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 담당이다. Death is mybeat.” 마이클 코넬리(Micheal connelly)의 추리소설 ‘시인(The Poet)’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소설의 주인공 매커보이는 로키마운틴 뉴스 사회부 살인사건 전문기자다. 이 책은 1996년 발표됐다. 번역본의 면수는 607면에 달하는데, 나는 이 책을 2011년에 사서 읽었다. 죽은 자의 유서마다 애드가 앨런포의 시구가 나온다. 책 제목 ‘시인’은 그렇게 탄생됐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Elizabeth kubler-Ross. 1926~2004. 8.24)’는 스위스 출신의 정신의학자다. 암환자 등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의 심리학적 반응 또는 태도 연구에 일생을 바쳤다. 그는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은 다섯 단계의 심경 변화를 겪는다고 했다. 이를 보통 ‘슬픔의 5단계’라고 한다. ‘슬픔의 5단계’는 이렇게 진행된다. 첫째, 부정한다(Denial). 둘째, 분노한다(Anger) 셋째, 타협한다(Bargaining) 넷째, 우울해진다(Depression) 다섯째, 수용한다.(Acceptance) 이것이 정상적으로 슬픔에 대응하는 보통 사람들의 태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숨결이 바람 될 때(WHEN BREATH BECOMES air)’의 저자 ‘폴 칼라티니’같이 대응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문득 내가 슬픔의 5단계를 이미 다 겪었지만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죽음을 맞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불만도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였다. 나는 이미 준비된 상태였다. 그런데 그렇게 빨리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우울해졌다. 분명 희소식이었지만 혼란스럽고 기이할 정도로 맥이 빠졌다...”(숨결이 바람 될 때 192~193p.)
또 이런 단계를 거치는 사람도 있다. 나 같은 사람이다. 퇴근을 해 주차를 하고 내리면서 차의 오른쪽 옆 범퍼가 두 뼘 가량 긁혀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암이나 불치병만큼은 아니지만 어떤 개인에게는 모든 의욕을 앗아갈 정도로 매우 불행한 사태다. 나는 먼저 화가 났다. “누가 남의 차를 이렇게 긁어놓은 거야. 긁었으면 연락을 하던지 연락처라도 남겼어야 되는 것 아닌가. 무슨 이런 경우 없는 사람이 있어” 한참을 그렇게 분노하다 집에 들어가 숨을 돌리고 이곳저곳 전화를 하는 사이 심경의 변화가 왔다. ‘차를 오늘 긁은 것이 맞나?, 혹시 내가 긁은 것은 아닌가? 긁기는 긁은 것인가?’ 그래서 주차장에 내려와 다시 확인을 했다. 물론, 당연히 긁혀 있었다. 오래전 긁은 것이 아닌가 싶어 세차 회사에도 연락했다. “어제 세차할 때까지만 해도 깨끗했다”며, “아마 오늘 긁힌 것 같다.”고 했다. 나에게 두 번째로 온 것은 부정의 단계였다.
긁힌 것을 확인하고 나서 나는 우울해졌다. ‘지난번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아침에 차를 그곳에 주차하는 게 아니었어, 왜 자꾸 나에게만 이런 일이 벌어지지’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차가 긁힌 것만 생각났다. ‘우울’ 단계였다. 무기력한 상태에서 한참이 지나자 ‘내가 왜 이러고 있나’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차는 회사 차이고, 렌터카 회사에서 보험으로 다 수리해 줄 텐데, 그리고 내일 CCTV와 블랙박스 확인하면 범인도 잡을 것이고, 렌터카 회사에서 대차(貸車)를 해주면 이참에 다른 차도 좀 몰아보고, 뭐 불편한 게 좀 있겠지만 그렇게 나쁠 것도 없잖아.” 네 번째 단계인 ‘타협’이 찾아왔다.
나에게 찾아온 슬픔의 단계는 통설과 달리 ‘분노 → 부정 → 우울 → 타협’ 순이었다. 마지막 하나 수용단계는 그대로 다섯 번째에 왔다. 아침 출근을 하자마자 블랙박스의 SD카드를 컴퓨터에 접속해 영상기억을 확인했다. 하지만 블랙박스는 말 그대로 블랙이었다. 끊겼고, 녹화가 되지 않았고, 자기가 하고 싶을 때만 녹화를 했다. 성격이 꼭 그분의 아드님 같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건물 관리실에 CCTV를 확인하러 갔으나,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 CCTV는 오래돼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고, 기특하게도 내가 주차를 해 놓은 곳 CCTV는 고장으로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마음에서 생각을 놓았다. “그거 확인한다고 뭐 크게 달라지는 것 있나? 왜 아직도 마음을 잡고 풀어주지 않지. 어제 이미 분노, 부정, 우울과 타협을 했잖아.”어제의 일과 오늘의 상황을 수용하니 그간의 일이 부질없었다. 그제야 다른 것이 보였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머물지 말고 마음을 내라). 금강경 한 구절이 생각났다. 단지,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범인을 잡아 정의사회를 구현하지 못한 것이다. 왜 소환된지도 모를 ‘시인’의 주인공 매커보이에게, 매커보이를 창조한 마이클 코넬리에게 미안하다.(2017.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