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정혜원
2021년, 내 인생에 가장 큰 변화인 ‘다이어트’가 있었다. 3달 만에 식단과 운동을 병행하며 약 13kg을 감량했는데, 이후로 내 식습관에 아주 큰 변화가 생겼다. 칼로리 체크, 당분 체크, 포화지방을 체크하고 나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대폭 줄어들고 마는 것이다. 약 130도의 변화랄까.
포기할 수 없는 50퍼센트? 바로 파스타와 빵, 케이크다. 눈앞에 파스타, 빵, 케이크가 놓인다면 무조건 포크를 든다. 칼로리를 확인할 시간도 아깝다. 어차피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은가? 그러니 일단 입에 넣는 것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
대표적인 일화로 파리 여행이 있다. 오랜 시간 타지에 머무르며 일행들은 하루 한 번 한식을 찾았다. 라면, 김치, 만두, 한식당에 찾아가 제육볶음과 비빔밥을 해치우기까지. 그런데 내게는 그 장면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파스타, 스테이크, 바게트… 그것으로 충만한데 굳이 한식을 먹을 필요가 있는가 싶었다. 나는 여행 내내 한식 먹방의 순간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때 깨달았다. 아기천사의 실수로 잘못된 국가에서 태어나버린 것이다.
식사를 할 때면 늘 반찬을 많이, 쌀밥을 조금 먹었다. 다이어트를 하며 쌀밥보다는 현미밥, 현미밥보다는 고구마가 좋다는 마음이 굳어진 후부터 왜인지 부적절하게 느껴져, 이제 쌀밥은 주 1회 먹을까 말까 한 비선호 식품이 되었다. 반면 주식 자리를 차지한 것은 파스타다. 의외로 파스타는 건강한 음식이다! 듀럼밀을 사용한 면에 올리브 오일과 토마토로 소스를 입혔다면 맛과 건강 모두 잡을 수 있는 바람직한 음식인 것이다.
물론 가장 좋아하는 파스타 종류는 로제 혹은 크림이다. 두 종류 모두 아주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을 테지만, 가끔은 반박하고 싶은 것이다. 쌀밥 한 움큼에 야채 조금 먹는 한국인의 식단에 비해, 간도 슴슴하고 야채 함량도 높은 파스타는 맛도 좋고 몸에도 좋지 않을까? 하고. 사실 파스타의 영양 성분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파스타는 집에서 만들어 먹기에 용이한 식품이고, 시판 소스보다는 올리브 오일에 간단히 볶아 먹는 것이 간편하다. 그리고 올리브 오일과 토마토, 바질, 그리고 종류가 바뀌는 단백질의 조화는 굉장히 바람직하게 느껴진다. 단시간에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뿌듯함. 요리가 너무도 어려운 나에게는 아주 남다른 감각이다. 산뜻하고 무겁지 않은 파스타와 함께 가볍고 신선해지는 식사 시간.
파스타와 함께 늘 식사 후보에 오르는 것은 다름아닌 빵이다. 어릴 적부터 이미 빵순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식사 대신 빵을 택할 만큼 오랜 사랑으로 키워왔다. 자극적인 맛이 필수였던 어린 시절엔 단팥빵 생크림 빵과 같은 달콤한 빵을 집어 들었다면, 지금은 베이글이나 바게트, 포카치아와 같은 담백하고 건강한 빵을 사랑한다. 고소하면서도 속에 든 토핑의 맛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이 일품이다. 간혹 크림치즈나 단호박, 무화과가 곁들여지면 자연스레 손가락 끝을 모아 흔들며 ‘무초 무초’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1월, 독감에 걸려 회사를 조퇴하고 돌아가던 중 서러움에 충동적으로 크림이 잔뜩 든 ‘뚱베이글’을 주문해 두어 개나 먹어 치운 적이 있었다. 함께 일하는 매니저님께 그 이야기를 전하며 함께 카페에 다녀오던 길에 매니저님이 하셨던 말씀은 이러하다. “달달한 음료도 다 끊으셨을 정도로 신경 쓰시는데, 왜 디저트는…” 차마 마무리되지 못한 문장의 끝에서 느껴지는 의문. 그렇다. 나는 디저트 앞에만 서면 이성을 놓는다.
2024년, 한창 먹는 것을 아끼던 때에는 하루 세 끼를 베이글 반쪽, 케이크 한 조각으로 끝내곤 했다. 삼겹살도 마다하고 꿋꿋이 샐러드만 퍼먹던 내가 생크림 케이크 반 판을 순식간에 해치우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모부께서 신기하다며 허허허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내게 더 이상 케이크는 더 이상 특별한 날 먹는 음식이 아니다. 이것은 충분한 한 끼 식사, 나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간식거리다. 묵직하게 들려오는 포크 위 빵과 크림의 무게. 속에 콕콕 박힌 생과일 혹은 레의 맛이 미치도록 황홀하다. 입을 가득 채우는 퐁신한 크림이 혀에 착착 감길 때면 하루의 고뇌가 사라지고 오로지 달큰한 행복감만 남는다. 평소엔 미워 죽겠는 설탕이 그 순간엔 왜 그리도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식사 대용으로 케이크를 섭취하곤 한다. 이 글을 쓰는 날의 점심에도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식사 대신 먹었다. 여전히 한 끼 대용 케이크를 택하는 나. 다른 걸 먹어서 살찌울 바에야, 케이크를 먹겠다는 강건한 마인드에서 비롯된 정신 건강용 선택이다.
최근 에그타르트에 푹 빠졌다. 흘러내리는 바닐라 크림 필링이 주는 행복은 달큰하고 고소하다. 이렇듯 디저트 중에서도 주종목이 매번 바뀌고, 지금까지 아주 많은 것들을 거쳐왔다. 휘낭시에, 까눌레, 초콜릿 크림, 바게트, 크림치즈베이글… 시종일관 건강과 체중감량을 고민하는 뇌 구조의 틈바구니에 껴있는 설탕의 악마가 낯설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본디 낯선 이가 주는 황홀감은 깊고도 짙은 것을.
이렇게나 모순적인 식성이 나와 평생을 함께할 반려라니, 건강은 조금 두렵지만 행복은 보장되어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풍요롭다. 나이가 들어서도 예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맛있는 빵으로 식사를 할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겠다. 양식과 빵과 디저트가 널린 한국이라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