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막이 있는 삶
농막이 있는 땅으로 향하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칼국수집에서 나와 5분가량 자전거를 타고 올라갔지만, 결국 경사가 심해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야 했다. 길 양옆으로 전원주택들이 늘어서 있었고, 하나같이 정원은 잘 가꿔져 있었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인지, 정원에 물을 주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 몇몇은 미영 씨와 눈이 마주쳤고,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여긴 완전 딴 세상이네요.”
“그러게요. 다들 소식을 들었을 텐데, 이렇게 여유롭게 지내다니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여기 사시는 분들도 있고, 주말에만 오는 분들도 있어요. 오늘 주말이니까 아직 모를 수도 있겠죠.”
“그럼 다 알려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러다 서울이라도 올라가시면 큰일 날 텐데…”
“인성 씨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전하실 거라면 말리진 않아요.”
“아무래도 오지랖이겠죠?”
사실을 알려준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차라리 모르고 있는 편이 잠시라도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길 옆으로 개울이 흐르고, 집들이 점점 많아지는가 싶더니 이내 나무와 새소리가 가득한 풍경이 이어졌다. 공기가 맑았다. 이런 곳에서 여유롭고 돈 있는 사람들이 정원을 가꾸며 사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여긴 물도 많고, 나무도 많고, 사람도 적당히 있어서 밤에도 무섭지 않겠어요. 심지어 가로등도 있네요.”
“맞아요. 사람도 적당히 살고, 땅도 넓어서 좋죠. 게다가 맑은 날에는 좀만 더 올라가면 서울도 보인다니까요.”
“사실 양평이면 서울이랑 그렇게 멀지도 않죠.”
동네 구경을 하며 15분쯤 올라가자 집들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토목공사만 마친 땅들이 몇 필지 보였고, 그중 한 곳이 눈에 확 들어왔다.
측백과 편백나무를 경계로 두르고, 나무로 만든 담장이 둘러싸인 땅이었다. 한 필지가 크게 두 개 층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위쪽 땅은 전체 면적의 3분의 1, 아래쪽 땅은 3분의 2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농막은 위쪽에 자리 잡고 있었고, 주변은 키 큰 느티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아, 맞다. 열쇠가 없네…”
나무 담장 중간에 있는 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아빠 차 키에 열쇠가 붙어 있었는데… 일단 담을 넘어가야겠네요.”
미영 씨는 익숙한 듯 낮아 보이는 담 쪽으로 다가가 담을 타고 넘어갔다.
“걱정 마세요. 집 안에 여분의 열쇠도 있고, 농막이라도 비밀번호 잠금장치가 달려 있어요.”
농막에 들어갔다 나온 그녀는 담장 너머로 열쇠를 건넸다. 문을 열고 자전거를 끌고 안으로 들어섰다.
땅 중앙에는 잔디가 넓게 깔려 있었고, 여러 나무가 조화롭게 심어져 있었다. 아래쪽 땅 끝에는 방부목으로 만든 작은 텃밭이 있었다. 상추, 가지, 오이, 토마토, 깻잎, 고추, 파프리카...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다양한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농막이 있는 윗단으로 향하는 길에는 철도침목으로 만든 다섯 개의 계단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이 땅에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였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저는 농막이라고 해서 그냥 빈 땅에 컨테이너 같은 거 하나 있을 줄 알았는데... 엄청 잘 가꾸셨네요.”
“그러게요. 부모님이 돈 생길 때마다 뭘 그렇게 사다 심고 꾸미더니 이렇게 됐네요. 주말에 몇 번 올 땐 몰랐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 되니까 이만한 피난처도 없을 것 같아요. 농막 내부를 보시면 더 놀라실걸요.”
농막 옆 창고에 자전거를 안전하게 넣고 자물쇠를 잠갔다. 배터리만 들고 농막 안으로 들어갔다.
농막은 오래전에 방송된 TvN 프로그램 숲 속의 작은 집에 등장했던 집과 비슷한 구조였다. 나영석 PD가 제작한 작품 중 드물게 흥행하지 못한 프로그램이다. 소지섭과 박신혜가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며칠간 혼자 지내는 모습을 담았는데, 그중 박신혜가 머물렀던 집이 6평 남짓한 농막이었다. 나무 외벽에 징크 지붕, 그리고 커다란 고정 유리창까지, 이곳의 외관이 그 집과 많이 닮아 있었다.
“이 집,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으세요? PD님이시니까 아실 것도 같은데...”
“맞아요. 나영석 PD가 만들었던 숲 속의 작은 집에 나온 집 같은데, 맞나요?”
“네, 100% 똑같진 않지만, 부모님이 그 프로그램 보고는 그 집에 푹 빠지셨어요. 그래서 비슷한 집을 만들어주는 업체를 찾아다니다가, 전라도 함평까지 가셨다니까요.”
“함평요? 거의 땅끝 아닌가요?”
“그 농막만 전문으로 만드는 사장님이 그 프로그램 보고 영감을 얻으셨다던데, 내부는 훨씬 업그레이드하셨더라고요.”
농막 내부는 자작나무 합판으로 된 내벽과 멀바우 마루로 꾸며져 있었다. 한쪽엔 싱크대와 1단짜리 냉장고가, 커다란 고정 유리창 앞엔 펠릿과 장작을 함께 태울 수 있는 화목난로가 놓여 있었다. 안쪽 문을 열자 왼쪽엔 샤워 커튼이 달린 작은 샤워실, 오른쪽엔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계단 형태의 책장을 따라 올라가면 복층 구조의 침실로 연결됐다.
“우와, 어지간한 호텔보다 훨씬 낫네요! 전기랑 물도 나오나요?”
“전기는 연결돼 있고, 물은 지하수라서 모터만 작동하면 충분히 쓸 수 있어요.”
그녀가 두꺼비집의 메인 전원을 켜자 냉난방기 불이 들어왔다.
“에어컨도 있는 거예요?”
“냉난방기예요. 여름은 괜찮은데 겨울엔 난방기가 없으면 엄청 춥거든요.”
전원생활이 인기를 끌며 5도 2촌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라지만, 캠핑 몇 번 해본 게 전부인 나에게 이런 삶은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일단 밖에서 땅 좀 둘러보고 계세요. 제가 먼저 씻고 정리할게요.”
“네, 편하게 씻으세요. 아참, 이거 배터리 충전 좀 꽂아두고요.”
배터리를 충전기에 꽂고 농막에서 나왔다. 아파트 현관문처럼 삐리리 소리를 내며 농막 문이 잠겼다.
아래쪽 땅에는 10미터쯤 되어 보이는 이팝나무 세 그루가 서 있었다. 그 아래엔 엉성한 나무 벤치가 놓여 있었다. 벤치에 누워 손을 머리 뒤에 받치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노을이 물든 하늘은 파란색에서 주황색까지, 다채로운 빛깔로 물들어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오늘 아침만 해도 ‘지구에서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며 콘텐츠를 준비했는데, 이제는 생존 자체가 주제가 돼버렸다.
고양이 한 마리가 벤치 아래에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손을 내밀자 고양이는 살짝 움츠렸다가 이마를 가져다 댔다. 낯가림이 심하지 않은 녀석이었다. 벤치 다리에 이마를 비비더니 결국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아, 여기가 니 자리구나. 오늘은 나도 좀 쉬자, 오늘 많은 일이 있었거든…’
그렇게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