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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dle Jan 22. 2017

숲, 친구들

- 잿더미의 친족성에 대하여

  우리 고향의 녹색 숲들은 이리도 고요하니,

  수정으로 굽이치는 파도가

  무너진 벽에 기대어 죽어가고

  우리는 잠든 채로 울었다 ;

  망설이는 걸음으로 떠돌며

  가시 돋친 덤불을 따라

  저녁의 여름, 노래 부르는 이들


  -게오르그 트라클, "저녁의 나라" 중 (번역: 박술)


  몸과 마음이 어지러울 때 숲 속을 혼자서 걷는 일은 기쁘다. 내가 숲을 택한 것은 숲이 고요하기 때문이다. 숲이 나를 택한 것은, 나를 받아들이고도 전혀 시끄러워지지 않는 너그러움 때문이다. 나는 유년기를 흑림의 어느 골짜기에서 보냈고, 그건 지칠 때마다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기억이 되었다. 숲은 푸르고, 숲은 검고, 숲은 희다. 숲은 온몸을 갈아엎는 변화를 끊임없이 받아들이면서도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변화의 바람을 견디기 어려울 때 나는 숲에 가서 그 공기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나뭇잎을 건드리면, 나뭇잎은 흔들리며 호응한다. 바람이 나뭇잎을 떨구면, 나뭇잎은 조용히 어머니를 떠나 땅바닥으로 돌아간다. 그것뿐이다. 비가 올 때도, 눈이 올 때도 마찬가지다. 숲은 계속해서 변화하면서 변함없이 한 가지를 말한다. 나를 보라고, 내 안에 서서 너 자신을 보라고. 이 조용한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은 가끔, 뿌리를 얻는다.


  몸과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찼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숲 속으로 나아가는 일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처음 보는 숲에서 너희를 바라보면, 너희는 처음 보는 웃음을 얼굴에 잔뜩 묻히고서 땅을 굽어본다. 하늘을 둘러보고, 이끼를 밟아본다. 미끄러지고, 길을 잃고, 물의 냄새를 맡는다. 나는 잠시 동안 집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얼굴을 가리는 나뭇가지를 한 손으로 밀어 올린다. 파랗게 나타나기에 하늘이다. 정처 없이 유영하면서 무언가를 떠올리기에 구름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가족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 나라에서 우리는 다 같이 한 집에서 머물렀다. 구름이 곧 흩어진다고 해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뭉칠 때마다 그저 기쁘면 그만이다. 같은 모양의 새털구름은 왜 없을까? 벽난로의 온기처럼, 질문의 온기가 마음을 데워준다. 앉아 있어도 좋고 서 있어도 좋다. 호수에 몸을 담가도 좋고 술에 취해도 좋다. 마음을 비추는 따뜻한 저녁 빛이 오로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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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흔히 말하는 조기 유학생이었다.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사춘기가 겨우 끝나가던 무렵에 혼자 한국을 떠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 나이에 어떻게 가능했던 결정인지 잘 모르겠다. 내 인생을 완벽하게 바꿔버릴 결정이었고, 결정이라는 개념마저 바꿔버릴 그런 순간이었는데도, 나는 크게 고민했던 기억이 없다. 나는 새로운 나라로 간다는 느낌보다는, 헤세의 책들, 예컨대 “데미안”같은 책 속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이 더 강했던 것 같다. 고귀한 지식과 살아 숨 쉬는 전통을 접하게 될 것이라는 막막한 기대가 있었다. 물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서구의 어디에서나 그렇겠지만, 15살 먹은 또래의 남자애들은 술, 담배, 섹스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다. 내 안에서 막 깨어나기 시작했던 문학이나 철학에 대한 열망을 공유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내가 결코 속할 수 없는 세계에 다다라서, 지금까지의 만들어 온 세계가 전부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고 – 세계를 다시 세워야 하는 필연성을 보았고 – 그런 잿더미 속에 서보는 순간은 어떤 의미에서 처음으로 철학을 시작할 수 있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언어를 바꾸는 과정은 뼈와 살을 바꾸는 과정이었다. 애매한 유년기에 새로운 언어권에 내던져진 다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언어는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이 제자에게 “언어가 전부다 Language is everything”이라고 – 물론 외국어인 영어로 – 말했던 것은 그래서 가슴에 박힌다.) 언어를 거두어 내고 나면, 그 아래에 있는 것이 얼마나 형체 없고, 보잘것없고, 자신을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연약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언어를 바꾸는 과정은 “나”를 지키는 철조망을 한 뼘씩 걷고, 새로운 벽을 세우는 일이었다. 이것은 마치 생니를 뽑고 의치를 박아 넣거나, 멀쩡한 팔을 잘라내고 의수를 다는 일과도 같아서, 내 몸이 무엇이고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계속 품게 했다. 새로 세운 방벽이 내 몸처럼 느껴졌을 때도 – 그래서 내가 의심할 여지없는 독일인이라고 생각했을 때(!) 조차도 – 한번 시작된 의문은 쉴 줄을 몰랐다. 그래서 남들이 피하는 철학과를 택하는 것이 그렇게 쉬웠는지도 모른다.


  무들끼리는 우리 이야기를 할 때 “잿더미”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만큼 우리는 어떤 근본적인 “망함”의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망한 사람들이 좋다. 언어로 망했든, 어린 시절이나 인간관계로 망했든, 실연으로 망했든, 망한 사람들은 특히 서로를 금세 알아본다. 그래서 우리가 방어회 밑에 깔린 하얗게 표백된 무채를 보았을 때 서로를 본 것이다. 포장되어 운반되는 동안 – 아직 친구가 아니던 자들이 – 대부분의 부위를 먹어치웠기 때문에, 방어 자체의 맛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남아있던 무의 맛은 기억하고 있다. 밍밍하지만 아무튼 분명히 살아있는, 순수한 맛...


  물론 저번 글에서 송이가 나를 단번에 “변방의 존재”로 알아보았다고 썼지만, 사실 나는 첫날 저녁에 이 새로운 친구들이 과연 망한 걸까, 헷갈려하고 있었다. 무들은 내가 만나본 망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빛나고 있었기 때문에 좀처럼 확신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방어회 밑에 깔린 무들과 공유되는 정체성' 이야기를 제외하면 우리가 그날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우리는 너무 많이 웃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중앙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마치 나를 감싸던 포장지가 나를 선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선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었다.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이곳의 모든 것은 안정되고, 아름답고,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려고 했었다. 그저 빛을 좀 얻어갈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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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쩔 수 없는 현대인으로서, 나는 대립과 반목을 사랑한다. 모순적인 것, 이율배반적인 것을 보면 내 안의 모순이 그에 공명하면서 곧 애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건강한 동시에 아픈 것, 부자인 동시에 가난한 것, 거대한 동시에 미세한 것.. 무엇보다도 밝은 동시에 시커먼 잿더미라니,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내 기억에, 오랜 시간 우리는 주로 한없이 가벼웠고 서로에게 아주 천천히 다가갔다. 초반에 나는 그것을 또 표면적인 관계라고 잘못 이해했지만, 사실 그것은 수줍음, 상처받은 사람들의 두려움에 가까웠던 것 같다. 별다른 이유가 없이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고, 새로운 우정을 시작하기에는 사실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이에 우리는 세계 각지로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친구가 그렇듯이, 우리는 가끔 다시 만나도 예전과 똑같은 우리를 발견한다. 그건 안심되는 일이다. 마음 깊이 가장 발전과 변화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아무런 진보가 없는 맹맹한 모습을 보고는 평화를 얻는 법이다. 인간의 손을 벗어난, 우거진 숲을 보면서 그러듯이.. 보면 볼수록 우리는 여전히 멍청하고, 가망이 없고, 외롭고... 그래서 괜찮다. 빛 그림자를 하나 얻은 것 같다.


  또한 좀처럼 안정을 모르는 인간으로서, 나는 우리가 틈만 나면 춤을 추러 몰려다닌다는 사실을 좋아한다. "난 춤출 줄 모르는 신이라면 믿지 않겠다"라고 (세상에서 가장 오만한) 니체가 말했지만, 그는 "쓰러질 때까지 춤추기"라는 독일어 관용구를 "쓰러지지 않기 위해 춤추기"로 바꿀 줄 알았던 천재이기도 했다. 사람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많은 것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추는 사람이 있고, 어쩔 줄 모르고 추는 사람이 있고, 어쨌든 간에 일단 추는 사람이 있다.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어쨌든 어쩔 수 없이 어쩔 줄 모르고 마구 췄다. 부끄럽지 않아서 신기했다. 쓰러지지도 않았고, 또 너무 많이 웃었다. 올해 여름, 이태원에서 찬현이가 양손에 빵 봉지를 빙빙 돌리면서 골목을 미친 사람처럼 뛰어간 적이 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아무튼 나는 그게 대단한 춤이라고 생각했고, 골목에 주저앉아서 한참을 웃었다. 쓰러질 것 같은데 쓰러지지 않는 모습, 신과 같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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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서울의 뒷골목을 가르쳐 준 것이 너희들은 아니었지만, 나는 너희들의 모습으로 서울을 기억한다. 핀란드의 숲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 아니었지만, 나는 같이 걷던 시간들로 북구의 지도를 그린다. 나는 이 세계가 천천히 움직이는 한 다발 숲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러면 우리는 각자 서로를 향해 뿌리를 뻗으면서, 이내 뿌리가 없음을 생각하고, 거기에서 만난다. 우리는 정신없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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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핀란드 숲 속에서 버섯을 찾아 헤매는 끝없이 명랑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가 보니 보편적이고 어둡고 얼버무리는, 안개 같은 말에 그치고 말았다. 다음 글 쓸 차례가 오면 내 본체, 깐쪽거리는 모습을 남김없이 내보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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