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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어PD Mar 06. 2023

2021년, 융통성과 직무유기

가족 확진으로 2주간 재택근무를 한 적이 있다.


아픈 와이프를 두고 어차피 혼자 살아 뭐 하냐는 각오로 집에서 같이 지냈다. 밥과 청소 등 집안 일과 회사 업무도 하면서 나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물론 밥은 따로 먹고 와이프는 목이 아파서 마스크를 대부분 하고 있었다. 같은 샤워실과 화장실을 쓰고 같은 방에서 잤지만 전염되지 않았다.


재택을 하면서 안 하던 요리를 자주 하게 됐다. 평소 주말에도 일찍 눈을 뜨는 나는, 쌀을 씻고 전기밥솥에 밥을 올리곤 했다. 하지만 요리를 하진 않았다.


언젠가 와이프의 생일 때 아침 요리를 해준 적이 있는데 어질러진 주방을 보고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적이 있어서 그 후론 요리를 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젠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나나 와이프 모두 내가 요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재택기간 동안 내가 주로 했던 요리는 된장찌개였다. 쌀을 씻은 첫 번째 물은 주방에 있는 아레카 야자와 녹보수 나무에게 준다. 그리고 두 번째 씻은 물을 냄비에 담는다. 냄비를 인덕션에 올리고 가열한다. 그사이 쌀을 마저 씻고 밥솥에 안친다. 냉동고에 있는 다진 마늘 얼린 것을 손가락 두 마디 정도를 떼어 냄비에 넣는다. 마트에서 산 된장을 숟가락으로 크게 두 번 퍼서 끓는 냄비에 넣고 잘 저어준다. 양파, 버섯(표고나 느타리), 파프리카, 두부, 대파를 꺼내 썬다. 어묵이나 닭가슴살, 참치가 있다면, 너무 많지 않게 살짝 넣어도 좋다. 참치는 기름을 빼고 넣는다. 넣는 순서는 양파와 파프리카를 먼저 넣고 버섯을 넣는다. 그렇게 몇 분 끓인 후 두부와 대파, 나머지를 넣는다. 그리고는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팔팔 끓이면 완성.


첫날 내가 만든 된장찌개를 먹었을 때, 영화 극한직업의 대사가 절로 나왔다.


'이거 왜 맛있어?'


맛있었던 이유는 기술적으로 보면 초반에 넣었던 다진 마늘에 있었고 우연히 재료들의 양과 조리순서, 가열시간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을까 분석을 해본다.


이것 외에 가능한 요리는 고추장김치찌개. 앞의 된장찌개와 비슷하다. 된장 대신 고추장과 김치, 김치국물을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참치캔을 하나 넣으면 완성이다. 이 역시 매우 맛이 있다.


요리도 자주 하게 되면 요령을 피우게 될까?


와이프가 된장찌개를 먹어보더니 너무 맛있다고 어떻게 만들었냐고 묻길래 만든 과정을 이야기해 줬다. 와이프는 다진 마늘을 넣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넣을 때도 있는데, 귀찮아서 생략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요리를 배운 적은 없지만 아주 가끔 하기 때문에 해야 할 것 같은 것을 꼭 한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반복된다면 이번 한번만큼은 안 해도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업무를 할 때를 생각해 보면, 늘 하던 일이라 귀찮을 때가 있다. 나는 영상 편집을 하는 일을 하는데, 편집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매번 넣던 음악을 넣거나 쓰던 이펙트를 사용한다. 영상의 내용은 새로운데 옷은 거의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귀찮은 것이다…   

새로운 영상에는 새로운 음악과 효과, 구성 등을 새롭게 고민하고 써야 하지만 매번 하는 일이라 귀찮아서 안 하고 혹은 어차피 결과물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니 안 한다.


다진 마늘을 넣지 않고 된장찌개를 끓여도 와이프의 요리도 맛이 있다.   

오랜 시간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가 있겠지.


어떤 것이 맞는 걸까?


어디까지가 융통성이라 부를 수 있고 어디까지가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을까…


한겨울 건설현장에서 시멘트가 굳기 전에 작업공정을 진행시켜 사고가 나고 매뉴얼대로 철거하지 않아 지가 나가는 행인위로 건물이 무너져버린 사건들이 있다. 결과가 비극이라 이런 것들은 직무유기 범죄에 해당하겠지만 (실제로는 처벌받은 사람들도 없지만) 결과에 문제가 없었다면 융통성 있게 일을 진행했다고 윗선에서 칭찬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모든 행위의 당위성은 ‘결과’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프로야구에서 중요한 법칙처럼 회자되는 말이 있다. ‘내려갈 팀은 내려가고 올라갈 팀은 올라간다’  

이 말은, 항상 꼴찌를 하는 팀들을 조롱하는 말처럼 들렸지만 굉장히 과학적인 말이다. 1년에 100경기 이상을 치르는 프로야구 시즌에서 연승을 할 때도 있고 연패를 할 때도 있다. 그때그때 즐겁고 행복하기도 하고 화나고 짜증 나기도 한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고 보면 결국엔 실력 있는 팀이 올라가고 실력 없는 팀은 내려가게 되어 있다. 몇 게임 이긴 것 같고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한국 축구가 브라질과 만나 한게임 정도 이길 수도 있지만 만약 100경기를 한다면 10번 이상 이기기 힘들 것이다. 그것이 실력이고 확률이다. (다른 말로는 냉혹한 현실이라고도 한다)


융통성은 결국 올라갈 팀에서 부리는 것이 융통성이다. 브라질 축구팀이 춥고 비 오는 날 훈련을 쉬는 것은 융통성이지만 한국 축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한 번의 결과는 ‘운’일 수도 있지만 100번의 결과는 ‘운’이 아니다.


세상 일엔 운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매뉴얼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이유는 다수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번 운 좋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도 있고 이것저것 빼고 설렁설렁 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성과가 좋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위바위보를 매번 이길 수 없듯이 운도 많아야 한두 번이다.   

인생은 무언가를 한두 번만 하고 그만둘 수 없기 때문에 원칙이 있고 꼭 따라야 하는 매뉴얼이 있다.


‘반복되는 루틴에 젖어 꼭 해야 하는 것을 빼먹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지’라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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