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시

시. 참 어렵지만 매력 있다.

by 무글이

강산이 세 번 변했구나.


지금 년도의 천 단위가 아직 1이었고 내 나이 이십 대였던 시절.

수도권 출신 여학생과 모태 경상도 머슴아가 캠퍼스 커플이 되어 졸업 후 '여사친'에서

'여친'으로 업그레이드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여친이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나타났다.

심하게 울었는지 퉁퉁 부운 눈가가 갑자기 파르르 떨리더니 " 나 또 울 것 같애." 하자마자 엉엉 울던 그녀.

근처 상가에서 흘러나오던 신승훈 노래가 끝날 때쯤 "미안해. 많이 놀랐지?" 하며 진정이 된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울음기 남아있는 목소리로 하는 대답이

"천상병 님이 돌아가셨대."였다.

"천상병?.. 잘 아는 군인이가?"


그로부터 얼마동안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고 다시 용서(?) 받고 화해하긴 했지만

되돌아보면 결국 이별을 향해 금 가기 시작한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지난 주말 시를 한편 썼다.

시내버스 안에서 그녀를 닮은 사람을 본 것도 아니고 보도블록 사이에 피어있는 풀을 보고

수십 년 만에 시인의 영감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브런치스토리에서 금요일에 문자가 왔는데 <'저작권'에 관한 글 공모전>이 일요일 응모 마감이라는 것과

아직 늦지 않았으니 도전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금, 토, 일.

마치 '마감임박' 네 글자가 TV화면 가득 깜빡깜빡하는 걸 봤을 때의 누군가가 핸드폰을 잡듯이

나의 손은 뇌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바로 펜을 잡았다.

그 옛날 한국 청소년 연맹인가 어딘가에서 주최한 <'평화의 댐 성공기원' 고교생 백일장>을 끝으로

시를 써본 적이 없었던 내가..


시는 그랬었다.

명색이 고교 문예부 출신이었지만 비상금처럼 간직하며 외우고 다니는 시 한 줄 없었다.

나 보기를 왜 그리 역겨워했는지, 그렇다고 해서 그리 고운 꽃을 밟으면서까지 꼭 떠나야만 했는지,

과연 죽는 날까지 하늘에 한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게 사람으로서 가능한 건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저 바른 것 혹은 바르지 못한 것을 찾아내는 국어 시험문제 중 하나였을뿐..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사랑'이라 자신할 수 있을 만큼 좋아해 보고, 미워해보고, 그리워해 보고 나서야

놀랍게도 시의 매력이 다가왔다.

내가 겪었던 행복, 슬픔, 상처들..

입 가볍게 자랑하고 싶지도 않고, 아무나 붙잡고 목 터져라 변명할 수도 없었던 것들을 어느 날 시 한 편에서 다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이란!


프랑스 시인 쟝 콕토의 <산비둘기 >가 내게 그런 시다.


산비둘기 두 마리가

정다운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였습니다.

그다음은 차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달랑 세줄밖에 안 되는 시.

해피엔딩인지, 그래서 어찌 됐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말이나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공감대.

까마귀도 백조도 아닌 산비둘기가 왠지 내 모습과 닮은 것 같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란 건 알려주면서

그 뒷일은 차마 말해주지 못하는 것도 내 심정과 비슷하다.


지난 일요일 마감된 브런치스토리 백일장의 주제는 '저작권'이었다.

계절이나 동식물도 아니고 첫사랑이나 부모자식도 아닌 저작권.

사전적 의미인 '저작물에 대한 저자 혹은 대리인의 권리'에 대해 시나 산문으로 이야기를 해보라는 거였는데.. 난 왜 시를 택했을까?

1,000자 이상의 산문보다 20행 이내의 시 한 편이 덜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낯선 재료(저작권)로

나만의 특별한 요리(시)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도전정신이 휴화산 용암 터지듯 솟아났다고 해야 할까?

다 쓰고 나서 눈감고 심호흡 한번 한 뒤 다시 읽어보니

냉면 먹은 다음 팥빙수 먹는 것처럼 온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지만 심호흡 한번 더 하고는 '발행'을 클릭했다.

스포츠를 비롯한 이 세상 거의 모든 일들이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일들이고 어쩌면 글쓰기도 그렇겠지만

결과가 나오게 될 올가을보다 선풍기 바람 등에 업고 시시한 시 한 줄 계속 썼다 지웠다 하는 이 여름이

난 더 좋다.

응모한 시 제목이 '그 작품의 권리는 누구의 것인가요?'인데

부제도 달아서 보낼걸 그랬다.

'이 부끄러움의 몫은 누구의 것인가요?'


시. 참 어렵지만 매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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