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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름은 ‘가을’입니다

by 김무균

아침저녁으로 체감하는 기온이 지난달과는 사뭇 다릅니다.

아내의 염려로 그간 반소매 티셔츠를 입던 출근길에 재킷 하나를 더 걸쳤습니다.

새벽 어슬했던 기운이 사라지고,

아침 햇볕이 알맞게 데운 공기가 기분 좋게 온몸을 감쌉니다.

가까운 산은 아직 초록으로 푸르고, 먼데 하늘은 파란 잉크를 풀어놓은 듯 파랗습니다.

버스를 타고 창밖으로 그런 풍경의 호사(豪奢)를 누리다 잠깐씩 좁니다.

오늘따라 버스 안도 한가롭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켭니다.

그리곤 조간을 꺼내 어떤 기사는 제목만 보고, 어떤 기사는 밑줄을 쳐가며 꼼꼼히

읽습니다. 신문 읽기를 마치면 노트북에 글을 씁니다.

몇 줄 쓸 때도 있고, 몇 장을 쓸 때도 있습니다.

기록을 할 때도 있고, 상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상상을 했고, 그러다 점심시간이 되어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은 대개 구내식당에서 먹습니다.

요즘 구내식당의 음식 퀄리티가 채광(採鑛)을 하려는지 자꾸 땅속으로 들어갑니다.


점심을 먹고 ‘동안교’ 아래 ‘운중천’ 길을 산책했습니다.

선남선녀(善男善女)와 우수마발(牛溲馬勃)이 모두 산책을 합니다.

긴소매를 입은 사람도 있고, 반소매를 입은 사람도 있습니다. 레깅스를 입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려견더러 자기가 엄마 아빠 누나 오빠라고 하는데, 인간에게서 다른 종(種)이 태어날 수 있는지는

식견이 부족해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아, 왜가리 한 마리도 운중천 위를 날아서 산책합니다. 정말 산책하기 좋은 날씨입니다.

다리 아래 그늘진 천변 벤치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와인을 한 잔 마시면 그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번거로울 것 같아 이내 생각을 접었습니다.


지난여름은 정말 무더웠습니다. 그리고 길었습니다.

동남아시아보다 더 더운 날씨라 했고, 잠시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는 못 배길 그런

날씨였습니다. 환경이 기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이 앞으로 오는 어떤 여름보다 가장 시원한 여름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말도 들렸습니다.

하여튼 그랬습니다. 덕분에 아파트 관리비 항목 중 전기료 비중이 최고로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다렸습니다. 더위가 아무리 길어도 한 해를 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4계절이 있는 나라입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9월이 가고, 10월이 됐습니다.

그리고 오늘 너무 파래서 눈이 시릴 것 같고, 너무 상쾌해서 온몸으로 느끼고 싶은 공기와 다시 만났습니다. 오늘은 정말 산책하기 좋은 날씨입니다.

바람은 산들하고, 햇살은 눈부십니다. 콧등으로 살짝 배어나는 땀도 향기롭습니다.

다리 아래 그늘진 천변 벤치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와인 한 잔 마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과정이 번거로울 것 같아 접었던 생각을 접고, 한번 시도해 보리라 다시 생각을 폈습니다.

함께 마실 친구를 구해야겠습니다.

여름이 남긴 풀과 물, 새롭게 맞이하는 바람과 햇볕이 함께하는 10월의 둘째 날,

오늘의 이름은 가을입니다.(20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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