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환경을 거스르지 않고
꽃을 피운다

by 무아상

박완서 소설 「나목」(발행자: 세계사, 2011) 리뷰


겨울에 부는 바람은 나무에 잔인하다. 이미 잎사귀와 열매, 꽃을 모두 떨구고도, 벌거벗은 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는 아프고 스산하다. 기괴한 소리를 내고 상처를 남기고, 가지를 부러트리기도 한다. 삶의 힘든 시기에 일어나는 바람 또한 매서운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 대듯, 우리를 흔들어 댄다. 벗은 나무는 아직 살아있다. 다 떨구었지만, 내면에는 다음 해에 필 꽃과 잎사귀, 열매를 품고 있다. 꿈을 알기에 모든 것을 상실하고 품은 것을 실현할 수 없는 겨울이 더욱 고통스럽다.


박완서 작가(1931~2011년)는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교육을 위해 오빠만 데리고 서울로 갔다. 여자의 돈벌이 수단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 객지에서 돈 버는 며느리를 집안에서는 좋게 여기지 않았다. 어린 시절 조부모님 밑에서 사랑받으며 한문을 배우다가 엄마가 박완서도 서울로 데려가 교육했다. 서울대 국문과를 입학했으나 전쟁 때문에 학교는 며칠 못 다녔고, 오빠가 전쟁 중에 죽는다. 그 후 결혼해서 1남 4녀를 두었다. 마흔의 나이에 소설 「나목」을 써서 문단에 데뷔하고(1970) 인기 작가가 된다. 장성한 아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아픔이 있었다.

그의 수필을 먼저 접했던 나는 이상과 같은 이야기만 알면서 작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쟁 전후세대이고 오빠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상처는 짐작했다. 하지만 여자의 교육 기회가 적었던 시기에 엄마의 희생으로 교육을 받았다. 현명한 데다, 재능이 있어 첫 소설부터 성공적이었으니, 동시대 다른 여성에 비하면 흔들림이 적었을 것 같았다.

이 소설의 앞부분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작가의 자서전적 이야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 경이라는 20대 여주인공의 연애 이야기가 전개되어, 작가의 지적 이미지와 달리 통속 소설을 썼나 하는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끝까지 읽으며 현명하고 쉽게 성공한 듯 보이는 사람도 겨울나무와 같은 혼란스러운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작가와 작품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다른 장르와 달리, 한 사람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소설만의 특색이 있다. 소설이 주는 매력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이야기는 1950년대 초 전쟁 직후 서울이 배경이다. 주인공 '이 경'은 낡은 집에서 엄마와 살며, 미군 PX 초상화 부에서 그림 주문받는 일을 한다. PX에서 전기 공인 태수 씨와 태수 씨의 가족은 경아가 그와 결혼하길 바란다. 태수 씨는 총각이니 결혼한다면 현실적으로 무리가 없다. 몇 번 데이트하지만, 경아는 그에게 끌리지 않는다.

PX 초상화 부에서 그림 그리는 옥희도 씨에게 경아는 더 끌린다. 명동성당과 술을 따라 마시는 원숭이 장난감 가게를 구경하며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지만, 옥희도 씨는 유부남이다. 그는 초상화를 그리는 것 말고 진짜 화가가 되고 싶어 한다. 이 경은 그의 집에 가서 예술가를 잘 뒷바라지하는 목이 기다란 부인과 아이들도 만난다. 어느 날 옥희도 씨가 그린 고목을 보게 된다. 옥희도 씨와의 사랑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들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동경의 세계다.

경아에게 엄마는 과거의 무게다. 틀니를 끼지 않고 김칫국에 밥 먹는 엄마의 모습은 전쟁으로 일부 무너진 낡은 고가(古家)처럼 희망이 없어 보인다. 빈대떡을 사 가도 기뻐하지 않고 감정 표현이 없는 엄마와는 갈등과 애증의 관계다. 딸을 예뻐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엄마는 두 명의 아들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피난을 못 간 오빠들을 행랑으로 옮겨 숨어 있으라고 한 건 경아다. 그곳이 폭탄을 맞아 오빠들이 죽게 된다. 충격에 쓰러진 엄마를 돌보던 경아에게, 정신을 차린 엄마는 "계집 애만 살아있다"라고 한다. 둘만 남게 되어 경아가 돈을 벌게 된다.

미군 부대에서 가끔 경아를 유혹하던 미군과 하룻밤을 보내려고 가지만 경아는 뛰쳐나온다. 옥희도 씨의 집에 가서 부인에게 재워달라고 부탁한다. 그날 밤 엄마는 경아를 밖에서 기다렸는지 병에 걸러 갑자기 돌아가신다. 경아는 오빠들과 엄마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경아는 태수 씨와 결혼하고, 땅을 일부 팔아 새로 집을 짓는다. 고(故) 옥희도 씨의 유작전(遺作展)이 열리는 것을 신문에서 본다. 전시를 보러 가서 과거에 보았던 그림이 고목(枯木)이 아니라 나목(裸木)인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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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 2025-02-16 220130.png 박수근 '나무 아래'



주인공 경아는 전쟁과 엄마를 둘러싼 과거 상처에서 살고 있다. 전쟁으로 집은 한편이 허물어져 있고, 땅은 넓지만, 폐허로 남아있다. 엄마와 현실은 희망도 감정도 없는 고목 같다.

옥희도 씨는 화가 박수근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알려져 있다. 박완서 작가가 PX에서 일할 때 만났다고 한다. 소설 속 옥희도 씨는 잠재된 꿈을 깨우는 사람이다. 경아는 꿈을 펼치기 시작할 나이이지만 현실은 겨울과 같다. 옥희도 씨의 그림을 보기 전에는 색깔이 화려한 그림을 기대했지만, 그의 그림은 컬러도 화려하지 않은 고목이다.그 그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봄을 그리게 하지 못하는 그의 아내를 탓하고, 자신이라면 옥희도 씨에게 봄을 그릴 수 있게 할 자신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경아는 당찬 면도 있어서 옥희도 씨의 부인에게 돌발적인 말도 하고, 태수 씨와 옥희도 씨를 같은 자리에 앉혀놓고 자기감정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환경의 흐름에 순응하여 태수 씨와 결혼하고 현실에서 사랑을 찾는다.

고목은 더 이상 좋아질 희망이 없다. 하지만 무기력하고 암울한 모습은 절망의 끝이 아닌 잎사귀, 꽃과 열매를 품고 있는, 봄이 오면 피워낼 수 있는 나목인 것이다.

나무는 환경을 선택하거나 거스를 수 없다.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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