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이 터짐과 동시에 비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흩어졌다. 도로 중간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사람들끼리 소동이 없었다면 타이밍상 우리가 지나갈 때 폭탄이 터졌을 것이다. 죽거나 다친 사람들에 겐 미안하지만 방향을 틀게 되어 천만다행이다.
“다친데 없어요?”
“네, 괜찮아요”
“우리도 큰일 날뻔했네요. 폭탄이 아까보단 뜸해지긴 했지만 언제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겠어요. 최대한 빨리 서울에서 멀어져야겠어요.”
“왜 민간인들한테 폭탄을 쏘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마 쟤네들이 조준하고 쏘지는 못할 거예요. 그럴 기술도 안되고 서울중앙을 조준해서 대충 쏘는 건데 그게 수도권 아무 데나 떨어지는 거 같아요.”
고속도로에서 멀어져 구리에 있는 백화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시의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금일 12시 20분을 기해, 북한의 포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수도를 겨냥한 공격으로 용납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도발을 전쟁행위로 간주하고 대응하려고 합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가까운 방공호로 대피하시고 라디오 방송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가까운 방공호에 대피하라는 내용의 방송이 도시에 반복적으로 퍼지고 있었다.
정부가 이제라도 대응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정부도 답은 없다.
결국 전쟁에서 민간인들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
한국에 극우 매파가 정권을 잡은 지 3년 만에 전쟁이 일어났다.
극우정권은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결국 군사동맹까지 맺어버렸다. 한미관계는 원래 동맹관계였지만,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강한 북한과 중국은 크게 반발했다. 이로 인해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긴밀하게 뭉치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한미일 동맹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판도도 변화시켰다. 중국이 노골적으로 러시아를 지지하며 전쟁에 개입하면서 러시아는 힘을 받았고 우크라이나 수도까지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이 전쟁에 개입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미국은 유럽연합에 군대를 두 배 이상 파견하기만 했다.
한국의 극우정권은 북한을 연일 자극했다. 극우 유튜버 들은 전쟁 불사를 외치며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대통령은 극우 유튜버들의 논리 그대로 행동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철 지난 이념논쟁과 반공정신을 강조하고 북한의 인권문제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북한에 대한 UN제재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은 미사일 시험발사를 끊임없이 시도했고 휴전선 근처에 장사정포와 탱크 등을 집중배치 했다. 심지어 러시아 전쟁에 파병까지 했다.
외국인과 외국 자본은 한국을 빠져나갔고 한반도에 전쟁 발발 위험은 고조됐다. 미국인들을 본국으로 송환하기 위한 특별항공편이 운영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정작 한국 국민들이 느끼는 전쟁에 대한 경각심은 크지 않았다. 한국정부와 북한사이에 서로를 욕하고 비난하는 내용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고 갔지만, 정작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 국민은 없었다. 아마 한국정부도 설마 전쟁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나 역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미영씨는 어떤 일 하세요?”
“저는 박물관에서 일해요."
"아, 그러면 큐레이터? 도슨트, 그런 거예요?"
“저는 유물관리, 전시기획 쪽이라 큐레이터라고 보시면 돼요. 설명은 도슨트분들이 하시고…"
"오 멋진 일 하시네요."
"그런가요?… 지금 같은 때에 큐레이터가 무슨 소용이 있나 싶네요."
큐레이터를 우리나라에서는 학예사라고도 한다. 학예사는 준학예사를 거쳐, 3급, 2급, 1급 정학예사로 나뉜다.
인간이 문명사회를 계속 유지시킬 수 있는 이유는 기록을 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 기록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남는다. 직접적으로 문자로 기록된 역사가 있을 수 있고 과거의 물건들이 남아 그때의 상황을 엿볼 수도 있다. 학예사는 그런 과거를 탐구하고 관리하고 해석해서 현대의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인류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거가 단절되면 인류는 순식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전쟁 상황일수록 이런 사람들은 생존해야 한다. 살아서 역사를 기록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미영씨 같은 분이 꼭 살아남으셔서 역사를 기록해주셔야죠."
“북한의 포탄이 박물관에만 이라도 안 떨어지면 좋겠네요.”
인간은 강하다.
극한 상황에서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불과 2시간 전만 해도 엄마의 죽음을 목도한 이 여자는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 속에서 감정을 추스르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엄마의 죽음은 몇 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그녀도 그걸 절실히 깨닫고 있는 중이다.
구리에도 포탄이 몇 개 떨어져서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지만 몇몇은 자기 위치에 있었다. 상점과 식당, 마트들 중에서도 문을 연채로 정상 영업하는 곳이 있었다. 가까운 방공호로 피하라고 방송이 나왔지만, 못 들었는지 무시하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여기 편의점에서 물이랑 이것저것 좀 사가지고 가는 게 어떨까요?”
“네, 좋아요. 저는 경황이 없어서 세면도구도 없거든요…”
“제가 편의점 앞으로 주차를 할 테니까 미영씨가 들어가서 사가지고 오세요.”
“저 혼자요?”
“네…”
우리에게 현재 제일 중요한 것은 이동수단이기 때문에 항상 지키고 있어야 했다. 편의점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탄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현금이 있냐고 물었다. 신용카드 단말기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얼마요?”
“6천 원이면 될 것 같아요.”
집에 있던 현금을 탈탈 털어 갖고 있는 현금은 50만 원이 조금 안 됐다.
평소에 집안에 현금이 있을 리가 없었지만, 며칠 전 안 쓰던 스피커랑 키보드, 마우스 등을 중고로 팔아서 현금이 조금 생겼었다.
그녀에게 만원을 건넸다.
“갚을게요. 현금을 안 갖고 다녀서요…”
“네, 근데 여기는 장사를 하나 보네요?”
“물어봤는데, 알바는 전쟁난지도 모르더라고요… 포탄 터진 지도 모르고 있어요.”
바로 옆에서 터지지 않는 한, 누군가는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전쟁이 터졌는데 누구에게는 일상이고 누구에게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현실이라는 게 이상했다.
“생수 2통이랑 세면도구를 샀어요”
“잘하셨어요.”
“지금 4시쯤 됐는데, 계속 가는 게 맞을까요?”
“글쎄요. 저도 확신은 없어요. 저 편의점 알바처럼 살던 곳에서 그냥 지내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죠. 돌아가고 싶으시면 가셔도 돼요. 제가 강제로 가자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뇨, 그쪽이 말한 게 일리가 있는 거 같아요. 북한이 핵을 쏠 수도 있겠다는 그말이요."
나도 그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반도에서 핵을 쏜다는 건 남북한이 동반 자살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이성을 잃게 한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고 일본이 조선인을 학살하고 미국이 베트콩을 학살하는 일들이 이성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전쟁이기 때문에 설명이 가능한 일들이다.
개인적으로 전쟁 중에 북한이 핵을 쏠 확률은 80%가 넘을 거라 본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빨리 서울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