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프롤로그_반려 애(愛)를 키웁니다

by 무드이십오

대학교 1학년 시 창작 시간이었다. 나는 동기가 애완 도마뱀을 소재로 쓴 시를 합평하게 됐다. 이제 막 대학에 들어온 동기나 나나 솜씨는 고만고만해서, 합평보다는 감상에 가까운 얘기를 했더랬다.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따뜻한 시네요." 그러자 합평 장면을 지켜보시던 교수님이 한말씀 하셨다.

"방금 반려동물이라고 했는데, 반려는 평생을 함께할 남편, 아내 같은 사람에게 쓰는 겁니다." 어쩐지 동기 시와 내 감상보다 '반려'라는 표현에 무게를 실으신 거 같아 당혹감과 반발심이 동시에 일었다.

'반려는 사람한테 쓰라고 어디 사전에 명시돼 있답니까?' 물론 구두로 항변은 못 했고 수업 중 네이버 어학사전을 켜서 '반려'라는 단어를 검색해 본 게 다였다. 네이버 어학사전이 내게 알려준 '반려'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였다.




반려3 返戾

명사 주로 윗사람이나 상급 기관에 제출한 문서를 처리하지 않고 되돌려줌.

반려2 伴侶

명사 짝이 되는 동무.


나는 이어서 '동무'의 의미를 검색했다.


동무1

1. 명사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

2. 명사 어떤 일을 짝이 되어 함께 하는 사람.


'반려는 사람한테 쓰라고 사전에 명시돼' 있었다. 그야말로, 반려2반려3 당한 꼴이었다.




2년 뒤면 과장 없이 십 주년을 맞는 기억이다. 그 사이 '반려'라는 명사는 사전에 명시된 풀이를 벗어나 이곳저곳에 많이도 붙었다. 반려동물은 당연하고 반려 가전, 반려 취미, 반려 잠옷 등등. 사람은커녕 동물도 아닌 것이 반려로 일컬어졌다. 교수님께서 '반려'의 활보를 보신다면 좋으련만.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그마한 반려들. 사람뿐 아니라 거의 모든 것들이 반려가 되는 세계관이 도래했으므로, 반려3반려3합니다.


돌이켜 보면 대상이 바뀔지언정 우리에게 '반려'의 개념이란 언제나 유효했다. 오래오래 함께할 거란 예감을 주는 대상은 언제나 있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반려'라는 말은 어떠한 인증 스티커 같다. 뗐다가 붙이며 대상을 옮겨 갈 뿐 오래도록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은 소멸하지 않으므로.


우리에겐 각자 몇 개의 반려가 있을까. 홀 케이크 같은 우리의 애정을 몇몇 대상에 등분하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채로운 조각 케이크로 가득한 쇼케이스처럼 우리의 반려 애(愛)가 다채롭게 전시될 수는 없을까. 투명한 쇼케이스 안에 네것 내것을 늘어놓고 황홀하게 바라볼 수는 없을까. 우리는 우리가 가진 이 사랑스러운 피스(peace)들을 전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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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대학 동기로서 강의실에서의 기억을 공유하고, 저마다의 반려를 키우는 무드이십오 집필진들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그마한 반려를, 저마다의 반려 애(愛)를 웹 연애 형식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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