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반

짧은 글이라도 모이면 작은 힘을..

by 무글이

1. 첫 번째 숟가락

마약을 해본 적은 없지만 겨울 내복은 그 중독성이 마약과 비슷하다.

입춘이 지난 지도 한참이고 오늘은 주위에 모든 이들이 봄이라고 떠드는데도 내 바지 속엔 내복이 숨어있다.

체감은 봄이지만 마음이 아직도 겨울이라 벗어던지질 못하는 것인가?

아니다.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꽃샘추위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마에 솟아나는 땀이나 남들 눈치채지 못하게 닦아내자.


2. 두 번째 숟가락

컴맹폰맹인 주제에 많이 걸을수록 돈이 된다는 앱을 핸드폰에 깔아봤다.

그렇게라도 해야 운동도 될 것 같아서..

일주일 정산해 보니 이제 겨우 제일 싼 컵라면 하나 사 먹을 정도 모아졌다.

길거리 패션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도 한잔 사들고 다니려면 보름 넘게

걸어야 하는 건가?

고행이 따로 없다. 아껴야 산다. 폼나게..


3. 세 번째 숟가락

세 숟갈만에 배가 부르다.

원래 적게 먹는 체질이지만 실제로 먹는 것도 아니고 글쓰기를 좀 더 돋보이게 하려고 잔머리를 굴렸다가

제풀에 지쳤다.

공깃밥 한 그릇도 못 되는 글발.


4. 네 번째 숟가락

숫자 4를 기피하는 오랜 전통(?)을 의식하여 네 번째는 다시 수저통으로..


5. 다섯 번째 숟가락

네 번째 숟가락을 수저통에 넣다가 모르고 같이 넣어버림.


6. 여섯 번째 숟가락

언제부턴가 새해, 설날, 추석, 성탄절에 안부문자 받는 서열이 되어있다.

어떤 이는 격년제로 보내오고, 어떤 이는 때맞춰 빠짐없이 보낸다.

어떤 이는 '선배님 '으로 시작해서 다른 몇 명과 내용이 거의 비슷하고, 어떤 이는 'OO선배님'이라고

실명거론하며 단 몇 줄 안에다가 우리 둘만의 사연으로 채워 보낸다.

나도 사람인지라 반가움의 무게가 조금은 다르다.


7. 일곱 번째 숟가락

어떤 젊은이가 달려와 반갑게 인사하길래 "어.. 그래. 오랜만이네. 잘 지내지?" 해놓고는 그 또는 그녀가

신원을 밝히지 않고 헤어지게 되면 정체를 떠올리는데 한참 걸린다.

결국 안타깝게 그냥 넘어갈 때도 있다.

한두 번이 아니다.

핸드폰 앨범 속 지난 사진 속에선 무대 위에서 서로 어깨동무하고 엄지 척해주는 사진까지 있음에도

이젠 이름 석자 기억해 내기가 쉽지 않다.

'안 보면 멀어진다.'는 말은 어떤 과학원리보다 진리라서 무섭다.


8. 여덟 번째 숟가락

어쩌다 보니 여덟 번째 숟가락까지 챙기게 됐다.

이쯤 되면 한번 쉬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이건 자만인가? 변명인가? 꼼수인가?

이도저도 아닌 글장난인가?


9. 아홉 번째 숟가락

비록 유치한 낙서이긴 해도 그 소재와 색깔을 다르게 해서 아홉 편까지 썼다는 건 나름 내공이 있는 거라며

스스로를 평가해 본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자식들이 아비 글을 보고 부끄러워 고개 숙일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10. 열 번째 숟가락

'십시일반'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밥을 보태면 한 사람이 먹을만한 양식이 된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조금씩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을 돕기 쉽다는 말.

그래서 이 글의 제목으로는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금수저, 은수저도 아니지만 잉크 묻은 수저도 아닌 것 같군요.

'와신상담'의 마음으로 컴퓨터를 켰는데 검색창에 '심리상담'을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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