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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어PD Mar 13. 2023

2013년, 죽음이 슬픈 이유

2013년 가을, 난 드라마를 만들었다


지금은 좀 더 유명해진 연기자들과 함께 했는데 재미있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을 한다. 그중 하나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개선 사업인데,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드라마를 제작해서 전국의 중고등학교에서 시청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유튜브나 회사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제작의 방식은 사내 방송 제작 PD들이 돌아가면서 맡았다. 사내방송이라는 제한된 형식과 딱딱할 수밖에 없는 주제에서 벗어나 진정한 창작물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었을까 싶다. 회사에서 제작비를 지원하고 그 제작비의 모든 권한이 나에게 있다. 나에게 맞는 제작팀을 꾸리고 스토리의 방향과 내용도 직접 정하고 연기자 섭외까지…   

‘감독’이 되어 보는 것이었다. 약 3개월의 시간도 주어졌다. 실무에서 빠져나와 드라마 제작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더 혼을 갈아 넣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일생에 그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테니…


처음 별도의 제작 사무실을 차리고 집기류를 들이고 스태프들과 인사하던 때가 생각난다.


모두들 나에게 감독님이란 호칭을 붙여주었다. 영화판에서 닳고 닳은 그들 눈에, 나의 첫인상은 의심과 불안이 컸을 것 같다. ‘영화를 한 번도 안 해본 회사원이래’, ‘사내방송 피디라는데 잘할 수 있을까?’, ‘돈 많은 회사는 다르네…’ 속으론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나의 경력과 경험을 털어놓고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조언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주어진 시간은 짧았기 때문에 제작에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불필요한 자존심 싸움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마음을 열고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역량을 믿고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우선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일이 급했다. 스태프들은 ‘책’이라고 표현했다. 빨리 책이 나와야 그에 따라 다음 과정을 진행할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주제는 시각장애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불가능할 것 같던 클라이밍을 추가했다. 다양한 사례를 찾고 수많은 회의를 했다. 시각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도 참 많이 봤다. 등반이나 클라이밍에 관한 영화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 정도 걸려 ‘책’이 완성됐다. 그리고 연기자 섭외에 들어갔다. 그 분야의 경험과 인맥이 풍부한 프로듀서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원하는 연기자는 별문제 없이 섭외가 가능했다. 촬영감독과 그 외 스태프들까지 섭외가 완료되었다.


책을 토대로 콘티도 만들었다. 촬영장소를 정하고 일정을 짜고 첫 촬영에 들어갔다.


총 8회 차 촬영이었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그날 촬영현장의 분위기와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도서관 옥상에서 라면을 먹던 남녀주인공, 자살하려고 빌딩 옥상에 서서 한강을 바라보던 여주인공   

또 공원에서 폴라로이드로 사진을 찍던 시각장애를 가진 그녀. 집안에서 아버지와 싸우던 남주인공,   

상계동에 있던 야외 클라이밍장에서 연기자들을 찍기 위해 크레인에 타 있던 카메라 감독,   

밤에 주인공들이 걸어가다 업어주는 신을 찍었던 의정부 동부간선도로변의 구름다리…   

모두 생생하다.


모든 촬영이 끝나고 편집을 마친 드라마는, 장애인의 날에 KBS를 통해 방송도 됐다.  

그리고 전국의 중고등학교에서, 수업시간을 할애해 학생들이 시청하게 된다.  

방송을 기념해 사전에 시사회도 진행한다.


그날은 시사회 아침이었다.   

KBS 9시 뉴스 팀에서 나를 인터뷰했다. 방송의 취지와 연출 소감. 제작 과정 등… 30여분 회사 편집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매번 인터뷰어로 질문만 했던 내가 인터뷰이가 되어 대답을 했다. 재미있었지만 고생했던 3개월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때가 아침 10시가 되지 않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후엔 시사회에 참석해서 학생들의 시사회 소감을 듣고 출연했던 연기자들과 사진을 찍기로 되어 있었다.


바로 그날이 2014년 4월 16일, 오전부터 온 나라가 시끌시끌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아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 구조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시사회가 취소될 거라는 이야기가 돌다가 모두 구조됐다는 소식에 계획대로 진행됐다. 시사회 중에도 뉴스를 수시로 보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두 전원구조라는 뉴스가 많았다. 9시 뉴스의 마지막 꼭지로 예정되어 있던 장애드라마 관련 뉴스도 변동이 없었다. 그렇게 시사회가 끝나고 오후 3, 4시가 되고 상황이 변했다.


아침부터 TV에 나오던 팽목항의 바다. 그곳에서 뱃머리를 하늘로 향해 바닷속으로 가라앉던 그 큰 배.  

온 국민이 지켜봤던 그 배에는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몇백 명이…  

볼 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나니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태연하게 아이들이 수장되는 장면을 시청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아침을 먹으면서 누군가는 출근을 하면서 누군가는 회의를 하면서 누군가는 방송촬영을 하면서…  

그렇게 잔인한 생중계를 지켜만 봤다. 정부는 무얼 했고 언론은 무얼 했는지 따질 필요도 없이 그렇게 모두는 공범이 됐다.


아주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필 드라마 시사회는 왜 그날 했을까… 1주일만 아니 하루만 앞당겨서 했다면 어땠을까…  

인간은 심장을 도려낼 만큼의 ‘타인’의 고통보다 자기 손톱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프다고 느끼는 이기적인 동물이라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죄스러울 만큼 너무 큰 참사였다. 그리고는 괴로운 애도의 시간이 이어졌다. 또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들 싶어 했다. 그날의 진실은 무엇인지..


정부는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한 질타가 계속됐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비판은 내 기억에 크지 않았다.


전원 구조라는 첫 오보를 냈던 MBN은 그때나 지금이나 잘 돌아가고 있고, 애도하는 기간에도 정치의 편에 서 있었다. 그나마 참사 이후 오랜 시간 팽목항에서 뉴스를 진행했던 손석희 정도가 같은 언론인으로서의 죄의식을 갖고 있었을까 싶다.


나의 드라마는 그렇게 묻혔지만 할 수만 있다면 드라마 따위가 문제였을까, 누군가는 차가운 바닷속에서 점점 숨이 막혀오는 공포를 느끼며 세상을 떠났을 그날. 수영을 못하는 나도, 바다에 뛰어들어 아이들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으니…


9년이 지났다. 한 2, 30년은 지난 것 같은데 9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만든 드라마는 유튜브에서 누구나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시사회 때 있었던 그 참사도 원한다면 누구나 찾아볼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몇 가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부분이 있어서 찾아보았는데 9년이 지났지만 다시 보는 일은 여전히 슬프고 괴롭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날 일을 완전히 잊은 것도 같다.   

그저 625 전쟁이나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지금 세월호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주저하고 있고, 그 단어 외에 다른 표현은 없는지 계속 생각 중이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고통스럽겠지’ 하는 마음이 들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측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세월이 약이고 망각은 신이 준 가장 큰 선물이라 한 것처럼 잊혔다.   

9년 전 일이지만 정말 기억력이 나빠서 잊은 사람도 있을 테고, 가끔 떠오르는 사람, 종종 떠오르는 사람도 있겠지.


그래서일까 주기적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재물처럼 희생되는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코로나로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이제는 당연하게 죽어가고.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밟혀 죽어가고  

공사 중인 아파트가 무너지고 지하철을 수리하다 전철에 치어 죽기도 한다.  

멀쩡히 가던 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을 하는 버스나 트럭에 부딪혀 순식간에 죽는 사람도 있다.  

인간은 한 살에도 죽고 아홉 살에도 죽고 스무 살에도 죽고 나이 들어서도 죽는다.


그것이 죽음이다.


죽음은 정해진 때가 없다. 불시에 찾아오고 준비 없이 사랑하는 이를 데려간다.  

나의 죽음을 예측할 수 없듯이 타인의 죽음도 예상할 수 없다.


그래서 죽음이 슬픈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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