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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어PD May 16. 2023

1980년부터 나는 시한부 삶을 산다

1976년, 지금부터 47년 전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존재감 없는 국가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북한보다도 못살던 시기였다. 나는 그때 태어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못살던 시절이었다. 미아리에 있는 달동네에서 초등학교를 보내고 중학생이 되자 경기도 퇴계원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옛날에는 학년 초가 되면 아이들에게 호구 조사를 했었다. 거기엔 부모의 학력과 직업을 묻는 란이 있었다. 어떤 ‘집구석’인지 알아보기 위한 초기 정보로는 너무 정곡을 찌르는 정보이긴 하다. 중졸에 막일을 하는 아버지와 엄마가 없었던 나는, 새로운 선생들에게 그다지 좋은 첫인상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요즘은 부모의 직업을 묻지는 않겠지만, 어디에 사는지로 ‘집구석’을 평가하는 것 같다. 강남이나 서초, 잠실에 사는지 경기도 외곽이나 강북에 사는지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보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내가 태어났던 시절은 모든 이들이 대체로 못살았고 나는 그중에서도 더 못 사는 축에 속했었다.   


어렴풋이 아주 어린 시절 사진을 보거나하면 굉장히 건장해 보인다. 그러던 중 3~4살 때 아버지와 목욕탕을 같이 갔는데 배가 너무 볼록 튀어나왔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마음에 걸려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를 받아봤다고 한다. 없는 형편에도 그 말이 신경 쓰여  병원에 갈 정도로 배가 심하게 튀어나왔었나 보다. 동네 병원에 가서 들은 말은 더 큰 병원으로 가보라 했고 당시 미아리에서 가까운 큰 병원인 경희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희귀했다. 오른쪽 신장을 정체 모를 물주머니가 싸고 있었다고 했다. 물주머니가 언제 터질지 모르니 빨리 제거 수술을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과 함께…

어린 나이에 신장 한쪽을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은 나는 아직도 오른쪽 배에 한 뼘 정도의 큰 수술자국이 남아 있다. 링거 바늘을 꽂을 곳이 없어 겨드랑이 밑에 꽂아서 그곳에도 손가락 길이만큼의 흉터가 있다. 지금도 신장을 제거하는 수술은 큰 수술인데, 의학이 지금보다 낙후되었을 그 당시에는 생사가 걸린 대수술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어릴 적 큰 수술 한 번쯤은 받아봤겠지만 이 정도의 수술은 아니었을 것이다.


신장이 하나밖에 없으면 조심해야 할게 몇 가지 있다.  

우선 싸울 때 조심해야 한다. 마지막 남은 신장이 상대방의 공격에 의해 상해버리면 투석을 하거나 이식밖에는 답이 없다. 치고받고 싸울 일이 있다면 남아 있는 신장을 잘 보호해야 한다.  

또 과도한 스트레스나 몸을 혹사해선 안된다. 누구나 이런 상황은 피해야 하지만 신장이 하나라는 건 스페어타이어 없이 달리는 것과 같다. 과속을 하거나 비포장 도로를 조심하지 않으면 차가 그대로 서버릴 수 있다.  

의학적으로는 짜고 매운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고 약도 조심하고 소변을 오래 참아도 안 좋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내가 신장이 하나라는 걸 크게 의식하진 못했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농구를 하다가 토한 적이 있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친구들도 종종 그랬다. 1년에 한두 번씩 체하거나 장염에 걸려서 고생을 했었는데 신장 때문이라기보다는 소화기관이 약해서 그랬던 거 같다. 그럴 때는 꼭 새벽 2시에 깨서 허벅지에 쥐가 날 정도로 토하고 설사하다 아침을 맞았다. 가끔 아버지가 준 양귀비 끓인 물을 마시면 바로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응급실을 이용했다.


고등학교 생물시간이었나… 선생님이 몸속 장기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신장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었는데, 신장이 두개여야하는데 하나밖에 없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오래 살긴 힘들다고 했었다. 본인도 아차 싶었는지 이 반에 혹시 신장이 하나인 친구는 없지라고 물었는데 내가 손을 번쩍 들었던 기억이 난다.   

반항끼가 발동했던 걸까.  


‘오래 사는 게 중요한가요? 어떻게 사는 게 중요하죠’


어쨌든 그렇게 나는 수술을 이겨내고 어릴 때 마감되었을 수도 있는 삶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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