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서문_서유미

by 무드이십오

유치원 때 남자아이와 손을 잡고 소풍에 가야 했고, 초등학생 때는 남자아이와 짝을 이뤄 꼭두각시 춤을 춰야 했다. 나는 자아가 생기기 전부터 여자와 남자는 짝을 이뤄야 하고, 반려는 이성 인간이라는 걸 은연중에 배워왔다.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스몰토크로 연인의 유무를 묻는 게 실례가 아니었고, 반지를 끼고 있으면 커플링이냐고 묻는 게 조금 실례라는 시선이 생기긴 했지만서도 여전히 당연한 사회를 살고 있다.


꼭두각시 춤을 춘 이후 딱 2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20년의 시간은 반려라는 단어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에 충분했다. 이전에 반려를 떠올리면 애정, 사랑과 더불어 사람이라는 단어가 잇따랐다. 지금 시대의 반려와 비교했을 때 가장 다른 점은 애정, 사랑은 공통되지만 사람의 자리에 여러 단어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반려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 될 수도, 동물이 아니라 생명이 없는 물체가 될 수도 있다. 나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내 옆을 지키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반려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다. 반려 돌도 키우는 시대인데 반려가 되지 못할 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느 사람들에겐 여전히 반려를 떠올렸을 때, 연애에 대한 가치가 가장 높고, 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연애하지 않는 사람에게 선뜻 연애를 권했다. 20대는 연애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나이이고, 사람이 늙어가며 반려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통념이 되어버린 것 같다. 서로 다른 삶을 산 사람이 깊은 관계로 발전하여 서로의 일상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물론 아름다운 일이긴 하지만, 동일한 시간에 나의 다른 반려와 지내는 시간 또한 다른 밀도로 내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나는 아직도 내 주변을 이루는 반려를 대체할 반려 인간을 만나지 못한 것 같다. 굳이 반려 인간을 만나서 내 반려들과 보내는 시간을 줄여야 하나? 이토록 다양한 반려들이 주는 경험을 하나의 인간이 대신 채워줄 수 있나? 나에게 연애를 권하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내겐 이토록 많은 반려들이 있는 촘촘한 삶을 살고 있다고.

사랑이 절대적인 가치에서 벗어나고 있는 현시대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려의 뜻이 이전과 바뀐 지금, 사람들은 반려 인간 외에 어떤 반려와 시간을 보낼까?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핸드폰을 비롯해 어느 것까지 반려라고 칭할지도 궁금하다. 당신의 반려를 묻기 전에 나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는 반려 애들을 소개해 주고자 한다. 더불어 당신에게도 질문하고 싶다.


당신은 어떤 반려 애를 키우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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