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풍추영

개봉영화 소개

by 무글이

중고등 학창 시절 <스크린>이라는 영화월간잡지가 있었다.

영화배우가 꿈이었던 스포츠머리에겐 책 나오는 월말에 서점가는 길이 오아시스 찾아가는 날이었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몰래 보다 들킨 적이 있었는데 잡지를 압수한 선생님이 몇 장 보시더니 바로

혼내시지 않고 야한 책도 아닌데 왜 이 책을 보냐고 물으셨다.

어차피 벌을 피할 순 없었기에 대담하게도 난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했다.

아이들이 배 터져라 웃는 동안 곧 이어질 회초리에 적응하기 위해 손바닥을 비비고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시고는 "이렇게 관심이 많으면 영화배우도 많이 알겠구나. 수업 끝날 때까지 영화배우 이름 백 명 써내면 용서해 주겠다."라고 하셨다.

과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꽤 많은 필기내용이 칠판에 한판, 두 판 쓰고 지워지는 동안 나는 브룩 쉴즈가

미소 짓는 연습장 종이에 배우 이름 백 명을 적었다.

성룡, 홍금보 등 몇몇 홍콩배우 말고는 거의가 미국배우였지만..

혹시나 선생님이 인정 안 해주실지 몰라 이름옆에 괄호 해서 출연 영화도 한편 적어냈다.

"니가 그레고리 펙(로마의 휴일 주연)을 어떻게 아냐?"라며 껄껄 웃으시고는 앞으로 주의하라는 말씀과 함께 잡지를 되돌려 주셨다.

그게 벌써 40년쯤 지난 것 같다.

그때 적어낸 배우들 중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고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이들이 지금은 톱스타가

되어있다.

그 스포츠머리가 대구 연극배우로 살아온 지도 20년은 지난 것 같고..


얼마 전 부산국제영화제 가서 <포풍추영>이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 티켓값보다 대구에서 오가는 차비가 몇 배 더 드는 영화제였고, 사실 보고싶은 영화는 따로 있었으나

나의 영원한 영웅 성룡 형님이 나오신다기에 망설임 없이 극장을 바꿨다.

포풍추영.

바람을 잡고 그림자를 쫓는다.

뭔 말인지는 몰라도 꽤 근사한 말이다. 특히 그것이 홍콩영화 제목이라면 딱 어울리는 사자성어(?)다.

사제출마, 당산비권, 소권괴초, 비룡맹장.. 그러고 보니 그 옛날 나의 영웅은 네 글자에 얽힌 복수를

많이 했구나.

성룡이 직접 감독 & 주연한 <프로젝트 A>,<폴리스 스토리>는 최소 다섯 번은 본 것 같은데..

2~3층 높이는 그냥 맨몸으로 떨어지던 원조 아이언맨은 이제 일흔이 넘은 노구임에도 손자뻘 되는 악당들을

여전히 맨손으로 때려잡으셨다.

이미 몇 년 전에 다른 제목으로 나왔었던 홍콩영화인데 우리나라에서 <감시자들>이라는 영화로 환생했었고

거기서 배우 설경구가 맡았던 역할을 이번 영화에서 성룡이 맡았다.

감사하게도 이번 영화에도 엔딩에 눈물겨운(?) NG장면이 나오는데 촬영 중 부상당한 성룡이 달려온 스탭에게

이런 말을 한다.

"괜찮아. 밴드 하나 붙이면 돼."

보험 처리하고 드러누우면 꽤 많은 금액이 될 일을 백전노장 배우는 말 한마디로 합의 봤다.


지금은 추석연휴.

명절이면 어김없이 찾아오시던 성룡 형님(오빠)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이 영화는 놓치면 안된다.






작가의 이전글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