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리 하우스의 제유법
셜리 하우스라 부르던 우리 집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었다. 바로 토요일 저녁마다 피자를 먹는 것.
일명 셜리 하우스의 피자나잇이었다.
우리 집에는 나를 포함하여 6명이 살았는데, 모두 다른 국적과 배경을 갖고 있었다.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파리에 사는 멕시코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파리지앵'처럼 생겼다고 생각했었고, 알제리계 프랑스인 친구는 신라면 냄새만 맡으면 연신 기침을 했고, 반평생을 싱가포르에 살았던 미얀마인 언니는 나보다 한국드라마와 아이돌을 잘 꿰고 있었다.
전공부터 모국어까지 차이점만 보이던 우리 사이에는 영어를 쓰고 셜리 하우스에 산다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이 공통점 때문에 주방에서 마주칠 때마다 어색한 'Hi'를 반복하던 즈음, 우리 집 행동반장이 피자나잇을 제안했다. 한 친구가 매주 토요일 저녁에 가족들과 다 같이 피자를 먹었는데 우리와 그 전통을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다들 기왕 한 집에 살게 된 김에 어색함을 깨고 낯선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자는 마음으로 토요일 저녁 8시마다 냉동 피자를 한 판씩 들고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4개월짜리 가족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뗐다.
우리는 매일 같은 주방에서 밥을 해 먹고 같은 화장실을 쓰면서 서로의 생활방식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얼마나 다른 지도 느끼게 되었다.
친구들과 물 마시는 방법을 비교해 보고 충격받은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영국 물은 석회수가 심한 탓에 나는 매번 필터로 물을 정수했다. 반면 어떤 친구는 싱크대 물을 그냥 컵에 받아 마셨고, 또 다른 친구는 샤워하다가 샤워기 물도 마신다고 했다. 겨우 조금 친해졌던 친구들이 새삼 나와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무지로 인해 생긴 간극을 없애며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그 간극 때문에 더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수돗물을 마시든, 집에서 운동화를 신든 그것은 그저 누군가의 삶을 이루는 행동일 뿐, 우리가 친구가 되는데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그보다는 자신과 다른 삶의 방식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타인을 자신의 삶에 들이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인지가 누군가와 쌓을 우정을 꿈꾸게 했다.
피자나잇은 우리 사이에 놓인 빈칸을 채우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토요일 저녁 7시 반정도가 되면 한 명씩 방에서 슬며시 나와 피자를 데운다. 그리고 소파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나는, 우리 집은, 우리나라는'하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우리가 앉은 자리는 각각 하나의 중심이 되고, 우리는 어느새 각 나라의 수다쟁이 대표자가 된다. 질문과 대답, 또 다른 질문이 얽히고설켜 여름철 휴가지 추천에서 시작한 대화가 한국 전쟁과 멕시코의 가부장제로 끝난다. 각자의 마음속과 전 세계를 마음대로 드나들다 보면 '너'와 '나'의 차이로 그어진 경계는 저절로 허물어진다. 우리가 외관의 존재 너머 그 안의 개인을 꿰뚫어 볼 때, 그 자리에는 '셜리 하우스'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소파에 파묻힌 채 복잡한 우정을 엮어나가는 개인만이 남는다.
바이런 킴은 한국계 미국 미술가로, <제유법>이라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줬다. 각각 하나의 판은 작가 주변 사람들의 피부색을 의미한다. 사물의 일부분으로 전체를 표현하는 제유법처럼 작가는 다른 피부색을 한 개인들이 모여 이루는 사회를 표현했다. <태도가 작품이 될 때>에서 박보나 작가는 이 작품을 소개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모든 사람은 각각 다르다는 게 유일한 공통점이라는 것. 따라서 그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같이 살 수 있다는 것. 그래야 사랑할 수 있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바이런 킴이 네모난 판을 색칠하며 여러 피부색이 구성하는 사회를 떠올렸듯 우리는 동그란 피자를 나누며 우리만의 작은 사회를 꾸려나갔다. 피자 한 판이 한 사람의 정체성이 될 때, 피자나잇은 셜리하우스의 제유법이 되었다.
어느 날 한 친구의 가족이 다 같이 프랑스에서 영국에 있는 셜리 하우스까지 찾아왔다. 그들이 가고 나서 우리 집 냉장고에는 친구의 어머니가 만들어오신 마카롱이 남아있었다.
네모 조각으로 나눠진 투명한 아크릴 판에 하나씩 꽂힌 마카롱. 갈색, 흰색, 분홍색 꼬끄, 그 사이의 흰색, 연갈색, 흙갈색 크림.
나 다음으로 누가 마카롱을 먹었을까. 누군진 모르겠지만 나와 다른 색의 손이 마카롱을 집어갔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