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료가 이제 막 데뷔한 신인 아이돌을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아이돌의 쇼케이스를 청취하고 음방 사녹에 가고, 팬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충격을 받았다. 사람을 저렇게 열렬히 좋아할 수 있다니… 이렇게 말하면 내가 사람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그날의 충격은 그런 네거티브함에서 기인하지 않았다. 그저 깨달음. 내가 무지막지하게 열정을 쏟는 대상(취미, 취향 따위)에 사람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말하자니 내 친구들이 섭섭해할 거 같지만.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친구'라는 단어엔 이미 오래도록 함께하고픈 마음이 담겨있으므로 반려와 친구는 거의 같은 값의 단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지극히 주관적인 김하진의 반려 리스트에 친구는 해당하지 않는다.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그럼, 반려 리스트에 누가 포함될 수 있느냐고? 우습게도 프롤로그에서 소개한 명사 반려2(짝이 되는 동무)이다. 부모도 친구도 아니라면 연인이 답일 텐데, 반려2의 사전적 의미에 반발하면서도 반려2를 원하는 나의 이 모순적인 '반려관'을 본문에 앞서 미리 고백하는 바이다.
연애를 많이, 자주 해온 사람은 아니지만 연애 공백 3년째를 맞을 줄은 몰랐다. 그러는 사이 나는 나를 너무 많이 들여다보느라 나 자체로 공고해져 버려서, 이전엔 부러움까지 사곤 했던 이해심과 포용은 전생의 것처럼 느껴진다. 무던해진 건지 예민해진 건지 더 이상 남과 맞추는 연애는 못 할 거 같다. 그럼 지금 상태로 된 거 아니냐고? 아니다. 그럼에도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사랑으로 많은 것을 이룬 전생 같은 내가, 내가 잃은 사랑을 일깨운단 말이다.
의식하고 숨을 쉬면 숨 쉬는 중에도 호흡이 딸리고 걷는 법을 인지하며 걸으면 발이 꼬여 넘어지고 마는데, 지금의 나는 좋아하는 마음을 굳이 일깨워야 하는, 말하자면 ‘재활자’ 신세이다.
<반려 애(愛)를 키웁니다>는 나에게 이러한 의미가 있다. 내가 마음을 준 가장 작은 단위로 다가가 나의 애정을 찾는다. 좋아하는 감각이 어떤 것인지 되새기고 좋아함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다. 연약한 맥박이 힘차게 뛸 때까지 마음에 마음을 더해서. 마음은 자라니까 지금은 발 디딜 틈 없을지라도 머지않아 한 사람 거뜬히 들어갈 평수가 될지 모른다.
또 다른 의의는 남의 마음을 보는 데 있다. 앞서 말했듯 그간 나는 내가 너무 공고해져서 기준에 맞지 않는 타인의 애정에 냉소를 짓는 나쁜 습관이 생기고 말았는데, 이제 다시 내 마음에도 네 마음에도 뜨거울 수 있는 심장을 원한다. 오즈의 마법사 속 양철 나무꾼처럼. 함께하는 집필진과의 연재 여정에서, 그들의 애틋한 마음으로부터 사랑을 배워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