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어 Nov 22. 2024

7. 피난길의 시작

전쟁의 시작


도로는 아수라장이었다.


골목에서 튀어나온 차와 대로에서 달리던 차가 부딪혀 연기가 나는 곳도 있었고 소방차,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로 온 도시가 시끄러웠다. 처음보다는 잦아 들었지만 간간히 포탄이 터지는 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나는 불과 한시간 전만해도 내집 거실에서 방송 프로그램 아이템을 고민하고 있었다.


인류의 역사와 인간의 탄생.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생각을, 정말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이 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꿈이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 생판 모르는 여자를 태우고 피난길을 가고 있다. 그것도 30분 전에 엄마를 잃은 여자. 애초에 그곳에 가는게 아니었는데, 혼자 이동했으면 자전거 배터리도 아끼고 생존 확률을 더 높일수 있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후회도 되고 머리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지금와서 내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괜찮으세요? 이렇게 전쟁이 나나봐요. 진짜 전쟁을 일으킬줄은 상상을 못했네요.”


“…”


“일단 정신차리고 살아남는거에 집중하시죠. 같은 아파트 주민끼리 꼭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수 있으면 좋겠네요.”


뭐라도 말해야할 것 같아서 계속 떠들었다. 


“그런데 어느쪽으로 가세요?”


“아 아까 말씀드렸는데, 그냥 제 생각에 분명 전세가 불리해지면 핵공격을 해올수 있을것 같아서 서울에서 일단 멀리 떨어지는게 좋을것 같아서요. 구리 지나서 덕소, 양평, 이천, 여주 이쪽으로 일단 가려고요.”


“아 여주에 저희 부모님이 몇년전에 산 땅이 좀 있어요. 거기 텃밭 키우고 농막 지어서 주말마다 왔다갔다 하시거든요.“


”아 잘됐네요.“


인간이 이렇게 간사한 동물이던가, 갑자기 아까의 후회가 안도감으로 돌아왔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미영이요, 한미영. 그쪽은 어떻게 되세요?”


“저는 이인성이에요. 근데 혹시 몸무게 어떻게 되세요?“


”네?“


”아 이게 오토바이처럼 보이긴하지만 전기자전거라서 최대하중이 있거든요. 130kg 까지는 된다고 되어 있는데 60은 안넘으시죠?“


”네, 당연히 안넘죠“


도로의 다양한 장애물들을 피하면서 외곽순환고속도로에 도착했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탄 사람들, 걷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고속도로가 빠르긴 한데…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해야할것 같았다. 


“고속도로가 꽉찼네요. 저길이 빠르긴한데… 국도로 갈까요? 미영씨 생각은 어떠세요?”


“근데 저분들은 다 어디를 가는걸까요?”


“일단 몸을 피하려는 분들이겠죠, 저희처럼.”


인간이 생존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순간. 그 어느 동물보다 잔인해진다. 나와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이를 적으로 간주하고 믿지 않게 되면 ‘공생’이 불가능해지고 현실은 지옥이 된다. 


“그래도 우리는 목적지가 있어서 다행이네요. 제 생각에 미영씨 아버님도 여주로 오시지 않을까요?”


위로한답시고 꺼낸말인데 뱉자마자 후회가 됐다. 부모님 이야기 자체를 꺼내는게 아니었다. 


다행히 그녀가 말을 돌렸다. 


“그런데 북한이 왜 핵을 쏠꺼라고 생각하세요?”


“아, 제가 직업이 피디인데, 제가 새끼 피디일때 북한핵 위협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적이 있어요. 북핵은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카드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한거지만 어쨌든 초강력 무기인만큼 전시에 상황이 불리해지면 남한에 사용하지 않으리란 법이 있겠냐는 분석이 있었어요. 특히 북한 입장에서는 전쟁 초기에 기를 꺽거나 승부를 짓지 못하면 100% 질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면 지금이야 포격으로 수도권을 계속 겨냥해서 쏘고 있지만 우리가 미국과 같이 반격에 나서면 그후에는 핵을 쏘고싶은 유혹이 커질수밖에 없는거죠.”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요. 하지만 북한이 핵을 쏘면 미국도 핵을 쏘게 되고… 본인들도 살아남기는 힘들텐데 자살행위 아닌가요?”


“그렇죠.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한데… 저도 북한이 정상적인 집단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긴 정상이라면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았겠네요.”


“전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지는게 인간성이래요. 그런데 저는 전쟁이 인간성을 제일 잘 드러내는것 같아요.”


대화를 하면서도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 대화에 집중하다보니 내가 고속도로로 집입했다는걸 잠시 잊었었다.


차에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도 있고 차를 버리고 걷는 사람들, 아이를 업고 가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차 사이사이를 빠져나가는 사람들, 덩치가 큰 오토바이 몇대는 차에 끼어 있었는데 그걸 꺼내려고 낑낑대는 사람도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가고 있는데 1km 쯤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웅성 하고 있고 진행이 되지 않고 멈춰져 있는것 같았다. 


나는 직감적으로 저런 상황을 잘 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하다.


아마도 이성을 잃은 누군가가 자전거를 뺏거나 오토바이를 뺏으려고 했을거고 그러면서 몸싸움이 일어나고 공간이 막히자 뒤에서 밀려든 사람들로 북적였을것이다. 저 싸움에 말려드는건 위험하다. 지금은 이동수단을 노리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먹을것을 구하기 위해 저런 장면이 연출될 것이다. 다행히 저곳을 가기전에 구리 시내로 빠지는 곳에서 내렸다.


그순간 살짝 그 상황의 한 장면이 보였다. 긴 막대기를 든 사람 한명이 휘두르고 있었고 그 옆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 주위에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막대를 든 사람을 둘러싸고 위협하고 있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50미터쯤 갔을때, 정말 우연하게도 그 싸움판 바로 옆에 폭탄이 떨어졌다. 큰 굉음과 함께 사람들이 날아가고 팔다리가 흩어졌다. 순간 미영씨의 팔이 나를 꽉 감싸 안았다. 


나는 너무 놀라고 겁이 나서 있는 힘껏 패달을 밟았다. 


전기 자전거의 최고 속도인 30km/h가 계기판에 찍혔다. 

이전 06화 6. 인류세에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