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학적으로 지구의 나이를 구분하는 단위와 기준이 있다.
지금은 현생누대, 신생대, 제4기, 홀로세이다.
중생대의 쥐라기와 백악기에 지구의 주인은 공룡이었다. 무수한 종류의 공룡들이 번성했고 자원은 풍부했다.
흔히 행성과의 충돌로 인해 이때 대부분의 공룡과 식물들이 멸종했다고 알려져 있다.
약 6,600만 년 전을 기준으로, 행성과의 충돌이든 화산폭발이든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어떤 이유로 멸망에 가까운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신생대가 시작됐다. 그 후 지구는 3개의 ‘기’와 7개의 ‘세’를 지나 현재에 이르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인류의 문명이 싹트기 시작한 시기를 기점으로 ‘홀로세’라고 명명했다.
최근 많은 지질학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으로 산업혁명과 핵실험 시기를 기준으로 ‘인류세’라는 세기 구분을 하자는 주장이 생겼다.
이 시기부터 대기 중에 그전에는 없던 방사능 물질이 생겼고 이산화탄소 농도의 변화, 플라스틱, 콘크리트 등이 생겼다.
또한 인간의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환경파괴가 가속화 됐다.
수많은 식물과 동물이 멸종했다. 충분히 ‘세기’의 기준이 될 만한 큰 변화라고 여길만 하다.
짧은 기간이지만 인간이 1900년대 이후 저지른 일들은 지구의 땅에 충분히 축적되어 지질학자들에게도 큰 의미가 된 것이다.
자전거를 탄지 얼마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아직 전화가 된다는 것으로 봤을 때 포탄이 정확히 조준돼서 발사된 건 아닌 것 같다. 전쟁의 초기엔 적의 통신장비를 무력화시키는 게 상식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밀 타격이 가능한 미사일 등을 이용해 주요 기관 시설을 타격해야 하는데, 북한이 그런 능력은 없을 것이다.
혹시 그런 미사일은 떨어지기 전에 요격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혼란이 되고 있는 공격은 무차별로 서울을 대강 조준하고 쏘아대고 있는 포격이다.
사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 일수도 있다. 군사시설이나 기관시설에 국한되지 않고 민간인 구분 없이 공격하다 보니 언제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무튼 아직까지 전기, 수도, 통신은 멀쩡한 것 같다.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이런 상황에서 전화할 사람은 가족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에겐 가족이 없다.
“여보세요?”
“네, 누구세요?”
“아네… 아까 주차장에서 차 긁었다고 전화했던 사람인데요... 저희 엄마랑 같이요….”
“아 대피는 잘하셨어요?”
“그게... 피하긴 했는데 엄마가 좀 다치셨는데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요? 다른 가족분들 안 계세요? 전 지금 피신 가는 길이거든요”
"아 그러시구나... 아빠가 전화를 계속 안 받아서... 혹시나 해서, 초면에 실례했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뭐지? 아는 사람도 없는 건가, 언제 봤다고 나한테 전화를 하지? 그 정도로 절박한 상황인 건가...
가서 도와줘야 하나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나도 살고 봐야지 일면식도 없는 사람 때문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의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빨리 피하라는 말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방금 통화한 사람인데요. 제 생각에는 북한이 언제 핵을 쏠지 몰라서 최대한 어머니 모시고 빨리 서울을 벗어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
"그 말씀드리려고 전화드렸어요”
전화 너머로 우는 소리가 들린다. 뭔가 잘못된 모양이다. 여보세요를 크게 세 번 정도 소리쳤다.
“엄마가 안 움직여요... 잠깐만 와주시면 안돼요? 119는 전화가 안돼요.. 부탁드려요”
"어디신데요?”
"8단지 아파트 후문 놀이터 근처예요”
대답을 하려는 순간 전화기가 툭 끊어졌다. 이제는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어쩌지 젠장. 일단 잠깐 돌아가보자.
자전거를 돌려 놀이터 쪽으로 향했다. 골목길에 들어서자 차들이 뒤엉켜 있었고 한 SUV 옆에서 그 여자가 울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엄마가 그 차에 치인 모양이다. 자전거를 벽 쪽에 눕혀놓고 아줌마 상태를 확인했다. 차에 치이면서 머리를 땅에 부딪힌 모양인지 바닥에 피가 흥건했고 오른쪽 다리가 꺾여있었다. 팔다리는 흐물거리고 코에 손을 대보니 바람이 느껴지지 않았다.
몇 년 전 할머니 장례식 때 이후로 이렇게 가까이서 죽은 사람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혹시 몰라 바닥에 눕혀 놓고 회사에서 배웠던 심폐소생술을 해봤다.
무릎을 꿇고 왼손등 위에 오른손을 얹어 깍지를 끼고 왼 손바닥으로 아줌마의 명치에서 살짝 왼쪽을 눌렀다. 1초에 두 번을 누른다는 리듬감으로 반복했다.
“이렇게 누워계신 지 얼마나 됐어요?”
“아까 그쪽이랑 떨어지고 나와서 길 건너다가 이 차랑 부딪혔으니까... 한 20분, 30분쯤 된 거 같아요”
20분 동안 방치라면 지금 와서 심폐소생술이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차 운전자는 어디 갔어요?”
“제가 잡았는데 뿌리치고 도망갔어요.”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내 잘못은 아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저기요. 제말 잘 들으세요. 정말 유감스럽지만 어머니는 돌아가신 거 같아요. 그리고 지금 북한이 포격으로 계속 공격을 하고 있어요. 전쟁은 초기가 가장 위험해요. 핵을 쓸 수도 있어요. 일단 피하셔야 해요.”
여자는 계속 울었다. 위로를 하기엔 내 마음도 너무 급했다.
“저기요 슬프시겠지만, 지금 어쩔 수 없어요. 저랑 같이 가실래요?”
아무래도 안 되겠다. 눈앞에서 방금까지도 살아 있던 엄마를 두고 돌아서는 게 쉽지 않겠지.
나 혼자라도 살아야겠다… 자전거를 세워서 가려는데 여자가 내 소매를 잡았다.
“같이 갈게요. 대신 엄마를 이 차에 앉혀 주세요”
아줌마를 여자와 함께 부축하듯이 차 조수석에 앉혔다. 차 글로브 박스에서 펜과 종이를 꺼내 여자에게 건넸다.
“혹시 모르니까 전화번호, 이름 적어서 엄마 옷에 넣어두세요”
일단 상황을 정리하고 자전거에 같이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