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자세대는 아니다. 중고등학교 때 한문 수업이 있었지만 국영수처럼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신문에 나오는 흔한 한자 정도를 부수를 인식해 대강 읽는 수준이다.
그런데 최근에 한자, 백성 ‘민’ 자의 의미에 대해 알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백성 ‘민(民)‘은 우리나라 국호에도 쓰인다, 대한민국.
또 민중, 민주주의, 민족, 민화, 국민 등에도 ‘민‘자가 들어간다.
백성은 말 그대로 백가지의 성씨를 뜻하는 말로, 나라를 이루는 사람들, 대중을 높여 부르는 호칭이다.
요즘말로는 국민, 인민, 신민, 주민, 시민등과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
그런 백성을 뜻하는 한자어 民 자의 어원은 눈 ‘목‘자와 열 ’십‘자라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 시대 지배층들은 농사를 짓는 다수의 하층민들이 집단으로 반역을 일으키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하층민들의 한쪽 눈을 찔러서 멀게 만들었다고 한다. 나머지 한쪽 눈을 사용하면 농사짓는 건 큰 어려움이 없으니 잔인하지만 반란을 막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눈을 찌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상형문자인 백성 ‘민‘자가 생겼다고 한다.
아무 죄 없는 사람의 눈을 찔러 언제 있을지 모르는 반역을 예방했다니…
당시 지배층들이 볼 때, 하층민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복종하는 로봇이나 애완견과 다를 바가 없었다.
농사를 지어 재산을 불리게 해주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식량을 들여 살아서 일을 할 수만 있으면 됐다.
지금은 다를까?
이른바 현대의 상류층이라 불릴 만한 사람들인 정치인, 기업인, 법조인, 의사, 종교인 등의 경우.
밑에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비행기 게이트를 나오며 수행원에게 캐리어를 보지도 않고 굴려버리는 모습.
기내에서 땅콩을 접시에 담아 오지 않았다며 비행기를 돌리기도 하고,
직접적인 예는 아니지만 노동자를 기계 부속품으로 여기는 기업인들의 사례도 많다.
위험한 일은 하청에 하청을 주고 지하철에 치어 사망한 노동자부터, 장애인이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사망한 일도 있다. 안전장비도 없고 2인 1조 작업의 원칙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안타까운 사고다.
80이 다 된 고령 정치인이 골프장에서 손녀 같다며 여자 캐디의 몸을 만지는 일도 있었다.
이런 사례는 너무 많다. 좀 특이한 경우는 같은 상류층 안에서도 급이 나눠진다는 것이다.
넥타이 색깔을 못 맞췄다며 국회의원에게 쌍욕을 던지는 대선 후보도 있었다.
인간사회에서 계급과 계층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건 불편한 진실이다.
인간은 자아를 갖고 있고 이 자아는 스스로를 객관화시킬 수 있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면 타인과 비교를 하게 된다.
나의 재산, 나의 능력, 나의 외모, 학벌, 인맥, 나의 부모와 배우자 그리고 자녀까지…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남과 비교하게 된다.
그렇게 스스로 나는 어떤 계층이라고 판단할 수 있게 되면서
남보다 앞이나 위에 있음에 안도하고 남보다 아래나 뒤에 있음에 분노한다.
나의 경우엔 왠지 모르게 ‘민’이 들어간 단어들에 정감이 가고 푸근한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나의 조상들이 하층민에 가까운 사람이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생각해 보면 과거 시대가 더 합리적인 시대였을 수도 있다.
그때는 명확하게 신분이 구분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는 운명.
아주 간혹 그 운명을 거스르고 신분을 뛰어넘는 사람이 있었지만, 몇 백 년 후 위인전에서나 볼 수 있는 확률이다.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알고 사는 운명은 마음이 편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구호에 많은 사람들은 착각한다. 나와 상류층도 똑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인민이라는 단어는 ‘인’과 ’민’의 합성어다. 한자어만 보면 인간과 백성이라는 뜻이다.
지배층들은 사람‘인’을 쓰고 하층민들은 백성‘민’을 써서 만들어진 단어다.
그래서 보통 인민이라고 하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뜻한다.
이 말은 지금까지도 쓰인다. 아직도 ‘인‘과 ’민’을 구분해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보통 기자들을 언론인, 국회의원은 정치인, 판사나 검사 변호사들은 법조인,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직장인이라고 마지막에 사람 ‘인’ 자를 쓴다.
그 외에도 선생들은 교육자, 경찰관, 의사 등으로 표현하는데 굳이 농사짓는 사람들은 농민, 어민이라고 부르는 게 익숙하다. 아직도 농업이나 어업으로 사는 사람들에 대한 무시가 사람을 부르는 호칭에 묻어 있는 건 아닐까?
지금도 백성 ‘민’의 유래와 같은 일은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
고대에는 다수 하층민의 한쪽 눈을 바늘로 찔러 멀게 했다면, 지금의 지배층은 시민들의 눈과 귀 모두를 멀게 한다.
근현대에서는 언론을 탄압해 진실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요즘은 언론사의 돈줄을 쥐고 조종한다.
언론사들이 사람들의 눈을 찌르는 지배층의 바늘이 된 셈이다.
나는 하층민에 가깝지만 눈을 찔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지배층들의 부조리와 알아차리는 눈을 가지려고 하고 그들이 떠벌리는 말에 현혹되지 않으려고 한다.
주변사람들에게도 깨어있기를 소리치고 전해줄 수 있는 힘까지는 없다.
적어도 나 하나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