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컷

공연을 마치고

by 무글이

처음엔 제목을 '이발'이라고 하려다가 뭔가 좀 그럴싸한 게 좋을 것 같아서 '헤어컷'으로 바꿨습니다.


제겐 공연 하나 마칠 때마다 다음날 헤어컷하는 오랜 습관이 있습니다.

엊그제도 깎았습니다.

아들내미와 함께 다니는 단골 미용실도 있지요.

어떨 때는 작품 속 역할(스님이나 죄수 같은)을 위해 공연 전에 미리 깎을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공연을 마치면 그 이미지가 지워질 만큼 깎아내고 새 머리카락이 자라도록 합니다.

맨 처음엔 그저 작품 때문에 두어 달 깎지 못해 지저분해진 머리를 정리하러 간 건데 경쾌한 가위소리에 맞춰 머리카락이 잘려나갈 때마다 뭔가 심리적으로도 작품에 대한 미련? 아쉬움? 불만족까지 정리되는 느낌이

들고 뒤풀이 숙취해소도 되는 것 같더라고요.

여러 종류의 미용가위들이 이리 깎고 저리 깎고 싹둑 깎았다가 다시 얌전히 다듬는 동안 전날밤까지의

무대인생도 덩달아 정리되는 느낌이 드니 그때부터 막공 다음날이 미용실 예약 날짜가 되어버렸습니다.


인연이 십 년이 다 돼가는 L 미용실.

공연 포스터 나오면 미용실 출입문에 앞뒤로 붙여두기도 하고 미용실 원장님이 공연도 몇 번 보러 오셨는데..

써니원장님(제가 만든 별명)은 헤어컷 하러 갈 때마다 매번 잊지 않고 해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시니까 좋으시겠어요. 정말 부러워요."


노총각 때 형수님의 협박(?)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선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맞은편에 앉으셨던 분이 미용실에 근무하시는 분이었는데 곧 자기 샵을 개업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만약 그분과 잘됐다면 공연과 연습사이 틈틈이 미용실 일을 도우며 살았겠죠.

헤어컷도 평생 공짜로 하고..


다음 주엔 큰 놈 데리고 헤어컷하러 갑니다.

일주일뒤 입대거든요.

지금까지 아비가 해오던 헤어컷과는 비교불가 느낌이 들겠지만 평생 처음 해보는 빡빡머리가 어떨지

몹시 궁금하네요.

평균 석 달에 한편 공연한다치고 6편 정도 해야 제대하겠군요.

제대할 때까지 아들내미는 헤어컷을 몇 번 하게 될지..

잘려나간 머리카락만큼 인성은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늘은 8월의 첫 번째 일요일.

별다른 계획 없으시면 헤어컷 한번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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