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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어PD Aug 01. 2023

1983년,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는 이유

그 이유를 찾았다


나는 소화기능이 별로 좋지 않다. 밀가루 음식, 기름진 음식과 커피등, 위나 장에 자극을 주는 걸 자주 먹는 날엔 꼭 탈이 난다. 스트레스가 단기간에 확 몰아친 날도 탈이 난다.


증상은 순차적으로 나타난다. 우선 헛트림을 반복적으로 하고, 가슴이 답답하다가, 두통이 심해진다. 손을 따거나 약을 먹고 진정이 되면 다행인데, 그 단계를 넘으면 설사하고 토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거기서 더 심해지면 극심한 두통과 복통으로 직립보행이 불가능해진다. 어떤 날엔 너무 심하게 토하다 허벅지에 쥐가 난적도 있다. 눈물 콧물을 포함해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을 통해 몸속의 것들이 나오는 것 같다.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몇 번 한 적도 있다. 이럴 땐 응급실에 가서 수액과 진통제를 맞아야 끝이 난다.


어린 시절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밥을 먹을 때면 늘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화목’과는 거리가 상당한 우리 집은 다 같이 모이는 날엔 항상 언성이 높아졌고 부모님은 거의 매번 싸우셨다. 그래서 식시시간은 대체로 악몽 같았고, 그 이유에서인지 나는 지금도 먹는 게 특별히 즐겁지 않다. 


일곱여덟 살 때쯤이었다.


온 가족이 단칸방에 살 때였다. 방문을 열면 부엌이 나왔다. 그 부엌에서 씻기도 하고 요리도 했다. 한쪽 편엔 연탄보일러가 있었고 그 위에 항상 물을 데워놓는 큰 양은솥이 있었다. 부엌을 나가면 마당이 있었는데, 주인집과 같이 쓰는 마당을 지나면 대문 옆에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그날 아침 식구들이 밥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멀리 떨어진 대문옆 화장실로 갔다. 한 5분쯤 쪼그려 앉아 볼일을 보고 있었다. 화장실 문틈으로 멀리 부엌이 보이고 방안도 보였다.


잠시 후 와장창 소리가 들리고 방 안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또 싸움이 시작됐다. 아침이었는데… 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아침부터 밥상을 뒤엎은 모양이다. 화장실에서 볼일은 끝났지만 나갈 수가 없었다. 아니 나가기 싫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쪼그리고 앉아서 바깥을 보고 있었다.


내 기억은 거기에서 멈춰 있다. 그 후에 화장실을 나와서 무엇을 했고 사태가 어떻게 수습됐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쪼그리고 한참을 앉아서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렸던 기억만 있다. 아마도 아버지가 옷을 입고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화장실에서 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그때부터였을까...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는 습관이 생겼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합법적인 명분까지 부여받은 나만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순간순간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나만의 ‘19호실’은 그때부터 화장실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아버지 또는 어머니와 극장에 가본 적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그림, 책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다. 그래서 부모와 영화를 보러 가거나 하는 친구들을 보면 남의 세상 이야기 같았다. 아니 부모와 그런 곳도 갈 수 있다는 상상을 못 했다.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막일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철근일을 하셨는데, 목수가 거푸집을 만들면 콘크리트를 붓기 전에 거푸집 안에 철근을 꼬아 넣는 일이다. 언제부터 저 분야의 일을 했는지는 정확하진 않다. 젊었을 때는 사우디와 카타르를 갔다 왔다고 한다. 그곳에서 도로와 대학 등을 짓는 일을 했었다.


지금은 막노동이 어떤지 잘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못 배우고 딱히 몸 쓰는 일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게 막일였다. 그래서 그런지 대체로 술을 가까이하고 폭력적인 남자들이 하는 일이었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평균적으로)


아버지도 굉장히 터프한 스타일이다. 말투, 눈빛, 태도에서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그 화가 풀릴 때까지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렸다. 술을 먹고 들어온 날엔 대화라는 것이 되지 않았다. 당시 어머니도 만만치 않은 여장부 스타일이어서 지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매일 싸웠겠지만…


기억나는 부부싸움 장면이 하나 있다. 일의 선후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도 술을 잔뜩 먹고 들어와서는 두 사람은 싸웠다. 아마 어머니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아져서 싸웠을 것이다.  아버지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면 없던 일로 하겠다 했는데, 어머니는 잘못한 게 없다라며 거부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소리 지르며 주먹이 오가고 어느 순간엔 누구 손인지는 모르지만 식칼도 손에 쥐어져 있었다.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때 든 생각은 잘못을 하고 안 하고 가 그리 중요한 건가… 그냥 잘못했다 한마디 하고 이 비생산적인 싸움을 끝내면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그 어린 나이에도 했었다. 물론 칼로 찌르는 일까지 벌어지진 않았었다. 같이 살지는 않지만 두 분 다 지금 살아있는 건 맞으니까.


돌이켜보면 두 분은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음에 대한 화풀이를 서로에게 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돈벌이는 안되고 되는 일은 없고 그런 상황에서 배우자 마저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한심해 보이지 않았을까? 배우자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이 마지막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다. 


앉아서 수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내가 왜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게 됐는지에 대한 원인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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