체적인 삶을 시작하려 할 때였다. 그 시절 내가 동경하던 것과 잃어버린 것들이 그립게 다가온다. 당시 완벽한 삶을 살려고 했고 그러리라 기대했다. 한 사람인 내 안에도 양면성이 있었다. 디오니소스적 도취와 열정적인 일과 사랑, 질풍노도 같은 혼란스러움이 있었다. 한편 아폴론 적 통제, 관념적 삶을 추구하기도 했다.

그 당시 나에게 이 책을 추천했던 사람이 있었다. 나와 전공과 재능이 달랐다. 서로가 다른 매력에 끌렸지만, 삶도 많이 달랐다. 완벽한 그에 비해, 아폴론 적인 이성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누추한 나의 삶이 창피했고 내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었음에도 내면의 두 측면을 내 안에서 통합하고 성숙하지 못했던 나는 그 사람과의 인연에도 실패했다.

나이가 들어 그 후의 삶도 돌아보면 부끄럽고 후회로 가득하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살지도 못했고, 이성적으로 현명하고 밝은 삶을 살지도 못했다. 소설에서 두 주인공은 죽음에 이를 즈음에 다시 만난다. 나도 삶의 끝에서 이 책을 추천해 줬던 그를 다시 만나는 모습을 수없이 상상해 봤다. 그때에도 나의 삶을 돌아보면 완벽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으며 다소 위안을 얻는다. 누구나 불완전하지만 당시로서는 최선이었다. 완벽한 삶을 살지는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 불완전함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완전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되는 것 같다. 죽음을 앞에 둘쯤에는 내 내면의 양면성을 통합하고 초월해서 적어도 세상과 나의 부족함을 미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완벽한 삶을 통해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쓰라린 아픔을 통해 불완전한 모습을 받아들이고 통합해야 하는 것을 배웠다.

삶에서 방황을 해본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원형이란 국어사전에서는 "같거나 비슷한 여러 개가 만들어져 나온 본바탕."을 뜻한다. 예를 들면 '어머니'란 각자의 어머니 이미지 말고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어머니라는 원형이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두 주인공도 두 원형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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