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끼고 1시간 반 정도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렸다.
두물머리 근처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잠깐 휴식을 취했다.
나무그늘아래에서 생수를 마시고 강을 바라봤다. 두 개의 물이 합쳐진 곳이라 해서 두물머리, 한자로는 양수리라고도 불린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양평군 양서면이다. 차를 타고 놀러 온 적은 많아도 자전거를 타고 온 적은 처음이다. 이렇게 전쟁이 터져야 자전거를 끌고 오는 곳이 되어 버리다니…
나를 괴롭히던 부장놈은 살아있을까? 아이템으로 논쟁을 벌이던 작가는 어떻게 됐을까? 그동안 나와 인연이 된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악연이었건, 인연이었건 다들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인성씨는 가족이 지방에 계신가 봐요? “
”아, 저는 가족이라고 할만한 사람이 없어요. 할머니 손에 컸거든요.“
“할머니는 어디 계세요?”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이런 류의 대화를 많이 겪어 봤지만, 할 때마다 어색하다. 지나간 어린 시절을 다 이야기해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얼버무리고 넘어가자니, 물어본 상대방이 뻘쭘해할 수 있고… 그래서 만들어 놓은 모범 답안이 있다.
“혼자라는 게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저는 제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거든요.”
“다음에 기회 되면 이야기해 주세요. 저는 사람들의 스토리를 좋아하거든요. 제가 너무 평범하게 살아와서… 유물 관리할 때도 이 깨진 도자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상상할 때가 많아요. 오래된 서책에 담겨 있는 스토리들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일찍 자식을 여읜 엄마의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의 마음. 왕이 자신의 심정을 시로 남긴 것들도 많은데, 높은 지위에 구속돼서 한스럽다는 기록도 있어요. 시대가 달라도 사람들이 살면서 고민하는 것들은 다 비슷했나봐요.“
보통 모범답안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웃으면서 더 묻지 않았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 여자는 큐레이터라 그런지 반응이 친절하고 철학적이다.
다음에 자세히 이야기하면 들어주겠다는 배려와 함께,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는 위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럴게요. 다음에 기회 되면 자세히 이야기해드릴게요. 저도 옛날 사람들이 지금이랑 별 차이 없구나 느꼈던 적이 있는데요. 정약용 책을 보다가 왕을 사이에 두고 의전회의를 할 때였나, 상대파와 대화가 되지 않으니 소통의 중요성을 남긴 자료가 있더라고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의 말, 안 듣는 건 여전했나봐요.”
“그래도 그나마 정조가 성군이라 왕 앞에서 토론이란 게 가능했을거에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멀리서 터지는 작은 폭음이 간간이 들렸다.
전쟁이 나서 포탄이 날아오고 누군가의 중요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판에 이곳은 왜 이렇게 평화로운 걸까.
누가 보면 데이트하는 남녀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핸드폰 갤럭시 쓰시죠? 거기 라디오 앱이 있을 텐데, 틀어보실래요?”
라디오를 들으라는 시내 재난방송 내용이 생각났다. 아이폰에는 인터넷 연결 없이 라디오를 듣는 앱이 없었지만, 갤럭시에는 있었던 기억이 났다.
“이어폰이 없어서 지지직 거리고 잘 안 들려요.”
“제가 혹시 몰라서 유선 이어폰 챙겨 왔는데 꽂아보세요.”
꽂자마자 지지직거리는 잡음은 사라졌다. 보통 전시에는 모든 채널에서 동일한 방송을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드문드문 음악이 나오는 채널도 있었다.
방송국 자체적으로도 혼란이 있는 듯하다. 서울에 있는 사람 모두가 혼란을 겪고 있을 것이다.
가까운 방공호를 찾아 몸을 피하고 생필품을 챙기라는 하나마나한 소리만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가 반격을 했는지 여부도 알 수가 없었고 북한의 이후 동향도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돼가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
“그러게요. 불확실성이 인간을 가장 두렵게 만드는 건데, 결국 각자 살아 남아야하나봐요.“
”제가 아는 분 중에 재작년에 이태원에 가셨다가 간신히 살아남은 분이 계신데, 인터뷰를 했었어요. 그분이 하는 얘기가 결국 사고는 찰나인데 정부나 공권력은 너무 멀리에 있다는 거예요. 그 간극을 줄이는 게 정부의 능력일 테고 일을 잘하냐 못하냐의 차이겠죠. 암튼 너무 무서웠데요. 사람이 사람에 눌려 죽는다는 게 얼마나 괴로울까요… 상상이 안가요.“
”그러게요. 사람은 사람에 깔려서도 죽고 지하차도에 물이 차서도 죽고, 생판 모르는 사람이 휘두른 칼에 찔려서도 죽고 월세 낼 돈이 없어서도 죽고 전쟁으로도 죽고 아홉 살에도 죽고 스무 살에도 죽고… 그러고 보면 죽음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리 슬퍼할 일도 아닌 것 같아요.“
엄마의 죽음을 몇 시간 전에 겪은 사람의 입에서 나올 소리인가 싶었지만, 나도 뭔가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우주의 질량은 지금껏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대요. 지구 전체의 질량도 마찬가지고요. 미영씨나 나나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고 해도 지구 전체의 질량은 똑같다는 거죠. 결국 우리는 지구의 정해진 자원에서 태어나서 시작했던 그것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고요. 없던 것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거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거죠.”
아침까지만 해도 전혀 모르던 사람과 두물머리의 나무 아래에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니, 전쟁은 믹서기인가 보다 인간들의 삶을 순간적으로 휘저어 섞어 버렸다. 꿈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간간이 들리는 폭음에 정신을 차리게 됐다.
“위로가 되네요. 질량보존의 법칙. 죽음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논리. 그래도 우리는 좀 더 살아남아보죠.”
“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럼, 해지기 전에 도착해야 되니까 출발해볼까요.”
시계가 3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강변을 자전거로 한가롭게 달리고 있다니, 그것도 오늘 처음 만난 여자를 뒤에 태우고…
전쟁만 아니면 로맨틱하기도 하다.
해가 가끔 구름에 가려지긴 했지만 햇살이 만만치는 않았다. 전기자전거 배터리 게이지를 보니 절반이 닳아 있었다. 낭만 타령할 때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달려 국수역에 도착했다.
그녀의 부모님이 가꾸셨다는 농막이 있는 땅은 국수역 근처라고 했다. 주소를 외우진 못했지만 국수역까지만 가면 찾아갈 수 있다고 했다.
국수역 앞에 칼국수집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에 들어서니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TV앞에서 웅성거리고 있고 주인도 불안한 듯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혹시 지금 장사하세요?”
주인은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어디서 오시는 거예요?”
“서울에서 왔어요.”
“지금 상황이 어때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지 이거 원…”
“저희가 너무 배가 고파서 그런데 칼국수랑 밥 좀 주시면 안 될까요.”
“근데 지금 카드가 안되는데…”
“저희 현금도 있어요. 인터넷 되면 계좌이체도 가능해요.“
“그래요, 그럼 일단 기다려봐요.”
우리는 테이블에 짐을 두고 자리에 앉았다.
“미영씨는 점심 못 드셨죠? 저는 11시쯤에 아점 먹어서 괜찮은데 많이 시장하시죠?”
말하는 순간, 그녀가 물을 벌컥 들이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죄송해요 목이 너무 말라서, 뭐라고 하셨죠?”
“아니에요. 너무 배고프네요 맛집이었으면 좋겠다.“
“알고 오신 거 아니에요? 여기 두 번인가 왔었는데 양이 많아요.“
“다행이네요. 지금은 맛보단 양이 많은 게 중요하겠어요, 지금 거의 다 온 거죠?”
“네, 걸어가도 30분이면 될거에요.“
잠시 후 칼국수 두 그릇에 보리밥과 겉절이가 나왔다.
평소 같으면 바지락 속을 하나하나 다듬어서 통에 내어놓고 느긋하게 맛을 음미했을 텐데, 둘 다 엄청 허겁지겁 젓가락을 댔다.
“배 많이 고프셨죠? 바지락 빼고 달라고 할걸 그랬나 봐요. 먹는데 자꾸 거슬리네요.“
”아뇨, 바지락이 있어야 이런 시원한 맛이 나오죠.“
한창 먹고 있는데 60대 정도 되는 부부가 다급하게 말을 걸어왔다.
“서울에서 오셨다고요? 서울, 어디서 오셨어요?”
“저희는 신내동에서 왔는데요.”
“아… 지금 상황이 어때요? 우리는 노원에 사는데, 애들이 집에 있어서…”
“전쟁 난 건 아시죠? 포탄이 엄청 떨어졌어요. 서울에 무작위로 떨어져서 피해가 컸어요. 우리도 일단 피하자 해서 여기까지 왔거든요.”
그 부부는 둘이 홍천에 캠핑을 왔다고 했다. 점심때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서울 가는 방향으로는 차가 안 막힐지 모르겠는데… 밖으로 나오는 도로는 지옥이에요. 막히고 사고 나고 해서 꼼짝도 못해요.“
”애들이랑 연락이 안 되니까.. 너무 답답하네요.“
”인터넷 안 돼요?? 톡 한번 해보시죠?“
”계속 보냈는데, 톡도 되다 안되다 그러고 대답이 없어요.“
내가 저 부모의 입장이라면 서울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포탄이 떨어지는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아이들이 연락이 안 되는 건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이다.
폭음이 들리고 거의 1시간가량은 통신이 정상이었다. 살아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부모에게 연락을 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몇 살이에요?”
미영씨가 물었다.
“대학교1학년이랑 고1 둘이에요.”
“다 컸네요. 너무 걱정 마세요. 맞이가 현명하게 잘 대처하고 있을 거예요.”
“저희도 이렇게 빠져나온 걸 보면 자녀분들도 분명히 안전한데 피해있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여보, 우리 빨리 갑시다.”
그녀의 말엔 상대에 대한 이해와 따뜻함이 묻어있다. 매사에 합리와 효율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나는, 저런 능력을 갖지 못했다.
나 같았으면 지금 가봐야 소용없으니 두 분이라도 살아남으라고 했을 것이다.
그녀는 어떤 말로도 저 부모를 못 가게 말릴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위로를 택한 것 같다.
“고속도로는 피하시고 가급적 국도로 가시는 게 나을 거예요.”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였다.
부부가 서울로 향하고 우리는 음식값을 계좌이체로 지불했다. 전화는 안되는데 인터넷이 되는 게 신기했다.
시골에 있는 기지국은 멀쩡해서 그런 걸까…
아마도 서울에 있는 기지국들이 파괴되거나 망가져서 서울만 전화나 인터넷이 안될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해봤다.
몇 년 전 ‘비지상 네트워크’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신규 아이템을 뭘 할까 고민할 때 많은 기사를 검색하게 되는데 그때 알게 된 내용이었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저궤도를 도는 수많은 인공위성을 활용해, 지상에 있는 기지국을 위성이 대신한다는 개념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뭐든 빨리 도입하는 편이니 벌써 적용이 된 것일까 싶었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인간의 과학은 과거 마법이라는 용어로 쓰였었다. 현실적으로 믿기 어려운 현상 등을 이용해 사람들을 현혹하고 정치에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몇몇 사람들만 아는 그런 기술들은 무지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심어주기 좋은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흔히 제사장이나 신녀라는 직함을 갖고 왕의 옆에서 통치를 돕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했다. 그 후 특정인만 알고 있던 현상의 원리가 점점 밝혀지면서 왕권은 강화되고 과학이라는 영역이 활발해졌다.
지금은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모든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활용할 수 있다. 호기심이 많고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은 세상이다. PD라는 직업은 호기심이 많고 부지런해야만 하는 직업이다. 그렇지 않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만 했다. 또 어떤 일에 대해 원인과 본질, 의도를 파악하려는 습관이 있다. 일을 하다가 생긴 습관이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큐레이터 월급은 얼마나 해요?”
PD라는 놈이 한다는 질문이 하필이면 이 따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