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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어PD Jun 07. 2023

2005년, 사랑하는 동지가 생기다

결혼제도를 혐오했던 내가 결혼하면서 다짐했던 것들

나는 결혼제도 자체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켜봐 왔던 부모의 결혼생활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든 생각일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힘이 되는 존재라기보다는 본인에게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대상이라고 보였다. 어쩌다 저 사람들은 결혼까지 해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을까… 좋았던 시절이 있기는 한 걸까… 그 어린 나이에도 이런 의문을 항상 품었었다.


그런 내가 2005년에 결혼을 했다.   

내 나이 서른 살이었고, 친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했다.


결혼을 하면서 스스로 다짐했던 게 몇 가지 있다.   

결혼의 실패 사례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왔기 때문에 그 반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나는 술주정뱅이가 되지 않아야 했다. 원인이 어떻든 술을 먹고 정신을 잃은 상태가 되면 정상적인 생각과 대화가 불가능하다. 화는 증폭되고 싸우다 보면 스스로 싸움을 즐기는 상태가 된다. 술만 마시지 않아도 결혼생활에서 실패할 확률은 크게 줄어든다. 장모님을 포함해 나이 많은 여자들이 술 안 먹는 사위나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술 앞에 장사 없고 술 먹는 놈 치고 주사가 없는 놈을 본 적이 없다. 스스로는 자는 게 주사라고 주장하는 놈들도 본인만 모를 뿐, 주변사람들에게 어떤 식이든 주사를 부리고 피해를 주기 마련이다.


다음은 내 몸이 더 피곤한 게 낫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집 밖에서는 부지런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집에만 오면 거만해지고 손하나 까딱 안 하는 스타일인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하루이틀 지나면 꼴 보기 싫을 수밖에 없다. 물론 처음에는 잘 모른다. 본인이 게으른지에 대한 인식도 하지 못한다. 몇십 년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샤워를 하고 세수를 한 ‘그 자리’가 지저분해진다는 거 자체를 모를 수 있다. 설거지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큰 그릇부터 닦는 게 낫다는 생각자체를 하지 못한다. 식당에 가서 상대방의 수저와 젓가락을 놓아주는 게 몸에 베지 않은 사람은 윗사람과 식당을 가서도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다. 모르는 건 배워가야 하고 배운 후엔 실천해야 한다. 그게 곧 매너가 된다.   

그리고 이걸 내가 하지 않으면 결국 배우자가 해야 한다. 둘만 생활하는 공간이기에, 돈 주고 아줌마를 쓰지 않는 이상, 둘 중에 한 명이 언젠가는 해야 한다. 그렇다면 내 몸이 피곤한 게 낫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으면 평화롭다. 그게 배려일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살다 보면, 배우자 성격이 개차반이 아니라면, 같은 생각을 하게 되고 집안에서 싸울 일이 없어진다.


그리고 양쪽 집안 부모님들에게 가능하면 똑같이 해드리자는 것이었다. 돈을 드리거나 선물을 하거나 할 때 똑같이 하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거 아닌가 싶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 둘이 버는 돈은 정해져 있고 결혼하면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던 우리는 경제적으로 갈길이 멀었다. 그래도 이 부분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맞벌이를 할 때까지는 어느 정도 지켰지만 외벌이가 됐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한쪽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고 노력한 것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퇴계 이황선생이 마음에 담았다는 ‘신기독‘을 실천하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 더 삼가고 조심한다는 뜻의 이 말을 되새겼다. 누가 보지 않아도 나태해지지 않고 스스로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 어떤 일이든 주어진 일을 잘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살려고 했다. 물론 사람이 매일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실수를 하기도 하고 알면서도 게을러지고 일탈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 고치려 노력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걸 누가 보거나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건 스스로 하려는 마음이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결혼생활을 소홀할리 없다.   


결혼을 하면 예상치 못한 수많은 문제가 튀어져 나온다. 어떤 건 너무 사소하고 어떤 건 너무 큰일이다.  

내 선에서 액션을 취해서 해결될 문제도 있지만, 대체로는 같이 의논하고 토론하고 생각을 좁혀서 하나의 안을 도출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 ‘나’의 입장에서 편하고 유리한 방향을 고집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치하듯 하나를 내어주고 하나를 취하는 것도 정답이 아니다.  

‘나’의 입장과 ‘배우자’의 입장, 그리고 ‘우리’의 입장. 3가지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  

결혼은 그런 것이다. 각각의 인격체가 만나 각자의 인격은 유지한 체 또 다른 인격이 만들어지는 것이 결혼이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과 다짐으로 시작했던 나의 결혼생활은 평탄했을까?   

나의 결혼 이야기는 다시 정리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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