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서유미
모두 내게 끈기가 없고 하나를 진득하게 붙잡으라고 말할 때, 반박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었다. 내 인생에서 절반 이상의 기간을 함께 하고 있고 평소에도 끊임없이 생각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할애한 대상, 무대였다.
사람은 자신의 세상을 넓혀준 대상을 잊지 못한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엔 그 대상이 무대였다. 처음엔 미온하게 다가와서 어색하게 인사만 했는데 어느새 내 일상에 들어오고, 천천히 내 마음에 들러붙어서 이제는 떼어낼 수 없는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이 질긴 인연의 시작은 초등학교 때였다.
*
당시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여자 아이들의 선택지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술, 발레, 피아노. 나도 그 유행에 편승해서 피아노학원에 다녔고, 피아노에 대한 흥미보단 친구와 노는 걸 목적으로 학원을 다녔다. 1년을 넘게 다니자 콩쿠르에도 나가고, 학원 발표회에도 나가며 무대에 처음 섰다. 이때 무대는 평소에는 입지 못하는 드레스를 입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무대가 끝나면 꽃다발을 받고 가족과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 선물이 주어졌기에 무대보단 그 이후의 것들이 내게 더 기쁨으로 다가왔다. 아마 그 화목한 기쁨을 느끼는 게 좋아서 피아노를 그만둔 후에도 가야금, 모듬북으로 무대의 경험을 늘려왔던 것 같다.
기쁨을 느끼기 위한 도구로 여겨지던 무대를 갈망하게 된 건 춤을 추게 된 이후부터였다. 내적 관종의 특성이 타고났던 건지, 초등학교 때 갑자기 방과후 방송댄스에 등록하며 아이들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 경험으로 중학교 때에도 댄스동아리에 들어가서 자발적으로 무대를 찾기 시작했다. 무대를 구성하고 아이들과 연습해서 무대를 올리는 작업은 짧은 인생 중 가장 짜릿한 경험이었다. 성취감, 기쁨, 활력 등 여러 긍정적인 감정이 곱해져서 행복의 무한대로 진입한 기분이었다. 이미 나는 무대가 주는 희열감에 중독됐고, 이걸 대체할 만한 건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2년 동안 끈질기게 부모님을 설득해서 무용을 전공하게 됐다.
하지만 전공을 하는 건 다른 얘기였다. 내가 좋아하는 걸 업으로 삼으면 자연스레 싫어진다고 하는데, 그게 맞다는 걸 직접 몸으로 느꼈다. 내가 기대한 것과 다르게 무대에서 하나의 행복을 얻기 위해선 백 개 이상의 절망을 감내해야 했다. 무대가 주는 희열감 하나만으로 그걸 얻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견디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대에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죽어도 무대가 싫다고 느껴지는 때가 찾아왔다. 무대에 오르는 생각만 해도 다른 건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무대를 생각하기만 해도 토할 것 같은 절망감에 내 인생에 다시는 무대가 없다고 결심하고 스스로 이별했다.
*
다시는 무대가 주는 도파민을 겪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미 정해진 자연의 순리처럼 나는 또다시 무대로 돌아갔다. 대학교 뮤지컬 동아리에 들어가며 경험한 무대는 더 넓은 세상이었다. 이곳에는 음악, 춤이 단편적으로 있지 않고 이야기까지 더해져서 다채로운 세상이 있었다. 평생 옹색하게 네 삶에만 갇히지 말고 무대를 통해 다양한 삶을 경험해보라는 듯, 독사과 같은 유혹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이 유혹이 머리가 아릴 듯한 도파민을 주면서도 한순간에 날 망가뜨릴 걸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삶에서 인생을 건다면 무대가 가장 적합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난 다시 무대에 뛰어들었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올리며 무대가 내 인생의 기쁨은 충족시키지만, 재정적인 문제는 내가 충당해야한다는 걸 깨닫고 나만의 유예 기간을 가지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무대를 떠난 거지만 나는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거고, 조금의 게이지만 채우면 나는 곧장 재생 버튼을 눌러서 다시 무대가 내 인생에 흐르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회사에서 인생이 막막해져도 무대만 생각하면 안정이 됐다. 어차피 나는 무대를 할 거고, 이건 임시 방편이기 때문에 어떤 고난이 닥쳐도 상관없었다.
하나의 대상을 믿고 거기에만 너무 의존하면 안 된다는 걸 또다시 무대를 통해 배웠다. 그동안 나는 어떤 무대를 봐도 설렜다. 잘 만든 무대를 보면 나도 저 현장에 있고 싶다는 질투심이 들었고, 그저 그런 무대를 보면 내가 당장 무대를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현생에 치여 힐링하고자 오랜만에 뮤지컬을 봤을 때,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無), 그 자체였다. 뮤지컬이 진행되는 동안 서서히 무너져내렸다. 무대를 보며 훌쩍이는 관객을 보는 것마저 견디기 힘들었다. 내가 더이상 무대를 보고 저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게 이 세상에서 추방당하는 기분이었다.
단지 그 작품이 나와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당장 여러 공연을 예매해서 무작정 보러 다녔지만, 나를 더 추락시킬 뿐이었다. 이전처럼 설렘을 느끼지 않았고, 무대 하나만 바라보고 살기에는 버릴 수 없는 것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부수적인 것이라 나를 지탱해주기에는 지푸라기마냥 풀썩 쓰러졌고, 무대라는 단단한 부목이 부서졌을 때 임시방편으로도 나를 세워주지 못했다.
*
이제는 정말 실체도 없는 것이 나를 살게 해줄 거라는 허상에서 벗어나려고 무대와 이별을 고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무대는 리무버블 스티커마냥 쉽게 떨어지지 않고 찐득이는 흔적을 잔뜩 남겨놓았다. 억지로 떼어내려고 해도 이곳에 내가 있었다는 걸 알리려는 듯 존재감을 내뿜었다. 이젠 내 의지로 떼어낼 수 없는 그것에 나는 이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사회의 일원처럼 실리적인 걸 생각하려고 해도 무대에 대한 생각이 끼어들었고, 문득 재미있는 기획이 생각나서 기록하다가 눈물을 흘리곤 했다. 무대를 하고 싶다는 열망, 아직 설렘을 느낀다는 기쁨이 뒤섞였다. 결국 나는 평생을 무대에 이끌려다니며 거대한 감정의 진폭에 살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만큼 큰 행복감과 절망감을 안겨준 존재는 여태까지 없었다. 무대가 주는 감정의 진폭 자체가 그 어느 것보다 거대했다. 나는 이 흐름에 휩쓸려 늘 위태롭게 서 있겠지만, 얼마든지 나와 같이 흔들려줄 무대와 함께 부유하고 있을 것이다.
밉지만 좋고, 싫지만 사랑하기에 애증하는 내 반려, 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