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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dle Jan 18. 2017

프롤로그.

앞을 바라보다.

  오직 우리만이 죽음을 본다. 자유로운 짐승은

  언제나 몰락을 뒤로하고 제 앞에는

  신만을 두고 있으니, 짐승에게 거닒이란

  영원 속에 있어, 마치 샘물의 솟아오름과도 같다.

  여지껏 한 번도, 단 하루일지언정, 우리

  순수한 공간 앞에 서지 못했다. 무한히 피어나는

  꽃들이 그 안을 채웠기에. 모든 것은 항상 세계일 뿐

  아무 곳도 아닌 적은 없어, '아니다'를 뗄 수마저 없구나.


  -릴케,“여덟 번째 비가” 중 (번역: 박술)


  질척이는 눈을 밟고 도심 속 바다내음을 향해 걸었다. 생일이 속수무책으로 다가왔기에 방어회라도 먹을 심산이었다.


  스물일곱이 되던 대학원생의 겨울은 혹독했다. 학교에 머무는 해가 거듭될수록 늘어가는 죄책감의 무게를 어찌할 줄 몰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문학 공부를 계속할만한 능력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작한 공부를 소득 없이 내칠 용기나 결단력이 있지도 않았다. 한 때 사랑했으나 나와는 사이가 결코 진전되지 않았던 영문학의 대가들, 그들의 문장, 고뇌와 분석들을 굼뜬 눈길로 어루만져 쥐고 놓지 못하였다.


  “니 절대 고시한다카믄 안돼.”

  대학에 입학한 직후 외할머니는 나를 붙들고 고시의 덫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신들린 듯 토로하셨다. 사연인즉, 집안에 수재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팔촌 오빠가 서울대 법대를 진학 후, 십수 년째 변변한 직업 없이 사법고시에만 매진한다는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고시를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대학원으로 밀려가더니 책에서 손을 못 떼고 옴짝달싹 못하던 시절을 겪다 그만 스물일곱의 겨울쯤에 서 있었다. 시름시름 앓던 나는 이게 바로 할머니가 말한 그 무시무시한 덫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할머니의 필사적인 충고에도 손녀는 어김없이 덫에서 바둥거렸다. 판검사가 되겠다는 꿈이든 영문학자가 되겠다는 꿈이든, 젊은이의 멋모르던 시절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시기였다.


  기왕 덫에 걸린 것, 나는 스스로 너무 필사적으로 비치지 않길 바랐다. 어릴 적 끈끈이주걱을 관찰하고 있노라면, 젊고 싱싱한 파리일수록 지칠 줄 모르는 날로 된 발길질이 더욱 처연했다. 애지중지 키우던 개구리에게 기절시킨 파리를 넣어 주지 않고 냉동시킨 파리를 주기 시작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파리 사체를 젓가락 끝으로 찍어 산 파리의 움직임을 적당히 모사해 먹이면 관찰자 입장에서 조금 덜 고통스러웠다. 생명력에서 오는, 덫 앞에서의 필사적인 괴로움을 애써 모르는 척하기 위해, 나는 대학원에서의 스스로를 거동마저 불편해진 노파로 여기고 싶어 했다. 그러다 간간이 거리의 창에 비치는 내 모습이 너무 젊어서 흠칫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유독 이상하게도 그 날, 그 유난히 춥고도 어두우면서도 희망이 서렸던 그 날 만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시늉을 해보고 싶었다. 내 어렵고도 단조로운 생활에 심장박동이 생겨나던 때가 그 가을과 겨울이기도 했다. 시작은 개천절에 새로 사귄 친구였다. 일본에서 공부 중이던 선배의 갑작스러운 부탁으로 만나게 되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 병역 때문에 한국에 돌아온 친구이고, 외로워하니 같이 어울려달라 하셨다. 학교 앞에서 저녁이나 먹을까 싶어 불러낸 새 친구는 나와 같은 취미, 같은 관심사, 그리고 삶에 대한 같은 고민들을 가지고 있었다. 놀랍도록 공통분모가 많은 것에서 우리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나누었다. 패배했다 여겼던 나의 삶도 그 아이처럼 반짝거릴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홀로 갇혀 있다 생각했던 덫에서 함께 바둥거렸을 영혼이 있었다면 그라고 생각했다. 그 친구는 비슷한 아이들이 더 있다고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친구는 친구를 낳고 또 친구를 낳았다.


  삶의 궤가 비슷하다고 여겼기에, 생일인데 다른 누구보다 이 낯선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싶었다. 회를 먹기로 했고, 주체할 수 없어 두렵기까지 했던 두근거림을 품고는, 기름진 방어를 찾아, 시간이 멈춘듯한 공간이던 연구실을 떠났다.


  두 번째로 보는 현진이, 세 번째로 보는 훈민이와 영이를 노량진 역에서 만났다. 함께 은은한 비린내를 좇아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고등학교 친구인 예별이가 와서 합류했다. 서로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혹은 모르는 사이라 조금은 어색한 조합이었지만 또 어색하지 않았다.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고뇌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곳에 위안이 있었다. 우리가 조용히 공유했던 위안은 단순히 사회적으로 나만 뒤쳐진 것이 아니라는 안도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 될지 모르는 불안감을 껴안고서도, 삶에서 함몰되지 않아야 할 나의 정체성과, 그 정체성을 뒷받침할 즐거움을 찾으려는, 그 비틀대는 걸음들을 서로 바라보는 것에서 오는 위안이었다.


  이들을 발견하기 이전, 나의 조급함은 외로움으로써 더욱 증폭되었다. 나의 불완전성은 나 혼자만의 것이라는 착각 속에 두드러졌고, 나만의 것이기에 쉬이 공유될 수도 없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이기에 나는 언제나 표백되어야 할 대상이었고, 그렇게 조금씩 퇴색되는 나를 보며 무력함에 빠져 있을 무렵이었다. 선물을 데려오느라 조금 늦는다는 진하를 기다리며, 먼저 모인 이들끼리 방어의 서로 다른 부위를 우선 맛보았다. 그리고 우린 각자의 불완전성 역시 탐구하고 맛보았다. 모두가 변두리에서 모인 존재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변방들이 함께 모이자 서로의 색이 더욱 뚜렷하게 발현하기 시작했다.


  진하는 개천절에 만난 이후부터 줄곧, 자신의 가장 오래되고 친한 친구를 소개해주겠다고 이야기했다. 언어철학을 하는 친구인데 독일에 있다고 했다. 내 생일 며칠 전에 한국에 귀국한 새친구는 그 날 거대한 포장지에 싸인채 진하에게 안겨 횟집으로 들려 들어왔다. 짙은 초록색 포장지에 싸인 술이가 안겨 내려오는 것을 본 횟집 아주머니는 너무 놀라 뒷걸음질을 치다가 정수기의 뜨거운 물에 엉덩이를 데셨다. 진지하게 서있는 생일 선물의 포장지를 뜯었더니 웬 깐족거리는 철학자가 나왔다. 한눈에 그 역시 변방의 존재임을 알아보았고 포장지 안에서 고생한 선물과 그를 들고 계단을 내려오느라 고생한 진하에게 우리는 방어를 내밀었다.


  쉴 새 없는 젓가락질로 점점 접시는 깔린 무채를 드러냈다. 방어가 줄어들면서 조금씩 마법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 기름지고 맛있는 것은 우리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유쾌한 조합이었지만 불완전한 것은 여전했고, 삶과 존재에서 오는 고뇌는 줄어들지 않았다. 예별이는 우리가 방어 한 점을 집어 들었을 때 젓가락에 딸려 올라오는 이 “무들” 같다고 이야기했고 모두가 동감했다.


  그렇게 우리는 무들이었다. 하지만 “우리”였기에 몰락을 등지고 앞을 바라봄의 시작이었다.



첫눈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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