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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어PD Mar 19. 2023

2022년, 잠들 수 없는 출퇴근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었으니 사회생활도 그 정도를 맞고 있다.   

계산을 해보니 이 기간 동안에 서울시민이었던 적이 6년 정도이고 경기도민 인적은 15년이 넘는다.   

사실 서울에 살고 있을 때도 우이동, 상봉동, 공릉동 등 거의 외곽 끝자락이어서 경기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다녔던 혹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들의 위치가 홍대, 압구정, 을지로, 강남 등인 걸 보면 그 긴 세월 동안 출퇴근을 어떻게 했나 싶다.


우이동에 살 때는 연남동에 있는 회사에 다녔는데, 20분을 걸어서 수유역에 갔다가 전철을 타고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다시 10분을 걸어갔다. 얼추 1시간 10분쯤 걸리는 시간이다.  

회식이라도 하는 날엔 지하철이 끊겨 택시를 타야 하고, 신입사원에 박봉이었던 나는 청계천에서 우이동 집으로 걸어갔던 기억이 있다. (1시간쯤 걷다가 도저히 안될 것 같아 택시를 탔었다, 당시 월급이 세후 80만 원이 조금 넘었으니 택시비 몇만 원은 너무 큰돈이었다)


그 후로도 상봉동에서도 최소 1시간에서 1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를 출퇴근했다.   

하루 2~3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내는 셈이었다.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 남매들이 경기도에서 출퇴근하는 설정이 나오는데, 내 이야기인 것 같아 공감이 많이 됐다.


“퇴근하면 출근할 걱정, 출근하면 퇴근이 걱정이다”


회사 다닌 지 몇 년이 지나도 수시로 전철이나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어떤 루트가 더 효율적인지를 고민한다.   

‘너는 지하철을 왜 전철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어’라는 드라마 속 대사가 있다.   

전기로 움직이는 기차. 나도 지하철보다는 전철이 익숙하다. 전철은 꼭 지하로만 다니지는 않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란 아이들은 당연히 지하로만 움직이는 걸 봤으니 지하철이라고 부르는 게 자연스러운가 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회식이나 저녁 약속은 9시가 넘으면 불안해지고 젊음을 불태워 밤을 지새울 생각은 애초에 하기 힘들다. 원래도 술을 좋아하지 않지만, 집이 먼 것도 술을 멀리하게 된 원인이 됐다.


잘 모르겠다. 지나고 보니 술을 멀리한 것이 나에게 득이 된 것도 같고,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손해를 본 것도 같고...


분명한 것은 오랜 시간, 긴 출퇴근이 내 삶의 일부가 된 것은 분명하다.  

자연스럽게 이 시간을 '인정'하게 됐다.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나 막 결혼한 직후에는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멀리 살았지만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서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물론 방 몇 개는 은행의 힘을 빌려야겠지만)  

하지만 난 계속 경기도에 살고 있고 아직도 하루 3시간의 시간을 들이고 있다.


출퇴근을 하는 그 긴 시간 동안 혼자 뭔가를 하는 법을 체득했다. 대부분은 잡생각을 한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스타크래프트 유튜버의 강의를 보기도 한다. 프랑스나 베트남행 비행기 표를 끊었을 때는 영어회화를 하기도 했다. 혼자 핸드폰을 보면서 낄낄대는 사람을 구경하기도 한다. 요즘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누군가 옆에 서서 내 글을 훔쳐보지는 않나 경계를 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자기들 비즈니스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난 유독,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역설적이지만 사람이 바글바글한 만원 지하철과 버스, 사람들 틈에 끼어서 환승을 할 때,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다. 가끔 도를 믿으라는 사람들이나 길을 물어오는 사람들, 명함을 돌리며 말을 거는 정치인들을 빼면 완벽한 타인의 숲이다.  

누군가에겐 부모이고 자식이고 친구이고 애인일 그들이 나에겐 한그루의 나무에 불과하다.   

신경 쓰거나 의식할 필요가 없어서 너무 편하고 좋다.   

산을 걷다 보면 내 눈에 띄는 나무들은 몇 그루 되지 않는다.  

힘들 때 그늘을 내어주는 나무, 수형이 아름다워 잠시 감상하게 되는 나무, 꽃향기로 유혹하는 나무, 길 한복판에서 산행에 방해가 되는 나무... 그런 나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저 산의 일부분일 뿐이다.


인생에서도 수많은 인간들을 만나고 겪게 된다.  그중에 보이지 않는 한 그루의 나무와 같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내가 힘들 때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아름다워 존경하게 되는 사람, 다양한 매력으로 나를 유혹하는 사람,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는 사람,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좋든 싫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다 보면 주변에 다양한 나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등산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산 꼭대기에 갔다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내려오기까지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나무를 만나듯 사람을 만나고 올라가는 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려가는 길을 만나게 된다.   

원하지 않아도 삶은 진행되고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나는 오늘도 출퇴근 시간에 잠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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