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유효한 삶의 태도를 만나다.
회색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은 어느 흐린 날,
문득 우울감이 올라왔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오늘은 조명이 꺼졌구나."
마음까지 환해지는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이
사람을 얼마나 기분 좋게 만드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햇살 가득한 날에도
나는 자연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산책이라도 나갈 땐
햇볕은 선크림으로 꼼꼼히 차단하고,
그것도 부족해 선글라스와 모자까지.
부족한 비타민D는 영양제로 보충하기로...
이 어색한 선택이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커튼에는 암막 기능이 필수가 되어
빛을 완전히 가려야만
비로소 안정감이 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함께 사는 가족들과는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넘어,
얼마나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는가
아마 우리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자연과 가족에서 얻는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힘을.
다만 그 가치를 아는 것과
실제로 살아내는 일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격이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런 시대에 만난 타샤 튜더의 전시는
작품을 감상하는 자리를 넘어,
그녀가 삶을 대했던 태도를
전시라는 형식을 통해 조용히 전해주었다.
그녀는 어쩌면 이 시대에 예술을 사랑하며
삶 전체로 느림의 미학을 끝까지 지켜낸,
마지막 '슬로우 라이프'의 실천자였는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는 롯데뮤지엄에서 타샤 튜더 탄생 110주년을 기념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기획된 전시다.
그녀의 삶과 예술 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며, 약 190여 점의 원화와 수채화, 드로잉, 수제 인형, 영상 자료 등을 통해 타샤 튜더가 지향했던 삶의 태도와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왜 하필 'Still'일까?
전시 제목에 놓인 ‘Still’은 시간이 흘러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기준을 가리킨다.
자연과 계절, 가족과 일상의 작은 기쁨을 중심에 두고 살아온 타샤 튜더의 삶은 오늘날에도 깊은 공감과 울림을 전한다. 현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그녀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예술세계를 통해 잊혀가는 삶의 본질을 다시금 성철 하고자 기획되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동화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타샤 튜더(Tasha Tudor, 1915–2008)는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녀의 집에는 마크 트웨인을 비롯한 당대의 문인과 문화인들의 발걸음이 잦았고, 어머니는 화가로 활동하며 예술적 감각을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타샤에게 문화와 예술은 배워야 할 대상이기보다 이미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는 언어에 가까웠다.
타샤 튜더에게 책은 삶의 기록에 가까웠다. 계절과 일상, 가족과 자연이 이야기를 통해 이어졌고, 책은 그 흐름을 담아내는 방식으로 놓여 있었다.
『A Time to Keep』에 담긴 크리스마스의 장면은 해마다 되돌아오는 시간의 감각을 전한다. 촛불이 켜지고, 책이 펼쳐지며, 아이들은 어른 곁으로 모인다. 크리스마스는 하루를 특별하게 만드는 날이 아니라, 계절의 리듬 속에서 삶의 중심을 이루는 절기로 자리한다.
『A Child’s Garden of Verses』에서는 아이들의 하루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진다. 정원을 가꾸는 손과 흙을 밟는 발,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분하게 흐른다. 이야기는 생활에서 시작되고, 그림은 그 시간을 따라간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온전히 마음에 달려 있어요.
난 행복이란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23세에 첫 그림책 『호박 달빛(Pumpkin Moonshine)』으로 데뷔한 이후,『마더 구스(Mother Goose)』, 『1은 하나(1 is One)』로 '칼데콧 상'을 수상하며 그림책 역사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평생 100여 권이 넘는 저서와 삽화를 남겼고, 그녀의 그림에는 자연과 계절, 가족과 일상의 리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칼데콧 상(The Caldecott Medal)은 미국의 문학상으로 동화책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의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상의 명칭은 19세기 영국의 삽화가 랜돌프 칼데콧에게서 비롯되었다.
타샤 튜더의 하루는 분주했다.
농장에서 거둔 재료로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의 옷을 지어 입히며, 정원을 돌보는 일들이 이어졌다. 네 명의 아이를 키우며 생활을 꾸려가는 과정은 쉼 없는 노동이었고, 그 시간 속에서 작업 또한 함께 흘러갔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기쁨이자 소중한 예술이 되었다. 버몬트의 헛간과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한 식탁은 매일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바쁜 생활 속 사물을 담은 수채화. 차를 마시는 시간과 하루의 호흡이 단정한 구도로 이어진다.
그녀의 곁에는 늘 동물들이 있었다. 코기 강아지를 평생 서른 마리 가까이 기르며 교감했고, 고양이들은 가족의 한 구성원처럼 일상에 머물렀다. 아이와 동물, 음식과 집안일은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생활로 이어졌다.
앵무새와 헛간의 닭, 염소, 거위들은 그녀의 삶을 완성시키는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동물들을 통해 자연의 느린 움직임을 배우고, 함께 자연의 이야기를 나누는 삶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타샤는 이들과의 교감을 그림책 속에 생동감 있게 담아내며 아름다운 자연을 따뜻하게 전한다.
그래서 타샤 튜더의 작업에서는 특별한 의도를 앞세운 장면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스며 나온 풍경이 먼저 다가온다. 하루를 살아내는 태도, 반복되는 생활의 결, 그 안에서 발견한 작은 기쁨들이 그림의 바탕이 되었다.
전시장 한편에 준비된 돋보기가 눈에 띄었다. 세밀한 붓터치와 작은 글자들을 위한 따뜻한 배려이다.
전시장에 놓인 온실과 정원은 이상적인 자연을 보여주기보다, 한 사람이 오랜 시간 선택해 온 생활의 결과를 담고 있었다. 타샤 튜더에게 자연은 언제나 함께하는 존재였고, 그 관계 속에서 삶은 단단해졌다. 정원을 돌보고, 손으로 만들고, 계절에 맞춰 살아가는 태도이며 그 축적된 시간 위에서 타샤 튜더의 세계는 완성되었다.
타샤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쉬지 않았고 삶의 기쁨으로 삼았다. 뜨개질 장갑, 인형, 밀랍양초 등등 손으로 만들어가는 기쁨은 타샤의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타샤 튜더는 자녀들이 성장해 곁을 떠난 뒤에도 같은 생활 방식을 이어갔다.
아흔을 넘긴 나이까지 여전히 혼자 정원을 가꾸고, 직접 음식을 준비하며 일상을 지켜냈다.
전시를 따라 걷다 보면, 현대인들이 다시 찾고 싶어 하는 삶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맨발로 흙을 밟고, 유기농 재료로 식탁을 차리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마음을 나누며
식물과 동물들과 교감하며 하루를 보내는 삶이다.
타샤는 실제로 정원을 맨발로 거침없이 오가며 일했다.
몸을 쓰는 생활은 특별한 실천이라기보다 일상의 리듬에 가까웠다.
며느리 가운데 한 명이 한국인이어서 국내 방송국의 다큐멘터리로 그 모습이 기록되기도 했다.
전시를 보며 오래 남는 인상은 환경의 조건보다 태도에 가까웠다.
많이 가지려 하지 않고, 이미 가진 삶을 감사함으로 정성스럽게 돌보는 마음.
그 단순한 태도가 타샤 튜더의 시간을 오래 지탱해 온 힘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 타샤 튜더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걸까.
그녀의 삶은 거창한 사건으로 기억되기보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삶의 중심을 지켜온 시간에 가깝다.
계절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가족과 자연을 돌보는 일상이 차곡차곡 이어졌다.
어쩌면 마땅히 그래야 했을 평범한 삶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평범함이 지금의 우리에게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속도와 효율에 익숙해진 일상 속에서
우리는 어느 순간 삶의 중심을 감각하는 방식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로봇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는 무인 매장이 늘어나는 한편,
원두를 고르고 볶고 천천히 내려 마시는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함께 늘고 있다.
손이 더 가고 시간이 더 필요한 과정 속에서만
비로소 온전히 느껴지는 밀도와 여운이 있기 때문이다.
타샤 튜더의 삶이 오늘 다시 마음에 닿는 이유도 그 지점에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시간 그 자체라기보다,
삶의 중심을 느끼며 살아가던 태도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 타샤 튜더의 일상은 오래된 이야기처럼 보이면서도
지금의 우리에게 조용한 울림으로 남는다.
미래의 어느 날,
우리의 삶 역시 ‘Still’이라는 단어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라며
전시장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